■재벌, 구조 조정 몸살/내우외환… 문어발의 업보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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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 강력한 내부 개혁 요구… 외국인 합병 · 매수에 쫓겨

새 정부의 재벌 개혁 조처가 빠른 속도로 드러나고 있다. 핵심은 △상호지급 보증 해소 △결합 재무제표 도입 △계열사간 상호 출자 금지 등이다. 모두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매출액에서 거품을 뺀다는 취지의 것들이다.

 재계는 정부의 개혁 속도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는 눈치이다. 특히 2000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상호지급보증 해소 기한을 99년으로 앞당기면, 이 과정에서 기업의 연쇄 도산이 불가피하게 되리라는 주장이다. 재계가 불만을 갖는 것은 경제 위기 책임론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제 위기의 주범이 재벌이라고 몰아 붙이는데는 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한 관계자는“대출 열쇠를 쥔 금융기관이 계열사내 우량 기업의 보증을 요구하는 데야 기업도 별 수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부 개혁에 대한 재계의 소극적 자세가 정당화할 것같지는 않다. 우선 김 차기 대통령측이 취임전 가장 큰 국내 과제로 설정한‘노 · 사 · 정 협의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강도 높은 재벌 개혁 방안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합병 · 매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 세워야 한다. 결합 재무제표가 도입되면 부채 비율이 현재보다 크게 증가할 것이고, 더 이상 차입이 불가능한 기업은 결국 적자계열사를 헐값에 처분해야 한다. 재벌들은 한계 기업 위주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의도가 먹혀들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경영실적이 좋은 효자 기업을 싼 값에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LG전자가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해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아스트라 그룹 지분 4백69만달러어치를 단돈 백달러에 사들여 화제가 되었지만, 반대로 한국 기업들도 아스트라 그룹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재계는 정리 해고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자산재평가법 등을 도입해 자산 평가 방식을 조정해 자산을 늘리고 부채를 줄여 가겠다는 것이다. 경총 조남홍 부회장은“경총 회장단 회의에서, 84년 이후 자산 평가에서 동결된 자산을 다시 평가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군데서 제기됐다”라고 말했다.

 재벌은 안팎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밖으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골머리를 짜야하고, 안으로는 차기 정부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재벌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첫 청사진은 5대 그룹 총수들이 김대중 차기 대통령을 만나고 난 뒤 열릴 전경련 총회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成耆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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