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선거, 너무 믿지 마세요”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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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위마저 눈요깃거리 만들어…토론 방식 등 문제점 고치면 앞날 밝아

 그날, 50년 만에 정권이 바뀌던 12월19일 아침 8시, 수백 대의 카메라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일산 자택 현관을 집중하고 있었다. 당선이 확정된 이후 처음으로 새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과 세계를 향해 인사를 하기 위해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런데 바로 그 문 앞에 개그맨 이경규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막 문을 나서는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당선자는 웃으면서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이경규씨가 새 대통령 당선자를 인터뷰한 최초의 ‘언론’이었다. 전국에 생중게된 이 짧은 장면은 텔레비전 선거(텔레크라시)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15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정치·경제·사회·외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텔레비전 선거 원녀이라는 의미도 적지 않다. 텔레비전과 선거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텔레비전 선거라는, 이제는 낯이 익은 이 용어에는 서로 다른 두 주어가 잠복해 있다. 그런데 선거가 주어일 때와 텔레비전이 주어일 때 그 의미는 큰 차이나 난다. 선거가 주어일 때 텔레비전은 수단으로 물러서지만, 텔레비전이 주어일 때 문제는 달라진다. 이번 선거는 텔레비전이 ‘주인’이 된 선거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텔레비전 선거, 텔레비전 정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방송 출연이 후보 일정 좌지우지
 토론 횟수나 토론 방식, 토론 내용에서 제기된 몇 가지 문제점을 개선한다면 텔레비전 정치의 앞날이 밝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그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다. 텔레비전 정치 시대의 미래를 염려하는 진영이 맨 처음 문제 삼는 것은, 텔레비전이라는 메커니즘을 너무 안이하게 본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기간에 후보자들은 ‘텔레비전을 잡지 못하면 선거에서 진다’는 강박중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에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단순 논리가 깔려 있다.

 합동 토론회를 마치고 세 후보가 밝힌 소감에서도 텔레비전을 대하는 정치인들의 속내가 그대로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번 텔레비전 선거가 만족스럽다고 말했고, 저마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보았다고 장담했다.

 새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던 날 새벽, 새정치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모든 일정에서 방송사관련 일정을 최우선했다”라며, 텔레비전이 승리의 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나 연설회뿐이 아니었다. 후보들은 30회까지 허용된 방송 광고를 적극 활용했다.

 텔레비전 선거는 후보자들을 ‘연기자’로 유권자들을 안방의 시청자로, 텔레비전 토론을 드라마로, 개표 방송을 스포츠중계 방송(주유소 게기처럼 움직이면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던 ‘프리즘 젬’·아래 상자 기사 참조)처럼 뒤바꾸어 놓았다.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에서 텔레비전은 하나의 수동적인 사물로 보였다. 그리고 텔레비전 메커니즘은 매우 개관적인 룰에 의해 작동하는 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텔레비전 정치 시대를 염려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는 강한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치권, TV 정치 시대 적응 못해
 방송위원회 홍석경 선임연구원(언론학 박사)은 계간 <문학과 사회>(97년 가을호)에서, 정치는 텔레비전을 도구로 보지 말라고 지적한 바 있다(<시사저널> 제 412·413호).

 홍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열려있는 매체처럼 보이지만 발언할 수 있는 것과 발언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가 엄격한 닫힌 매체이며, 텔레비전은 ‘말하는 사람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홍연구원은 텔레비전을 단순한 도구로 인식하는 한 ‘또 다른 독재의 매커니즘’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고 충고했다.

 서규환 교수(인하대·정치외교학)의 관찰에 의하면, 텔레비전은 현대성을 강화하는 차가운 매체이다. 서교수는 게간 <황해문화>(97 겨울호)에서, 문화는 긴 질문이며 기억의 파수꾼이지만, 만사에 신속한 답을 제공하는 미디어는 망각 체계일뿐이라는 작가 말란 쿤데라의 글을 인용하면서, 텔레비전이 가지고 잇는 ‘차가운 이성’을 경고했다. 텔레비전을 통한 시각(눈)의 완성이 곧 현대성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파악한 서교수는, 텔레지번이 전달할 수 없는 다른 감각들을 주목하고 그것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텔레비전이 강화하고 잇는 시각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은 ‘텔레비전 밖에서 깊고 길게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바른 얼론을 위한 시민연합’ 정탁영 사무총장 (언론학 박사)은,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무차별적인 해체에 주목하고 있다. 텔레비전 선거(정치)가 국가와 사회에 필수인 권위까지 희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에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실종되었다면, 이번 텔레비전 선거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바람직한 이미지가 실종하고 말았다. 이번 텔레비전 선거는 천박성이 강했다”라고 말했다.

 비관론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 선거보도의 기호학>(커뮤니케이션스 북스)을 펴낸 백선기 교수 (성균관대·언론학)는 텔레비전 정치 시대가 이미지의 시대로만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백교수는 “텔레비전이 막강해진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역량이 막강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텔레비전 정치 시대와 ‘시차’가 있는 정치권 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벌써 텔레비전 정치 시대에 적응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아직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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