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 북한에 팀스피리트 ‘한파’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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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대응 훈련’용 석유 태부족 …한국 기업 통해 구매 국가안전기획부는 최근 재벌그룹 종합상사의 북한담당 간부들을 불러 호되게 질책했다. 일부 종합상사가 극심한 석유보족에 시달리는 북한에 석유를 몰래 공급해준 사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기업의 한 북한 관계자는??지금도 북한으로부터 석유공급 요청이 계속 들어온다??면서 최근??안기부에 불려가 혼이 났다??고 한다. 남북한 교역에 있어 석유나 식량과 같은 전략물자는 3국의 중개상을 통한 간접거래라 할지라도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기업의 북한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는 북한과의 석유거래를 전면 부인하나, 한 관계자는??북한의 요청이 절실한 만큼 사업자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소량이나마 석유공급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거래를 하다보면 사업자 간에도 우정이 생긴다. 상대가 어려울 때 도와줘야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남한 종합상사에 석유공급을 요청 할 수밖에 없는 다급한 현실은‘남북경협??이라는 언론의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역설적인 남국관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북한이 석유를 필요로 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남한과 미국이 재개하기로 한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쪽이 매해 봄마다 대규모의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을 진행하면 북한도 이에 대응해 대규모 기동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 당면한 북한은 현재 이러한 맞불 놓기용 군사훈련에 필요한 석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시사저널》 92년 12월31일자??핵개발 부추기는 북한의 석유위기??참조).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 남한 정부와 미국이 올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배경에는 북한의 석유 위기를 염두에 두고, 팀스피리트를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전문가는??북한의 석유보급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남한 정부의 의도가 분명히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팀스피리트 훈련을 격렬히 반대ㆍ비난하는 이유도 이런 배경에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해한다. 북한은 남한의 군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남한에 석유공급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가혹하고도 역설적인 현실에 놓여있다.

 민족통일연구원 吉炡宇 연구위원은“석유가 부족해 훈련도 못한다는 사실은 북한군부에게 상당한 충격일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북한의 석유부족에 대한 가장 큰 불만집단이 군부라는 분석은 국내외적으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국제 전략문제연구소 윌리엄 테일러 박사는??북한의 식량과 에너지 사정이 아주 어렵다. 북한을 궁지로 몰아 군사적으로 도발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길연구위원도??팀스피리트 재개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이견이 있다. 북한을 우리가 너무 구석으로 몰아붙인다??는 생각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서울에 들린 한 외국인 학자는“북한 내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라며??팀스피리트가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팀스피리트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훈련은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한 북한에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대기업의 한 북한 관계자는??김일성이 3월중 중국을 방문해 등소평을 만난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면서 김주석의 방중이 석유부족으로 발생한 군사전략적 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민족통일연구원의 길연구위원은??김일성이 직접 나서면 그만큼 정치적 위험도 따른다. 아무런 원조도 받아내지 못할 경우 김일성의 정치적 타격은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마지막 선택은 개방뿐??북한은 사상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만 처한 것이 아니다. 북한내 화교들이 폭동을 일으킬 만큼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국내의 많은 전문가는??북한의 선택은 이제 개방이라는 마지막 카드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외교역을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최근 현금결제가 아니면 더 이상 교역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함으로써, 외화가 없는 북한은 사실상 전통적인 교역상대국을 모두 상실한 상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연구소 裵鍾烈 책임연구원은??사회주의 시장을 상실한 것이 북한 경제난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남북한 관계에서도??북한은 이제 전향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북한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곤경에 빠져 있다. 그러나 어쨌든 변화는 온다.??

 북한과의 교역을 추진하는 국내 대기업도 남북관계에 모종의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제아래 최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모 그룹은 최근 그룹 내 임원급이 참여하는‘북한진출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그룹 차원에서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북 관계자의 해외출장이 잦아지면서 정부를 능가하는 기업의 정보수집 경쟁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금액으로 본 교역량은 럭키금성상사가 단연 수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삼성물산과 대우가 뒤쫓고 있다(아래 도표 참조).

 남한과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도 태도 변화를 보일 수 있는 구실을 찾을 것으로 기업측에서는 기대한다.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어떤 형태로든 핵문제는 해결된다. 북한도 이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시점에 도달했다??라고 말한다. 국내 북한 전문가 대부분은 북한이 조만간 핵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으로 전망한다. 핵에 관한 한 남한과 미국의 입장이 분명한 만큼 핵개발 의혹을 계속 불러일으켜 봤자 북한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 董龍昇 주임연구원은??북한은 핵으로 울궈먹을 만큼 울궈먹었다. 신정부에 뭔가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金日成 주석이 신년사에서 김영삼 차기 정부를 비난하지 않은 것도??신정부와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경제난은 바로 체제붕괴 압력으로 작용한다. 정책은 지그재그 식으로 나올 것이나, 추세는 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한국수출입은행 배 책임연구원은 예상한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팀스피리트가 완전히 끝나는 하반기쯤 북한이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 金道卿 연구위원은 팀스피리트가 종결되는“내년 하반기에는 남북관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은??대북관계는 우리 쪽보다 북한 쪽에 달린 문제다. 우리가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북한은 과거의 예로 보아 팀스피리트 중단 등을 조건으로 새 정부 출범 직후 태도가 변할 가능성이 있다. 한 북한전문가는??신정부는 북한에 대해 분명히 획기적인 구상을 들고 나올 것이다??라고 관측한다.

 남북 간의 정치적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남북교역은 꾸준히 증가해왔으나, 3국간 거래를 통한 간접교역은 거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기업에서는 본다. 삼성물산 북방전략실장 趙京漢이사는 “북한도 우리에게 더 이상 내줄 물건이 없다. 교역을 늘리려면 결국 우리가 직접 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통일원에 따르면 88년 10월부터 92년 9월말 현재까지 남북교역 규모는 승인기준으로 총8백2건에 4억9백44달러를 기록했다(68쪽 도표참조). 남북교역이 본격화된 88년부터 크게 늘어난 교역규모는 91년 남한이 북한의 5위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교역규모는 92년 1월에서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비록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으나 급증세는 이미 꺾인 것이다.

 북한과 교역하는 대기업은 북한과의 거래에서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에 대비한다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한다. 나름대로 북한과 줄을 대야한다는 경쟁적 심리도 여기에 작용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주임연구원은“남북 사이의 물자교역이 추진된 이래 남한의 적자는 계속되고, 그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남북교역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남한의 일방적인 물자공급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북한으로부터 들여올 물자가 실질적으로 감축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92년 8월말 현재 남한의 적자 누계 총액은 승인기준으로 교역총액의 81.5%인 3억1천2백만달러에 달한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 김 연구위원은??북한은 결코 좋은 시장이 아니다. 그나마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광물자원도 지금 우리 경제규모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남한에게 북한은 교역상대국으로서 큰 의미가 없지만, 투자대상 지역으로서는 매력이 있다. 배 책임연구원은“북한은 한국 기업에 마지막 남은 보루다. 몇 가지 걸림돌만 제거하면 북한은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지역이다??라고 강조한다. 북에 다녀온 바 있는 배 책임연구원은??북한 노동자들은 일하려는 의욕이 있다. 근로 동기만 주어지면 생산성이 굉장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동 주임연구원은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 기업에 가져올 수 있는??환경변화는 우루과이라운드보다 더 큰 변화가 아니냐??고 되물으며??어쨌든 새로 생기는 내수시장을 팔짱만 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대기업의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 기업이 원하는 것은 북한에 원료와 시설을 대주고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임가공사업이다.

 남북한 경제교류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남한기업이 북한에 직접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그러한 여건이 남북한 정부당국에 의해 갖추어진다 해도 미국이 북한을 적성국으로 규정하는 한 북한은 투자지로서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배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북한과 합작ㆍ합영할 때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이 제품을 미국 시장 등으로 수출하는 데는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남북경협은 내부 거래 아닌 국제적 문제 남북한 교역에는 몇 가지 중대한 국제분규 소지가 잠재되어 있다(《시사저널》92년 10월29일자‘남북교역, 국제분규 소지??참조). 북한을 적성국으로 분류하는 미국은 북한과 어떠한 형태의 직간접 무역거래도 금지한다. 더욱이 이러한 국가가 원산지로 되어 있는 제품은 미국 시장으로 수출할 수 없다. 설사 북한에 대한 이러한 경제제재를 미국이 해제한다 해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회원국이 아닌 북한에 관세특혜를 부여하지 않는 한 북한 원산지 제품은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공산권 무역 전문 국제변호사 게리 설리반씨는??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 조처를 완화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본다. 더불어 관세 없이 이루어지는 남북한 교역은 가트의??최혜국 대우 규정 위반??이라는 또 다른 국제적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민족통일연구원의 길 연구위원은“미국은 남북경협을 활성화할 힘은 없어도, 이에 제약을 가할 힘은 있다. 남북관계를 보는 국내의 시각이 너무 일차원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국제적인 문제다. 남북경협도 국제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응해나가야지 단순히 민족내부의 거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주요 기업별 대북한 반출입 추이                    (단위:만달러)

 

럭키금성상사

삼성물산

(주)대우

효성물산

(주)선경

 

반입

반출

반입

반출

반입

반출

반입

반출

반입

반출

88

 

 

23

 

 

 

66

 

 

 

89

458

245

259

 

 

 

227

 

385

 

90

197

 

225

 

 

 

51

 

111

 

91

2,636

732

1,705

518

 

 

698

 

237

 

92(상)

8,499

575

630

620

2,500

300

80

 

276

 

합계

11,790

1,552

2,842

1,138

2,500

300

1,122

 

1,009

 

총액

13,342

3,980

2,800

1,122

1,009

 

쌍용

현대종합상사

코오롱

고려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