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학원마저 ‘UR비상’
  • 박성준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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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장 개방 눈앞 …박사ㆍ외국인 강사 채용, 학원 계열화 등‘살아남기??안간힘 ETC학원은 지난 87년 서울 역삼동에 문을 연 신흥 외국어 전문학원이다. 영업을 시작한 지 5년도 채 안됐지만 이 학원은 최근 민병철어학원, ELS학원 등 강남에서 내노라하는 인근의??명문??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이름난 신흥 학원으로 자리잡았다. 이 학원이 비교적 짧은 연조에도 이처럼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은 일간지를 통한 초반 광고 공세가 먹혀든 덕택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학원이 내세운 쟁쟁한 강사진의 위세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ETC학원은 설립 당시 영어 일어 등 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20여명 전원을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로 채웠다. ETC학원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이 전략 덕분에 최근 수강신청자 수가 매달 8백명을 넘는 등 꾸준한 성장을 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ㆍ경영기법 개발해야?? 국제화 시대를 맞아 국내 외국어학원이 변모하고 있다. 살아 있는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일반인의 욕구가 커지고 머지않아 교육시장도 개방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외국어 학원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문법과 독해 위주의 강의, 어학 테이프를 활용한 회화 등 낡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많은 유명 학원들이 외국어 강사 대부분을 전문교수 능력을 갖춘 외국인(네이티브 스피커)이나 해외에서 유학을 마친 석사학위 소지자 이상의 고학력자로 충원하고 어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는 등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강사들의 고학력화 바람이다. 엄격한 공개채용 시험을 통해 강사를 선발하고 사후관리를 위해 자체적으로‘강사평가제??까지 실시하고 있는 서울 종로 3가의 파고다외국어학원도 고학력 바람을 일으킨 곳의 하나다.

 “우선 에세이 형태의 영작시험을 본 뒤 발음, 이해력, 직독ㆍ직해 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을 칩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주제에 관계없이 묻고 대답하는 회화시험을 봐야 합니다.??20년 동안 학원을 운영해온 고인경 파고다외국어학원 원장은??벌써 오래 전부터 공채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파고다외국어학원의 수강생 수는 월 평균 3천명 수준.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 수는 1백20여명이다. 이들은 모두 공개시험을 통해 엄선된 사람들로서??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학원이 강사를 뽑을 때 내ㆍ외국인을 막론하고 지원자의 전공분야와 학력을 본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외국어학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학원은 직장인 수강생을 위해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밤11시30분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문 외국인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코네티컷주의 하트포드대학, 콜로라도주의 포담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이 학원 일본어 담당 고다마씨는“예전에는 관광비자를 가지고 들어온 뜨내기 강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엔 웬만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강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이다??라고 말한다.

 고학력 강사가 느는 이유는 학원 강사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 데다 대졸 이상의 고급인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학원측이 맹목적으로 고학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학력 수준보다 얼마나 쉽고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고다외국어학원이 지난해 11월에 실시한 강사 공개채용 시험에서는 국내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응시자 16명이 무더기로 낙방했다.

 수준 높은 강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학원측은 강사의 교수능력을 철저히 평가해 강사진 운영에 반영하는 강사평가제도도 도입했다. 파고다외국어학원 서울외국어학원 등 몇몇 이름 있는 학원이 잇달아 도입하고 있는 이 제도는 1년에 한번씩 강사의 교수능력을 평가하고 일정 수준 이하의 강사는 탈락시키는 제도이다. 강사평가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서울외국어학원의 송석호 원장은“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말한다. 현재 서울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본토인은 모두 7명이다.

 강사진의 고학력화ㆍ전문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름난 학원들은 다른 지역에 분원이나 가맹점(프랜차이스)을 두어 학원의 수직적 계열과를 이루려고 시도한다.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의 기업형 대형학원이 한국에 몰릴 것을 예상해 규모면에서 맞서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취업규정 손질부터?? 서울 서초구에 본점을 둔 민병철어학원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 학원은 이미 대구와 부산에 가맹점을 설치하고 본원에서 교재ㆍ교육방식ㆍ강사관리 등을 책임지는 대신 분원에서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거둬들이고 있다. 민병철 원장은??자본과 노하우,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외국 학원들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우수한 강사진을 확보하고 한국인에게 알맞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경영기법을 개발하는 것 또한 시급한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장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 이미 일본 내에 1백80여 방계학원을 두고 있는 순다이 등 국제적 규모의 기업형 학원들이 국내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시장조사를 하며 정지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국학원연합회(이하 연합회)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외국어학원 수는 지난 92년 12월 현재 1천1백80여개이다. “이 가운데 98% 이상은 중고등학생의 보완학습 기능을 담당하는 영세업체??라고 연합회 산하 외국어교육협의회(협의회)측은 말한다.

 이 때문에 업계는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송석호 협의회 회장(서울외국어학원 원장)은“어느 때보다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학원이 자체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인 개혁과 교육기관 간의 관계조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민병철어학원의 민병철 원장은“국내 학원이 시장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그러기 위해선 좀더 우수한 외국인 강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외국인 취업규정부터 손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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