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놂이 하나 된 전래놀이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전적 계승노력 활발 …고스톱 등‘앉은뱅이 놀이문화??극복해야 오랜만에 늦잠을 실컷 즐기고 눈을 뜬 가장은 신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를 뒤적인다. 어제는 밤늦도록 고스톱을 치느라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아직도 다리가 쑤시고 팔도 저리다. 마루에서는 아이들이 만화영화 비디오를 틀어놓고 코를 박고 있다. 만화영화가 끝나면 아이들은 두둑한 세뱃돈 주머니를 차고 오락실로 달려갈 것이다.

 놀이전문가들은 쉬는 날이면 언제나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이 같은 생활이‘놀이문화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으로??잘 논다??는 말은 큰 찬사??힘겨운 노동을 다양한 놀이로써 견뎌오던 우리 풍속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투호 고누 자치기 실뜨기 같은 전래놀이의 이름조차 낯선 것이 돼버렸다. 설날 놀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윷놀이도 모든 지역, 모든 세대를 석권한 고스톱에 밀려나고 있다. 서울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며 조사대상의 90%가 고스톱을 할 줄 알고, 56%는 가장 좋아하는 내기놀이라고 대답했다. 또 서울 가정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30분, 주말에는 7시간50분이나 된다는 조사도 있다.

 고유한 전래놀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전통문화가 단절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옛 문헌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보다‘놀기??를 좋아하던 우리 민족성이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놀이 방법을 수집하고 연구ㆍ보급하는 모임인 놀이연구회??놂??의 이상호씨는??우리 전래놀이는 생산이나 노동과 밀접하게 결부된 것이지 놀이가 생활과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전통적으로??잘 논다??라는 말은 큰 찬사였다??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호이징거는 인간을‘유희하는 인간??으로 규정했다. 놀이가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중요한 영역으로 새롭게 인식된 것이다. 인간생활에서??놂??은??삶??의 또 다른 표현이다. 놀이의 본질은 인간관계이며 대화와 손짓 발짓을 통한 정서적 교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래놀이는 놀이가 가져야 할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 놀이연구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의미 있는 규칙과 방법이 있고 재미도 있으며 아울러 교훈적인 내용과 운동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래놀이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꾸준히 전승되어 내려온 것도 이처럼 완벽성에서 비롯된 생명력 때문이다. 따라서 전래놀이의 범주에 드는 것은 수천 가지이고, 이중 놀이방법이 전해내려 오는 것도 1천여개에 이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래놀이에는 민중의 오랜 체험에 바탕한 슬기가 담겨 있다. 소박한 어린이의 놀이에서도 몸과 마음을 닦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청소년이나 부녀자의 기개를 돋우는 씩씩한 놀이도 많다. 지금도 어린이들이 많이 즐기는 제기차기는 추운 겨울에 주로 하던 놀이였다. 하체 단련의 효과가 컸던 이 놀이는 지금도 전통 무예에서 소중한 몸짓으로 원용되고 있다. 바닥에 여러 가지 금을 긋고 말을 놓아 서로 잡아먹거나 가로막는 놀이인 고누는 논두렁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마당 한구석이나 진중에서 힘겨운 허리를 펴고 무시로 하던 놀이였다. 땅재먹기 혹은 땅따먹기는 돌을 튕겨서‘자기 땅??을 넓히는 놀이로, 흙 속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민중의 삶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놀이는 더 넓은 삶의 터전을 적극적으로 얻어내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전래놀이 중에서 매우 전투적이고 남성적인 놀이인 패싸움 혹은 석전의 기원은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서에는 한겨울에 왕이 신하를 이끌고 강물 속에 직접 들어가 돌싸움을 지휘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때 단오날의 돌싸움을 나라에서 금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양한 놀이로‘규격화된 행복??탈피를 《한국의 민속놀이》를 쓴 민속연구가 심우성씨에 따르면 수십년전 평양 대동강변에서 실제로 돌싸움을 했던 이들은??싸움을 하다 머리에 상처라도 입으면 이를 무슨 훈장처럼 여겼으며, 아들이 싸움에 져서 집으로 도망 오면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꾸짖으며 되돌아가 끝까지 싸우도록 했다. 수천수만의 돌이 날아가는 소리와 싸움꾼의 아우성소리가 한데 얼려 일대 장관을 이루었으며 싸움의 격렬함은 실제 전쟁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우리 전래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하위형태가 많다는 점이다. 즉 한 종류의 놀이에 대해 다양한 변종형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문화수준이 높은 민족의 놀이 형태이다. 이는 놀이에 반영된 우리 민족의 지혜와 창의력을 보여준다.

 이상호씨는 이 같이 호방하면서도 다양한 고유의 놀이 문화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꼽는다. 첫째, 놀 공간이 없다. 대도시에서 흙바닥이 사라진 지는 오래이며, 일부러 놀 공간을 찾아야 할 만큼 문화생활을 할 공간 자체가 점차 작아진다. 둘째,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놀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놀이는 당연히 일상을 떠나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며, 바캉스처럼 몰려 놀아야만 잘 논 것처럼 여긴다. 셋째, 상업주의가 놀이문화의 왜곡을 부채질한다. 프로스포츠나 텔레비전 때문에 놀이를 즐기던 사람이 놀이의 방관자나 객체가 되어버린다. 크게 느는 위락 시설에서 보듯 소비지향적인 놀이가 퍼지는 것도 상업주의의 폐해이다.

 전래놀이는 민속놀이나 전통놀이의 개념보다는 범위가 넓은 말이다. 민속놀이로 놀이 범주를 제한하면 미군정시대 이후 등장한 깡통차기 놀이나 쥐불놀이 같은 것은 제외되고 만다. 다양한 형태의 놀이를 즐기고 연구하며 사회에 보급하는 단체인 놀이사랑문화가족의 이종명씨는 “지금 전해 내려오는 전래놀이 가운데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고안된 놀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 고대 문명권에서 비롯되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 비슷한 놀이 형태가 존재한다. 전래놀이가 우수한 것은 우리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보편성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놀이체계가 우수할수록 시공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노인학교에 전래놀이 강습을 가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뒤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전래놀이를 현대화하고 외래놀이 중에 훌륭한 것을 적극 들여와서 왜곡 된 놀이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에게 다양한 놀이를 제공함으로써??규격화된 행복??의 틀을 벗어나도록 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놀이연구회 놂의 이상호씨는“놀이는 그 사회의 문화 전체를 반영한다. 어린이의 전자오락, 어른의 노래방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놀이문화는 현대가 개인주의와 상업주의의 전성기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변화된 사회문화 속에서 전래놀이의 정신을 계승한 새로운 놀이를 꾸준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정기적으로 전국을 돌며 어린이들이 흙마당에서 노는 놀이 하나하나를 수집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놀 시간과 공간을 모두 빼앗긴 채 기형적인 시간 때우기로 변질된 현재의 놀이는 놀이를 통해 삶의 공동체로서 동일한 정서를 나누던 전래놀이와 비교되는 것이다. 이 같은‘앉은뱅이 놀이문화??를 극복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을 열린 마당으로 끌어내는 것은 우리 놀이의 과제이고 바로 놀이전문가나 관련학자의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무형의 자신인 전래놀이를 지키고 전승하려는 정책적 관심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