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친자식 민주계는 불안하다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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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요구와 민주계 체질은 부조화…타 계파 의식한 의도적 배제 가능성도 “당선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님은 멀어져만 간다.?? 민자당의 한 민주계 당직자의 이 말은 민주계에 속한 사람 전체의 심정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표현이다. 민주계는 김영삼 차기대통령의 직할 부대였다. 그들은 춥고 어려웠던 시절 김영삼씨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야당의 한 축을 형성했고, 민정ㆍ공화당과 합당한 후에는 특유의 결속력으로 그를 지원해 결국 집권당 대통령후보를 만들었다. 대선 기간에는 그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김영삼씨가 거대 계파를 물리치고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고,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우선 자신의 뛰어난 정치적 돌파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주계라는 그의 추종 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민주계 사람들은 김영삼씨를 떠받들어 대통령 자리로 밀어 올렸지만 그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지난 12월30일 오후 3시경 서울 ㅎ호텔에는 김영삼 차기대통령의 핵심 측근 5명이 모여 울분을 터뜨렸다. 그들은 석간신문이 보도한 대통령직인수위 위원 명단을 보고 부랴부랴 연락해 모인 것이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이러다가는 완전히 따돌림 받는 것 아니냐??라는 말들이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오갔다고 한다. 그들의 불만은 인수위 위원의 인선 내용이라기보다 민주계 핵심 측근에게조차 사전 협의나 통고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에 앞서 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지난 12월27일 생일을 축하하러 상도동 자택에 들른 측근들에게“이번 1차 조각 때 민주계는 아예 꿈도 꾸지 마라??고 말한 뒤 집을 나섰다. 이때 측근들은??민주계가 당분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고 예감했다. 인수위 인선 발표로 그들의 우려는 현실로 확인됐다. 한 핵심 측근 의원은 지난 4일부터 1주일간 산행을 했다. 일종의 시위를 한 셈이다. 그는 ??작전권을 잡으면 모든 일이 순탄할줄 알았는데 잘 안된다. 민주계의 운신 폭이 매우 좁다. 나 자신도 불안하다. 근신해야 할 입장이다??라고 말한다.

 공개적 표출 삼가 민주계 의원들은 차기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소외당한 데 대해 불쾌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나 그런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를 삼가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고 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하다. 그들은 겉으로 한결같이??민주계가 투정 부리면 안된다. YS에게 전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민주계 당직자는??인수위 인선으로 민주계가 물먹었다고 생각하기는 아직 이르다. 새 정부 인사에 관한 추천권이 없는 인수위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는 YS가 자신의 의도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며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역력하다.

 불안해 하기는 의원들뿐 아니라 민주계의 당 사무처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행정에 덜 숙달된 이들은 변혁기 때마다 다른 계파 요원보다 더 불안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경선 과정에서 반김영삼 진영에 섰던 요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먼저 정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차기대통령은 선거 기간에??당부터 개혁하겠다??고 천명했고, 이에 따라 말만 나왔다가 흐지부지된 당 기구의 축소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당 기획조정실은 현재의 23개 국을 15개 국으로 축소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행정부 기구를 축소하기 위한 명분도 된다. 그렇게 되면 사무처 요원보다도 많은 82명의 국장급이 절반으로 준다. 상당수의 간부와 사무처 요원이 보직을 잃고 방출될 수밖에 없다.

 민주계 의원들이나 사무처 요원들은 차기대통령이 옛날의 김총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선 경호를 민주계가 아닌‘외인부대??로 대체했고, 이미 다른 세력이 인의 장막을 쳤기 때문이다.

 민주계가 한 중진 의원은“YS는 수십년동안 대통령을 꿈꾼 만큼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한다. 국민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계보 관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절대로 민주계를 챙길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계가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YS를 대통령 만드는 데 이만큼 노력했으면 그에 대한 예를 충분히 했다. 만약 그가 잘못할 경우 뛰쳐나와 야당 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관측통은 민주계가 중용되기 어려운 몇 가지 이유를 지적한다. 우선 쓸 만한 인력이 많지 않다. 민주계 인사 대부분은 야당 출신인데 민주화 투쟁 경력이 있어야 계보 내에서 정통성을 인정받고 힘을 가졌다. 그들이 탄압에 저항하는 데 단련돼 있고‘아스팔트 정치??에는 익숙할지 모르나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전시에는 장군이, 평화시에는 문신이 대우받듯이 정권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물과 정권을 운영하는 데 요구되는 인물은 다르다는 것이다. 시대의 요구와 민주계의 체질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민주계의 고민이 있다.

 차기대통령은 아직도 당의 단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는 소수 계파의 수장으로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후보가 됐고, 후보가 된 후에는 조그만 충격에도 동요하는 다른 계파 의원들을 무마해 당을 봉합하는 데 신경 써야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는 하나 민주계를 챙기다가는 더 큰 덩어리가 반발할 수도 있다. 또 차기대통령은 전체를 포용하는 제스처를 보이기 위해서도 민주계를 요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YS는 이미 민주계 관리 손뗐다 민주계의 내부 사정은 어떤가. 차기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형우ㆍ서석재ㆍ김덕룡 의원 가운데 최의원은 현재 어려운 입장이다. 최의원은 대선 기간 민주산악회 회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서의원은 4년전 동해시 보궐선거 때 상대 당의 후보를 돈으로 매수, 사퇴시킨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났으나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최의원을 검찰에 소환한 것은 정주영 국민당 대표를‘족치기?? 위한 방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차기대통령은 대선 기간 민주산악회 운영 등과 관련해 최의원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선거 기간에는 국민당 정대표에 대한 견제책으로 최의원을 칠 것이라는 말이 나돈 것을 보면 그의 위상이 그렇게 탄탄치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사법 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과 정리된 사고와는 거리가 먼 듯한 그의 이미지를 감안할 때 그의 요직 등용은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정가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서의원의 경우 대통령 취임식 전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내려진다면 취임 후 곧 있을 사면 복권 조처로‘동해 사건??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하다.

 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 민주계 실세 3인은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핍박받을 때 똘똘 뭉쳤던 그들은 대통령선거에 돌입하면서부터 각자의 세력 확장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정상이 눈앞에 보이면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는 싸움이 벌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특히 최의원과 서의원은 조직 내의 주도권 다툼으로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적도 있다. 민주계의‘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목표가 달성된 지금 세 사람의 단합은 이미 깨졌다고 봐야 한다.

 한 민정계 당직자는 외부에서 세 사람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 사람은 우선 자신을 추종하는 의원을 한 사람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적인 계보가 없다는 말이다. 차기대통령이 민주계 관리에서 손을 뗐고 그들은 이미 분열돼 있다. 그들의 영향력은 오직 차기대통령의 신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불만 증폭되면‘반발??할 수도 민주계 인사들은 차기 대통령의 개혁 프로그램과 애써 연관시켜 민주계의 요직 등용을 주장한다. 한 민주계 당직자는 국회 행정처장 등은 물론이고 정부쪽에도 임명이 가능한 부처인 총리실이나 정무장관실에 민주계를 배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급격한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과 이에 부응해 혁신적 제도 개선을 피하려는 차기대통령의 의중이 민주계의 진출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민주계가 개혁추진의 주체로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이다.

 차기대통령은 당직의 배분에 있어 민정ㆍ공화계 계파에 더 배려를 해야 할 입장이다. 이에 따라 민주계의 불만이 증폭되면 언젠가 반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민주계 의원 상당수가 탈당이라도 하면 차기대통령의 지도력은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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