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은‘머리’로 뛴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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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회계 선정‘우량기업??…다품종ㆍ전문화ㆍ자율경영 등??적응??뛰어나  샘월튼은 미국의 작은 면화 도시 아칸소주벤턴빌에 염가 상품 판매점을 개점한 후 이를 세계 최대의 소매점포망인??월마트??로 키운 기업인이다. 지난 85년 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인《포브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뽑았다. 그 후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미국 최대 부호인 그가 값싼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모습이 전국 신문에 실리고, 호화스러운 리무진 대신에 픽업트럭을 몰고 다닌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검소함과 절약은 그와 월마트의 성고 비결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비행기를 18대나 가지고 있는 비행 광이다.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에서 비결을 찾는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은 기업이 아닌 사람의 단편적인 행위에 눈길을 집중하게 마련이다. 한국의 재벌총수와 그들이 이끄는 재벌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총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성공의 비결로 여기거나 운 좋게 그가 정권의 눈에 들어 성공했다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샘 월튼도 이 같은 경향 때문에 성공한 기업에 대해서“많은 오해와 신비, 반쪽짜리 진실이 떠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공한 기업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조그만 산부인과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 개인병원 망으로 발전한‘길병원??. 병원의 성공 비결을 묻자 이길여 이사장은??의사가 된 게 너무 좋아 의사생활을 신명나게 했을 뿐 특별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비결을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병원의 한 간호사는 길병원이 다른 병원과 어떤 점이 다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겨울에 차가운 진찰기구를 환자의 몸에 갑자기 대면 환자들은 불쾌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점에 착안해서 우리 병원에서는 청진기 같은 것을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데워 놓곤 했다.??

 회계사이자 컨설턴트(경영상담가)인 김일섭씨는“많은 사람이 성공한 기업은 다른 기업과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를 비롯한 삼일회계법인의 경영학 박사와 석사, 회계사 10명은 지난 2년간 한국에서 성공한 기업들의??문가 다른 점??을 진지하게 탐구해왔다. 국내 최대의 회계감사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91년초 회사 창립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 이 회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기업과 서비스업체, 중소기업체에 대한 연구를 마쳤으며, 올해에는 정부 부처를 포함한 비영리 조직을 끝으로 연구를 마무리 짓는다.(상자기사와 표 참조). 새로운 경영환경을 만들어‘승자??로 뽑힌 제조기업과 서비스기업의 분석결과를 요약한다.

 커서 성공했나, 성공해서 컸나 삼성그룹 계열사인 (주)호텔신라는 삼성그룹이라는 막강한 후원자가 없었더라도 오늘날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이 될 수 있었을까. 삼성그룹의 도움 없이 73년부터 5년가 5백억원을 투자할 수 있었겠으며, 좋은 인재를 끌어올 수 있었겠는가. 연구를 진행하면서 삼일회계 연구진이 한국의 내노라하는 기업들에 대해 가지게 된 가장 큰 궁금증은“기업이 커서 성공했느냐, 성공해서 컸느냐??하는 것이었다.

 분명 삼성그룹의 측면지원이 없었다면 신라호텔이 호텔업계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한 후 신라호텔에 대한 삼성그룹의 직접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다. 자금사정이 극히 나빠졌을 때 지원한 정도다. 재벌그룹을 끼고 있으면 초창기에 기틀을 잡기는 쉽지만, 재벌 계열사라고 해서 모두 성공 기업이 된 것은 아니다. 정상을 차지한 재벌그룹 계열사들은“각 분야별로 재벌 계열사 간에도 확고하게 우열이 매겨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더 이상 20년전 상황이 아니다. 변한 환경에 제대로 적용한 기업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71년부터 슈퍼마켓사업에 전념해온 LG유통(당시 상호는 희성산업)은 88년을 전후해 큰 어려움을 만났다. 당시 2년가 이 회사의 슈퍼마켓과 연쇄점이 크게 늘어나 매출이 급신장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90년 이 회사는 다시 창업한다는 기분으로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을 다시 설정하고 사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일대 경영혁신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로 슈퍼마켓이나 연쇄점보다 상품구색을 많이 갖춘 편의점(LG 25)과 생활백화점(엘지마키) 분야에 뛰어들었다. 경상손익 기준으로 89년에 21억원이나 손해를 보았던 이 회사는 91년에는 요구를 잘 읽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양한 패턴으로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기업은 생산체제와 판매 전략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국 소비자의 취향은 이미 오래전에 다양한 구색을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섰는데도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의 한국기업은‘많이 만들어 싸게 파는 전략??에 집착하고 있다. 쉽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싸게 파는 구습에서 못 벗어난 기업들은 기아자동차 이범창 사장의 충고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거지가 백 명 모여도 거지 신세를 못 면한다.??

 시장개방과 국제화 속도도 과거와 다르다. 기업인들은 자신의 진정한 경쟁자가 누구인가를 다시 해아려 봐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의 경쟁보다는 국제경쟁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성공 기업으로 뽑힌 한국타이어의 홍건희 사장은“국내 경쟁사화의 선의의 경쟁은 긍정적인 측면이 아주 많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90년대 중반까지 세계 7대 타이어 제조회사가 되고, 2000년대까지 세계 5대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의 유명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87년을 전후해서 사회분위기는 몰라보게 변했다. 종업원의 의식구조는 전처럼 순응적이지 않다. 9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정부와 현대그룹의 갈등은 정부와 기업의 밀월관계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발로 뛰는 경영에서 생각하는 경영으로 46년 설립된 (주)백양의 한영대 회장은 생산기술에 정통한 과거 최고경영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50년 무렵 양말 직조기를 개량하여 오늘날의 메리야스 직조기를 고안해 제작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회사 내부에 기계 제작실을 두어 표백기나 염색가공기 등을 자체 설계, 제작하여 사용한다. 한회장과 같은 경영자들에겐 기업이란 구석구석 자신의 체취가 살아 숨쉬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회사 경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이런 유형의 경영자들에겐 큰 미덕이 있었다.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최초로 진공관식 라디오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금성사가 좋은 예다. 외제 라디오가 판치던 58년 (주)럭키의 전신인 낙희화학구인회 사장은 라디오 생산을 통해 전자공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화학분야의 사업이 잘 되는데 낯선 분야에 뛰어들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는 현실안주 의식, 성능 좋은 외제에 대항해 버틸 수 있겠느냐 하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더라면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만일 막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내린 이런 과감한 시설투자 결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에는 자동차산업과 반도체산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한국 기업에서 최고경영자의 구실은 아직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같은 자원을 가지고도 최고경영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흥망이 갈릴 수 있다. 경영학자들은 이를 두고“양이 이끄는 늑대의 무리가 늑대가 이끄는 양의 무리를 당하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기업규모가 커지고,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최고경영자의 지도방식은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솔선수범하는 행동보다는 합리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행동 중심의 리더십은 일사불란과 신속함과 같은 능률이 강조되는 조직구조를 낳는다. 대개 이런 구조는 조직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관료적 조직으로 발전하게 됐다. 명문화된 규율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관료적 조직구조는 조직의 질서를 잡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경직된 조직운영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도 했다.

 다른 기업과 비슷한 조직 확대 과정을 겪어 온 두 기업, 금성과 백양은 어떻게 성공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금성사는 80년대 말부터 비대해진 몸집 때문에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경영층은 경영진단을 통해 이때부터“자율경영이 정착되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90년부터 럭키금성그룹은 업종이 비슷한 계열사들을 사업문화단위(CU)로 묶었다. 이에 따라 금성사는 금성소프트웨어 금성알프스전자 금성부품과 함께 가전정보사업문화단 위에 속하게 되었다. 연구진은‘승자??를 많이 만들어 내는 활동단위로 구성된 이와 같은 자율경영체제가 한국인의 정서적 원형에도 잘 맞는 조직구조임을 밝히고 있다.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후손은 아직 경영수업중인 시기에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고 있는 백양도 비슷한 입장이다. 백양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각 사업부 별로 독립채산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서태원 사장은“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경영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오직 한 길로, 그러나 남과 다르게 앞에서 언급한 한국타이어나 백양과 같은 회사와 삼양사처럼 오랫동안 한 우물만 파온 기업은 최근의 불황에 더욱 돋보였다. 여유만 있으면 다른 분야로 다각화하는 것이 좋은 전략으로 여겨지던 시절 이 기업들은 결코 성공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 업종에 종사하면서 이 기업들은 무능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기업규모로 재계 1위를 다투던 삼양사는 90년에 20위권을 간신히 턱걸이했다. 한국타이어와 백양도 비관련 산업으로 업종을 다각화한 같은 업종의 경쟁 기업들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삼양사는 내실 있는 경영으로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한국타이어와 백양은 세계적인 타이어업체, 내의회사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자기의 본업에서 세계 1위가 되거나 상위권에 진입하려는 장기적인 목표를 거의 이루었다.

 한 분야에 몰두하되 남과 다른 경영전략을 채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고의 입시 전문학원으로 꼽히는 종로학원은 차별화 전략에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종로학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수생들만 갈 수 있는 학원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시험을 치러 수강생을 뽑은 덕택에‘종로대학??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 학원의 창업자인 정경진 원장은??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이 남녀 모두에게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문화ㆍ차별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핵심능력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에서 1등이 될 수 없다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것이다. 핵심부품이나 기술에 전력투구하는 전략을 펴온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신도리코 등은 각 분야에서 정상의 기업이 되었다. 신도리코의 우석형 사장은“어떤 일이 있어도 핵심부품이나 기술을 외부에 의존해선 안된다. 핵심적인 능력 없이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자에 얹혀사는 꼴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 핵심부품을 다 수입 해다가 조립공장 노릇만 하면 서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떠드는 업체들은 성공 기업이 되기 어렵다.

 고객을 찾아 나서다 식당 분야에서 성공 기업으로 선정된 한우리(서울 강남구 논현동)를 찾으면 천부적인 상인으로 통하는 중국인에게 중국 북경에서 한식을 파는 이 회사의 철저한 상인정신과 만날 수 있다. 우선 이곳을 찾는 손님은 현관문을 손수 열 필요가 없다. 식당 내에서는 번거롭게 동전을 준비할 필요 없이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에는 얼음을 준비해 두고 언제라도 시원한 물로 세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제조기업과 서비스업체는 소비자의 욕구가 어떤 것인가를 파악하느라 열을 올린다. 밀어내기 식 생산과 판매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예를 들어 신라호텔의 김정상 사장은“불평하는 고객을 최고의 고객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불평이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손님은 결코 같은 호텔에 다시 들르지 않지만 불평하는 손님은 그것을 바로잡기만 하면 반드시 다시 찾기 때문??이다. 현재 6백50개의 객실을 갖춘 신라호텔은 그 규모로는 서비스가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 아래 객실을 5백실 수준으로 줄이고 있다.

 관치금융 탓에 은행이 오랫동안 앉아서 하는 장사에만 길들여져 있던 80년대 초반 신한은행은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서비스업체가 서비스해줄 고객을 찾아 직접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동전과 소액권을 들고 나가 바꿔주는 서비스는 지금 많은 은행의 영업기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 은행은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골프장의 전동카트까지 동원했다. 신한은행 라응찬 행장은 이에 대해“후발 은행으로서 불리함을 극복하는 길은 한 발 앞선 서비스밖에 없다는 판단이 적중했다??고 말한다.

 91년 기준으로 신한은행의 직원 1인당 예금 유치액은 13억원으로 시중은행 평균보다 약 40%가 많고, 1인당 이익은 시중은행 평균치의 2.5배에 달한다. 유럽의 금융전문잡지인《유러머니》는 90년과 91년 신한은행을 각각 세계 우량 은행 랭킹 24위와 26위라고 발표했다.

 스스로 큰 기업의 예는 많지 않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우량 기업이란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87년 이후 급격하게 변하는 경영환경에 남보다 잘 적응한 기업들은 꽤 있다. 한국에서도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성공 기업들이 이제 막 생겨나고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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