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머리에서 관찰한 대선 후보 진면목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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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이 말하는 이회창 · DJ · 이인제 /“권위적 겉모습 뒤에 소탈한 면모” 공통점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3명으로 압축된 대선 후보 진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공식 일정에 파묻혀 산다. 이들에게는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그림자 군단’에게 비치는 대신 후보들의 면모는,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어 형성된 각 후보의 일반적 이미지와 다른 점이 많다.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의 눈에 비친 후보들의 감추어진 면모는 어떤 것일까.

 먼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로는 김우석 수행 비서와 맹형규 의전특보가 있다. 구기동 자택에서는 이종창·이상로 비서가 교대로 24시간 근무하면서 총재를 밀착 보좌한다. 비서진 외에도 신한국청년회 소속 경호원 10여 명과 경찰청에서 파견나온 경호원 12명이 이후보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이들의 눈에 비치는 이후보의 인상은 일반인에게 형성된 ‘대쪽’ ‘원칙주의자’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수 행 비서는 “자기 원칙을 정확히 지키는 생활 습관과 항상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견지하니까 편안함보다는 외경심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이후보는 이들을 부를 때 공·사석을 막론하고 직책을 반드시 넣어 부른다. 물론 미혼인 젊은 비서에게는 ‘이봐’라는 호칭이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회창:분위기 썰렁하면 앞장서서 노래 불러
 최근 들어서 이후보는 신한국당 의원들에게 가끔 ‘동지’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특이한 사실은 이후보가 유일하게 ‘동지’라는 표현을 쓰는 야당 인사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국민회의 김근태 의원으로서, 이총재는 김의원과는 국회 외무통일위에서 함께 일하며 여야를 떠나 그의 활동과 인품을 높이 샀다고 한다.

 이후보가 보좌진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요란하지 않다. 일처리를 잘해 칭찬이나 정을 표시하는 경우에도 살며시 미소를 짓는 것이 전부이다. 또 질책할 일이 생겼을 때는 꾸중 대신 ‘왜 그렇게 했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 일색인 이후보에게 의외의 자상함이 있음을 발견하고 감동했다는 측근도 있다. 2년 전 이후보와 만나 비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 아무개씨는 “얼마전 비서진 부부 초청 만찬 때 총재께서 우리 집사람 곁으로 오시더니 ‘이비서 안사람 되지요? 그동안 내가 너무 부려먹어 집안을 소홀하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위로하시기에 정말 놀랐다”라고 전한다.

 정치 초년생으로 불리는 이후보는 과거 법관 시절의 엄숙함과 딱딱함에서 차츰 벗어나 요즘은 사석에서 농담을 곧잘 한다. 그러나 평소 원칙주의적인 자세를 지켜 왔기 때문에 농담을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혹 무슨 의미가 담겨 있지 않나’하고 신경을 곤두세워 듣는다는 것이다.

 이후보의 지근 거리 인사들은 대부분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이후보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합류했다. 그래서 ‘인간 이회창’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후보와 교분을 맺어온 당내외 인사들이 더 할 말이 많다. 이른바 이후보의 경기고 인맥 ‘8인방’이라고 불리는 황우려·서상목·백남치의원, 황영하 전 총무처장관, 안동일·진 영 변호사, 한종기 박사, 이홍주 총재 비서실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이후보가 법원에 재직할 때부터 시작해 15년 넘게 교분을 맺어 오다가 이후보가 정치에 입문할 때 ‘전국구 0순위’케이스로 함께 들어온 황우려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후보는 상대방과 풀어헤쳐 놓고 친해지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항상 흐트러짐 없으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끼는 전형적인 충청도 선비 스탕일 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년 이상 이후보와 교분을 맺어온 사람들은 ‘이후보의 그윽한 선비형 인품에 감동해서 같이 간다’고 이야기 할 정도다.”그는 선거전에 들어서면서 주변에서 이후보에게 부드러운 표정과 이미지를 연출하라는 주문을 하지만,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실실 웃고 다니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무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후보도 술자리와 같은 사석에서는 의외의 호방함을 내보이는 측면이 있다. 주량은 맥주 3병 정도이지만 가끔 폭탄주를 마시며,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는 먼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잡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한국당 경선 직전 기자들의 ‘자택 개방’ 요청에 따라 한동안 구기동 자택에서 ‘조찬 정치’를 했던 이후보는, 요즈음은 거의 자택에서 공식 업무를 보지 않는다. 현재 이후보의 자택에는 비서관 2명이 24시간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의 업무는 외부에서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받아 당으로 연결해 주는 일이다.

 이후보 자택에서 일하는 한 비서는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구기동 자택을 과거 상도동이나 동교동처럼 생각하고 정책을 건의하거나 민원 사항을 보내온다. 그러나 응접실이 좁은데다 총재가 모든 업무를 당의 공식 채널을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자택으로 밀려들어오는 업무를 당으로 연결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김대중:손녀를 여비서 부를 때 “아야, 이리 와 보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달리 오랫동안 당의 공식 기구와 자택의 ‘식사 간담회’라는 두 채널을 함께 가동해 정치를 해왔다. 당연히 김후보를 보좌하는 ‘그림자 군단’도 당과 일산 자택에 함께 포진해있다. 물론 외부 일정이 많은 선거 시기에는 대부분의 공식·비공식 업무가 당과 외부 호텔 등지에서 이루어진다.

 현재 김후보를 가까이에서 밀착 수행하는 그룹은 이재만 수행 비서, 김득회 보좌역과 10여 년간 운전을 맡아온 김종선 비서가 있다. 또 ‘후보 경호 실장’인 김옥두 의원을 비롯한 경호 요원 8명이 김후보의 안전을 맡고 있다. 경호원은 대부분 5~10년 동안 김후보를 수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경찰청이 파견한 경호원 12명도 여기에 가세했다. DJT 연대가 성사된 후 3인 공동 행사가 잦아지면서부터 경찰 경호원들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박태준 의원에 대한 밀착 경호까지 맡고 있다.

 지난 32년간 김대중 총재와 동고동락하면서 ‘경호’를 책임져온 김옥두 의원은 “김총재는 항상 경호원들을 친자식이나 조카처럼 대하며 ‘모든 정성을 쏟아 나를 돌봐준 데 대해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경호 요원의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는 나를 불러 생기도록 지시하는데, 절대로 총재가 했다는 것을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한다”라고 말했다.

 김후보 역시 수행 인사들ㅇ르 부를 때는 직책을 넣지만, 사석에서는 ‘김군’ ‘장군’등으로 호칭하거나 ‘동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녀뻘 되는 여비서들에게는 ‘아야, 이리 와 보렴’하는 식으로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김후보에게는 오랜 정치 생활 때문에 측근·가신으로 불리는 정치적 동지들이 다른 후보에 비해 유난히 많다. 요즘 이들의 눈에 비치는 김대중 후보는 ‘애증’의 요소가 없지 않다. 이에 대해 20년간 김후보를 그림자처럼 보좌해온 한 측근은 “총재가 끊임없이 새 인물 영입에 공을 들이고 공조직을 배려하니 솔직히 섭섭한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정신적 만족감’ 하나만을 추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에는 그것이 또 다른 장점으로 비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김후보를 24시간 밀착 수행하는 경호원들과 비서진의 눈에는 92년 대선에 비해 달라진 총재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총재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92년 선거 때는 회의가 열리면 총재의 논리에 압도돼 참석자들이 받아 적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석상에서 총쟁의 농담이 많아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일부 참석자는 회의 도중 창가로 가서 걸려오는 무선 전화를 받을 정도로 자유스러워졌다”라고 말한다.

 김총재의 변화에 수행원들이 애를 먹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빡빡한 공식 일정 속에서 김후보는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역사·철학·연애 등)의 애기가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바져들어 수행원들이 다음 일정 메모지를 수 차례 들이밀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김후보는 자기의 학구열을 측근 인사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일을 맡기면서도 ‘공부를 맡긴다’고 표현하고, 측근이 맡은 일을 잘못해도 ‘공부를 더 하면 이러저러한 식으로 풀 수 있다’라고 안내한다는 것이다.

 김총재는 보통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는데, 자택 집무실에는 이보다 앞서 일어난 윤철구 비서가 조간 신문을 올려놓는다. 윤비서는 장옥추 여비서와 함께 김총재 자택의 안팎 살림을 도맡고 있는 집사 격이다. 충남 예산 출신인 윤비서는 2년 7개월 전 친지의 소개로 일산 자택 근무를 시작한 이래 지금은 김총재의 옷에 묻은 먼지까지 스스럼없이 털어 주는 사이가 되었다. 집안에서 총재의 얼굴 표정으로는 화가 났는지 기쁜지 차이를 느낄수 없지만 업무보고 끝에 야무지다는 칭찬을 들을 때가 한없이 기쁘다는 윤비서는, 이번에 김총재가 당선되어도 청와대에는 함께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들려주는 김총재의 요즘 자택 생활은 이렇다.

 “요즘은 외부 일정이 바쁘기 때문에 밤늦게 귀가하지만, 한가한 날은 오후 6시30분에 들어와 <정 때문에> <동물의 왕국> <용의 눈물>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그 후 집무실에서 오전 1시까지 일을 보고 취침하는데, 사모님이 잠좀 일찍 자자고 늘상 투정 할 정도로 일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평균 4시간 정도 수면을 휘한 후 기상하는 김총재의 아침 일과는 자택 조찬간담회 또는 외부 조찬으로부터 시작된다. 출발하기에 앞서 매일 버릇처럼 정원의 화초를 둘러본 후 자택에서 키우는 진돗개(똘똘이)를 쓰다듬으며 ‘똘똘아, 나갔다 오마’라는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진돗개는 ‘영물’이 다되었단다. 하루 종일 종용하다가도 김총재가 탄 차량이 귀가하는 기척만 있으면 30m 전방에서부터 요란하게 짖어댄다는 것이다.

이인제:즐기는 음식은 멸치와 고추장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그림자 군단은 이성환 수행 비서가 주축이 되어 이끌고 있다. 이후보가 87년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현재까지 따르는 이성환 비서는 경호팀 구성에서부터 후보 일정 챙기기, 이미지 전략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도맡아 왔다. 여기에 지난 4월 안재희 부대변인, 양종직 비서(이후보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가 가세해 현장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이인제 후보 경호팀은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때 이성환 비서가 선발한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태권도부 출신 3명이 지금까지 뛰고 있다. 최근에는 경찰청이 파견한 경호원 12명이 이후보 경호에 합류했다.

 공식 석상에서 나타나는 이인제 후보의 외모와 풍채는 당당하다는 평도 받지만 지나치게 뻣뻣하고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성환 수행 비서는 “많은 사람이 이후보가 대선 출마 후 일부러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키가 작은 이후보가 어릴 때부터 어깨와 허리를 지나치게 펴고 살아온 습관이 굳어진 것이라서 교정할 수가 없다. 이후보의 등은 일반인과 달리 골이 패지 않고 양쪽이 붙어 있다”라고 말한다.

 대신 사석에서 이후보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가령 식사를 할 때는 어떤 자리에서건 식탁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서 입에 넣는가 하면, 수행원들이 민망할 정도로 소리내서 식사하는 습관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워낙 가난하게 자랐던 이후보는 어릴 때 즐겨 먹던 멸치와 고추장을 지금도 즐겨 찾으며, 올벼를 주요 간식으로 먹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후보의 수행 차량에는 올벼가 떨어질 날이 없다고 한다.

 이후보는 측근을 부를 때 대개 직책을 부르지만, 특이한 점은 직책이 변한 뒤에도 처음 인연을 맺을 때의 직책을 그대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이후보가 처음 맺은 인연에 끝까지 집착하는 성격이라고 해석한다. 이후보가 가까이 둘 사람을 고를 때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군출신을 중용한단ㄴ 점이다. 군 출신에 대한 집착은 여비서를 채용할 때 두드러진다. 경기도지사 시절에 도청 여비서를 여군 출신으로 채운 이후보는, 대선 출마 후에도 3군 사령관 전속 부관을 지낸 여하사관을 여비서로 뽑았다.

 육군 병장 출신이 이후보가 군대라는 인연을 중시하는 모습은 일찍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관리해온 ‘구영회’라는 조직에서도 드러난다. 이후보가 근무했던 30사단 90연대 동료 선후배들이 모인 구영회는 현재 40여명의 조직을 갖춘 이후보 외곽 지원 부대로 자리잡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대 시절 이후보의 상관이었던 방화수 중대장이 현재 이후보 경호대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이인제 후보는 자택인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의 아파트를 개방하지 않고 있다. 기자단과 측근들이 자택에서 조찬 모임을 가지라고 권유했지만 대입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2, 고3 두 딸을 의식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권 고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세 후보의 측근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후보가 집권하면 가신 정치와 측근 비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장담한다. 바로 앞 정권에서 측근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는 꼴을 보았는데 그런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할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YS정권에서 줄줄이 터졌던 가신과 측근 비리를 지켜보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 국민들로서는 선거전이 본격화할수록 각 후보 측근들의 행태 또한 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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