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길 콤비’와 기타 여러분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1.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김원길 · 김한길, TV 토론 1등 공신…김종필 · 박태준 ‘지역 방어’…조세형 · 이종찬, 북풍 차단

킹뒤에는 킹 메이커가 있는 법. DJ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수많은 참모가 막전 막후에서 활약했다. 이번에는 DJ가 도전한 과거 세 번의 선거와 달리 각양각색 인사들이 대거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다. 가신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실세 그룹을 형성한 이들은 차기 정권의 중추 세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뭐래도 김대중 당선의 수훈갑은 자민련 김종필 명예 총재와 박태준 총재다. 시종 시소 게임을 벌인 박빙의 승부에서 DJ가 승리한 결정적 요인은 충청권에서 압승이었다. 약세로 평가되었던 경기도에서 DJ가 이회창 후보를 4%나 앞선 것도 이 지역 충청 출신 유권자의 공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13쪽 상자 기사 참조).

 김종필 명예 총재와 함께 DJT 3자 연대의 핵심축을 이루었던 박총재도 그에 못지 않은 역할을 했다. 비록 그의 지역구인 포항에서 DJ의 득표율이 낮기는 했지만, TK표가 이회창 후보에게 완전히 쏠리지 못하도록 방패막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영남에서 김대중 당선자가 10% 이상 고르게 득표한 데는 박준규·박철언·김복동·이정무 등 자민련 내 TK출신 의원들의 활약도 컸다. 특히 박철언 의원은 4·11총선 직후부터 줄기차게 DJ로 단일화하자고 주장해 자민련 내에서 ‘김대중 첩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자민련 의원들이 당을 초월해 김대중 표 몰이를 시도했다면, DJ의 선거 전략을 주도한 핵심 주체는 역시 국민회의 인사들이다.

영남 출신 노무현·김민석·추미애 맹활약
 올 대선에서 국민회의측 선거 캠프의 삼두 마차는 조세형·이종찬·한광옥 부총재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당 총재인 DJ를 대신해 선거 기간 내내 무리 없이 당을 꾸렸고, 이종찬 부총재는 대선 기획단장을 맡아 실질적인 선거 사령탑 노릇을 했다. 북풍 차단, 대규모 영업 작업 등이 모두 조·이콤비 작품이었다. 한광옥 부총재는 자민련 김용환 부총재와 야권 단일화 협상 창구를 맡아 역사적인 DJP 단일화를 성사했다. 한부총재는 두 사람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날 “간과 쓸개가 다 녹아 벌렸다”라며 그간의 고층을 털어놓기도 했다.

 삼두 마차와 함께 ‘포스트 DJ' 대열에 올라 있는 김상현 고문과 정대철 부총재는 가두 유세전이 본격화하면서 유감 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김고문과 정부총재는 파랑새 유세단을 진두 지휘하며 막판 수도권 표심 낚기에 열을 올렸다.

 좌원길 우한길, 김대중 캠프에서는 97년 선거전에서 DJ를 대통령으로 만든 핵심 참모로 ‘길길콤비’를 주저없이 꼽는다. 국민회의의 정책 산실인 김원길 정책위의장과 미디어 선거전을 이끈 김한길 의원을 일컫는 얘기다.

 길길 콤비의 진가는 40여 회가 넘는 토론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DJ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잇었던 데는 내용과 포장 양면에서 앞서간 두 사람의 활약이 컸다. 길길 콤비에게는 벌써부터 98년 서울시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당내 인사들로부터 추파가 쏟아지고 잇다.

 젊고 호감 가는 이미지를 무기 삼아 ‘몸으로 때운’ 참모도 부지기수다. 이 가운데 가장 활약이 두드러졌던 인사가 김민석·추미애·노무현 트리오. 셋 다 영남 출신이면서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이들은. 수도권과 영남의 단골 연사로 거리를 누비면서 DJ의 취약점을 메워 갔다. 통추 맴버들과 함께 국민회의에 합류한 노부총재는 당초 ‘이인제 견제맨’을 자처했으나, 이인제 후보가 3위로 처지자 연설 테마를 ‘지역 감정 타파’로 바꾸었다. 추미애 의원은 대구·경북 지역과 불교계 공략에, 김민석의원은 수도권과 부산 민심잡기에 앞장섰다. 이들은 저마다 대선 CF에 출연하고 찬조 연사로 적극 나섰다. 특히 김의원은 카네디의 연설을 연상케 하는 광고에 출연해 연기자 뺨치는 연기력을 선보였는가 하면, 12월17일 DJ의 마지막 명동 유세에 사회자로 나와 5천여 청중을 휘어잡았다.

 ‘지명도’와 ‘인기도’에서 김대중 당선자에게 가산점을 안겨준 사람으로 정동영 대변인을 빼놓을 수 없다. 뉴스 앵커 출신인 그는 탁월한 언변과 진행 감각을 발휘해 대규모 행사와 각종 기자 회견을 매끄럽게 소화해 냈다. 그는 또 오랜 방송 경험을 활용해 DJ가 텔레비전 화면에 보기 좋게 나올 수 있도록 막후 조정역을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DJ 쪽의 언론대책반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 정대변인이 방송 쪽을, 박지원 특보가 신문 쪽을, 이영일 특보는 사설·논설 쪽을 집중 마크했다. 박특보의 경우 각 언론사의 사소한 동향까지도 즉각 감지할 수 있도록 각사에 파이프라인을 심어 두었으며, 마감 시간이면 어김없이 편집국에 나타나 ‘박주간’ ‘박논설위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 중에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한 숨은 일꾼도 많다. 나종일·김태동·이 선 교수를 비롯한 40여 명의 자문교수단과, 장성민 부대변인이 이끈 빠삐용그룹이 대표적인 정책 참모 그룹으로 꼽힌다.

엄삼탁 등 ‘외인 부대’도 한몫
 김옥두 의원이 이끄는 수행팀도 ‘훈장 없는 용사’들이다. 12명으로 구성된 수행팀은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오전1~2시까지 김대중 후보를 밀착 수행하면서 신변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수행 비서가 아닌데도 DJ가 곁에 두고 싶어했던 사람이 박선숙 부대변인이다. 박부대변인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편안함으로 DJ와 이희호 여사를 보필했다.

 ‘화합형’인 유재건 비서실장은 윽유의 유연성과 유머 감각을 발휘해 DJ와 참모진 사이의 마찰음을 최소화했다. 그는 또 DJ와 외국 채널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했다.

 과거 세 차례 대선에서 전면에 나서 지휘했던 ‘동교동 가신’들은 이번에는 철저히 잠행했다. 가신 정치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가신들은 대신 취약지에 투입되어 밑바닥 표 다지기에 전념했다. 한화갑 의원은 부산·경남에서, 최재승 의원은 대구·경북에서 한 달 넘게 장기 투숙하는 식이었다.

 권노갑의원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40년간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그는 이번에는 기결수 신분이어서 투표권도 행사하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DJ의 승리를 기원해야 한다.

 한편, 외인 부대 가운데 박힌 돌 못지 않게 힘을 보탠 인사도 여럿 있다. 김원기 대표를 비롯한 통추 인사들은 상대 당의 3김 청산 주장을 희석했고, 한나라당 최형우 고문의 동생 최형호씨는 부산에서 DJ가 15%가 넘는 표를 얻는 데 기여했다. 엄삼탁 전 병무청장도 막판에 병역 문제에 불을 당긴 병무청 직원 이제왕씨의 ‘이정연씨 체중 고의 감량’ 폭로를 주선하는 등 막후 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생색내지 않고 묵묵하게 소임을 다한 공로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