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위기 극복한 나라. 영국
  • 이희진(영국 솔퍼드 대학 연구 교수) ()
  • 승인 1998.01.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자리 생긴다면 자존심이 문제랴

 처음 영국에 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영국에서는 수도전기가스철도 등 기간산업이 민영화해있고, 사업 주체도 지역 단위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그 회사들을 살펴보면, 프랑스미국독일 계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기간산업을 외국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기간산업이 그런 상황이니 제조업과 금융기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영국의 제조업이 사실상 없어졌다고 공공연하게 얘기되어 온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몇해 전 영국 자동차산업의 자랑이라던 로버사가 독일계 BMW사로 넘어간 것이 그 대단원의 서막이었다. 금융기관도 속속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으며, 그런 추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은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에 진출하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였을까. 더욱이 그들은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 제국의 일등 시민이었고, 사회주의의역사적 전통을 간직한 사람들이 아닌가. 영국인들의 의식이 수십년에 걸쳐 변화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던 70년대 후반과,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했던 90년대 초반에 겪은 경제위기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자본의 국적 다질 필요 없다”
 두 시기에 엄습했던 경제 위기의 원인은 약간 달랐다. 첫 위기가 실물 부문에서 닥친 것이라면, 두 번째 위기는 금융 부문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국제 사회의 지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영국병’이라는 말이 막 확산되기 시작한 76년에는 국제통화기금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국제결제은행(BIS)을 비롯한 국제 금융기구의 원조를 받아야 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70년대부터 시작된 경쟁력 위기는 80년대‘철의 여인’ 대처 총리가 주도한 신산업 정책으로 넘길 수 있었다. 대처 정부는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진 석탄산업을 정리하고, 강력한 노조에 맞서 임금 동결 · 삭감 조처를 단행했다. 과감한 민영화 정책으로 기간산업을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90년대 금융위기를 넘긴 것도 비슷했다. 당시 런던은 영국 금융기관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세계2대 금융 중심지라는 명성이 퇴색하고 있었다. 금융기관의 소유권을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서 영국인들은 자존심을 고집하지 않았다. 각 금융기관의 업무 영역구분을 완전히 없애고, 부실 금융기관을 통폐합했다. 이 와중에 많은 금융기관이 미국 · 프랑스 · 일본계 금융기관으로 넘어갔다. 천문학 용어인‘빅뱅’이 금융용어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이 때 일이었다.

 내가 대화를 나눈 영국인이나 현지 신문들의 논조를 보면,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 어느 나라 돈이든 개의치 않는다. 우리 지방에 와서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만 만들어 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영국 언론들은 투자 관련 뉴스를 항상 똑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다.‘이 회사가 들어서서 이 지방에 일자리가 3백50개 생기게 되었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이 기업이 철수함으로써 일자리가 2백40개 사라졌다.’

 ‘유럽내 최고 설비’‘연간 생산 대수 몇 대’하는 식의 과시형 보도는 일자리 다음의 문제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가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경합한 덕에, 한국의 LG그룹이 유리한 조건으로 웨일스 주도 카디프 근처에 전자공단을 세우게 된 일도 있다. 영국의 경험을 통해보면, 의식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만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