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유럽은 내 손 안에 …”
  • 부다페스트ㆍ김성진 통신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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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점으로 정치ㆍ경제 구조 통합 가속 …“2등국 전락??위기감 높아져 동유럽에서 가장 활발히 기업 활동을 펴는 나라는 독일ㆍ일본ㆍ이탈리아이다. 헝가리에 주재하는 한 일본 대기업 직원은??우리는 이곳이 독일의 영역이며 결코 그들과 경쟁할 수 없음을 잘 안다??면서 현재의 사업방향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동유럽이 독일의 영역이라는 사실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중심가를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회사 간판은 대부분 헝가리어와 독일어로 명기되어 있고 회사 직원은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리고 공산주의 몰락 후 새로 생겨난 회사는 대부분 독일과 합작 형태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력에 걸맞는 영향력 행사하겠다?? 동유럽에서 독일자본이 맹활약하는 것은 그 바닥을 흐르는 독일의 새로운 대외정책과 맞물려 있다. 공산주의 몰락과 독일 통일로 상징되는 신 국제질서 속에서 독일이 적극적으로 펴는 새 정책은, 지난해 7월22일 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과 폴커 뤼헤 국방장관의 발언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그들은??주권국가인 독일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 함몰된 난장이처럼 행동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행동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내외에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독일이 신 국제질서 속에서 국력에 걸맞는 영향력을 세계에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 같은 독일의 신 정책이 구체화된 것은 91년의 걸프전에서다. 당시 독일 정부는 전투병력 파견을 적극 검토했다. 그러나 군대를 파병할 경우 일어날 파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독일 정부는 나토 동맹국인 터키의 공군기지에 일부 독일 공군기를 배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독일군의 해외 파병은 주변국가에게 과거의 악몽을 되살리게 한다. 콜 정부가 처음 a의도를 관철하지 못한 가장 큰 장애물은 독일 기본법(헌법)이다. 1947년 제정된 독일기본법은 이른바 독일의 무장을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평화헌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본법 24조에서 독일군의 활동은‘서독??의 자체방위, 그리고 나토 동맹국 일원으로서의 전투참가라는 극히 제한된 범위에 묶여 있다.

 독일 통일과 옛 소련의 몰락은 47년 기본법의 전제가 된 국제질서를 와해시켰고, 콜 정부는 한때 기본법 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했다. 그러나 신나치주의자의 준동으로 독일에 대한 주변국의 시선이 따가운 시점에서 기본법 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파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리수다. 그래서 콜 정무는 단기적으로 외교공세를 통한 영향력 증대를 도모하는 한편, 유엔 평화유지군의 우산 아래 독일군의 해외 파병을 추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 독일의 의도는 유고내전 중재과정에서 나타났다. 전쟁 초기 독일은 전쟁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프랑스와 영국 등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승인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독일 구축함 바이에른호를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아드리아해에 파견했다. 콜 정부는 유고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독일군의 활동 폭을 더욱 넓힐 계획인 것 같다. 예컨대 유엔 평화유지군에 독일군을 포함시키며,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군 의료단 파견 등 인도주의 차원에서 적극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국력에 걸맞는 영향력 행사??라는 독일의 새 외교정책은 동유럽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유럽은 1ㆍ2차대전 당시 독일 팽창정책의 1차적인 희생자였다. 또 이곳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독일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져온 곳이다. 19세기 헝가리 정치가 요셉 에트버스는??동유럽이 분열되면 될 수록 그만큼 더 러시아나 독일의 먹이가 되기 쉽다??고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20세기 들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동유럽은 2차대전기간 나치독일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의 위성국이 되고 말았다.

 지배엘리트ㆍ지식인이‘독일화??부추겨 옛 소련의 몰락은 지역 패권자로서 독일이 재등장함을 예고한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독일의 자본이 급속도로 메워가고 있으며, 독일의 패권주의를 경고하는 이곳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우선??포스트 공산주의??시대의 동유럽이 사실상 독일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ㆍ경제 구조로 통합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수평적 협력관계가 아니라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관계와 같은 경제적 종속관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동유럽의 정치적 독립마저 위협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독에 편입된 동독처럼 동유럽 전체가 2등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도 확산되고 있다.

 동유럽의‘독일화??를 현실화하는 또 다른 요인은 동유럽의 새로운 지배엘리트의 성향이다. 바츨라프 하벨 옛 체코연방 대통령, 요셉 안탈 헝가리 총리 등은 모두 첫 해외 방문국으로 독일을 선택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많은 지식인이 독일화를 가속화한다.

 독일 경계론을 펴는 일부 인사들은 그 대안으로 동유럽 지역공동체 창설을 제안하지만, 경제발전 수준이 도토리 키재기인 현실에서 이 제안은 별로 힘이 없어 보인다. 독일이 동유럽의 새로운 패권주자가 되는 것은 대세가 되었다. 새롭게 형성되는 신 국제질서 속에서 독일이 앞으로 어떤 자리매김을 할 것인지에 따라 동유럽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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