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선거의 꽃’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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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방송, 경마식 보도 · 과투자로 ‘실패’

 이번 개표 방송에서 화제가 된 ‘프리즘 젬(prism gem)' 시스템이 챠르륵챠르륵 가파르게 숫자를 넘기는 모양새를 바라보며 파친코 게기판을 떠올랐다는 사람이 많다. 미디어 선거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올해, 무려 17시간 남짓 생방송으로 진행된 개표 방송은 한 방송사 선전 문구대로 ’미디어 선거의 꽃‘이자,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가장 압축된 형태로 보여준 완결편이었다.

 우선 경마식 보도의 문제이다. 올 한해 선거 보도의 가장 큰 문제가 ‘누가 이겼나’ 식의 경마 보도였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경마와 파친코는 얼마나 어울리는 조합인가. 1,2위 후보의 득표율을 숨가쁘게 토해내던 3대 방송사의 개표 방송 화면 하단에 제3 후보는 실종되고 없었다. 제3 후보를 선택한 19.2%의 유권자는 최소한 그 공간에서만큼은 ‘알 권리’를 박탈당했던 샘이다.

 두 번째는, 여론 조사 보도의 문제였다. 투표가 완료된 직후인 오후 6시 예측 득표율을 내보낸 MBC는 다른 방송사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출구 조사 결과를 자정 넘어 발표하기로 한, 선거 당일 한국방송협회의 협의 사항을 홀로 위배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소동은 출구 조사 허용을 둘러싼 갈등에 뿌리가 닿아 있다. 현행통합 선거법은 투표 당일 출구 조사를 투표소 5백m 밖에서만 할 수 있도록 못박고 있다. 이같은 조항은 투표소를 나오는 사람을 상대로 한 실질적인 의미의 ‘출구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방송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이같은 선거법이 ‘국민의 알 권리’를 얼마나 침해하고 잇는지 여론을 모아 법을 고치든가, 아니면 법을 준수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게다가 출구 조사가 꼭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서 있는 것도 아니다. 김승수(전북대 · 신문방송학) 같은 이는, 출구 조사가 허용될 경우 온갖 조사기관·정당·언론사가 몰려 투표소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가에서는 이번 개표 방송이 비용 대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한 버라이어티 쇼’라고 흑평하기도 한다. 방송 3시는 이번 개표 방송을 위해 가상 스튜디오를 선보이는 등 신기술 개발에만 40억원 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투자비와 시청률이 꼭 비례하지는 않은 듯하다. 시청률 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서비스코리아(MSK)에 따르면, 이번 개표 방송 시청률은 KBS1 29.3%, MBC 19.6% SBS 4.4%였다.

 KBS1이 개표 방송 시청률을 높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체 평가한 ‘프리즘 젬’ 시스템은 2년 전 개발한 ‘구기술’이다. 이를 개발한 KBS 기술연구소 조문재 부장은 지난 총선 때도 선보였던 이 시스템이 새삼 눈길을 끈 것은 ‘정보’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사용한, 글자를 키웠다 줄였다 빙빙 돌리는 화려한 기능보다, 시청자들이 소박하지만 득표를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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