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총구, 지하에 널려 있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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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반입 · 제조 고성능 총기류 10만여 정 국내 유통 … 치안 당국, 속수무책

IMF 체제에 들어선 이후 갖가지 생계형 범죄가 꼬리를 이어 오면서 이제 살상용 불법 총기류마저 범죄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발생한 총기 관련사건 · 사고를 보면 한국 사회가 바야흐로 총기 범죄 전성시대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게 한다. 해마다 20~30건씩 발생하던 총기관련 사건이 올해 들어 3개월 동안 벌써 10여 건이나 일어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총기 범죄 유형도 과거에는 주로 강력 범죄나 원한 관계 살인이었던 것이 생계형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IMF 이후 호신용 수요도 급증
대표적 사례는, 지난 3월 19일 실직자 강 아무개 씨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권총을 들고 서울 청담동 서울은행 학동지점에 침입해 현금 7백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나다 이를 목격한 시민 서정화씨와 격투 끝에 붙잡힌 일이다. 지난 1월 26일에는 부산시 금정구 서동에서 살기 싫다며 공기총으로 실탄 7발을 쏘면서 자살 소동을 벌이던 안 아무개 씨가 경찰과 대치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2월 22일에는 서울 구로동에서 실직자 박 아무개 씨가 군부대에서 훔친 M16 소총을 들고 동네의 한 사무실에 침입해 현금 2백33만원을 털고 달아나다 체포되었다.

이처럼 총기 범죄가 늘어나자 치안 불안 심리에 빠진 시민들 가운데 총기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어떤 사태가 이어날지 모르니 스스로를 방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부 부유층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 천호동에 개업 중인 총포업자 박 아무개 씨는 “올해 들어 세상이 각박해지니까 만일에 대비해야겠다며 총기 구입을 문의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불법 총기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한 정에 천만원 이상 가는 고가 외제 22구경 소총을 구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하는 경우까지 있다”라고 말한다. 남대문에서 ㄹ총포사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도 “예년 같으면 수렵 기간이 끝나는 봄철은 장사가 잘 안되는 때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는 총을 구하러 오는 사람의 발길이 꾸준하고, 방어용 가스총을 살 수 있느냐는 전화 문의도 많다”라고 말한다. 늘어나는 총기 범죄와 방어용 총기 소지 심리가 맞물리는 악순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고성능 불법 총기 10만여 정이 전국 구석구석에서 암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총기류는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현재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분위기는 불법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이 이를 사용할 가능성을 점점 높여 가고 있다. 자살과 생계형 강 · 절도가 잇따르는 등 흉흉해 가는 IMF 세태에서 범죄심리학자들은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보다 아무 흔적 없이 방아쇠 하나로 해결하려는 심리가 총기 범죄 급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치안 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손을 쓰지 않고 있다.

당국의 단속과 통제에서 벗어나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는 고성능 불법 총기류는 크게 소총과 권총으로 나뉜다. 약 10만 정으로 추산되는 이들 총기류 가운데 밀반입된 미제 원체스터 · 모스보그 · 레밍턴 소총, 벨기에와 중국제 브로닝 소총, 독일제 라이플 소총 등 외제 총이 2만여 정을 차지한다. 여기에 국내에서 밀 제조 된 고성능 소총 3만여 정, 그리고 경찰서 등록을 거쳐 합법적으로 소지가 허가된 공기총을 고성능으로 불법 개조한 소총이 5만여 정이다.

등록된 공기총 소지자 45만여 명 중 5만명 가량이 총을 불법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 시 · 구 별로 1백50정 안팎, 군 단위에는 평균 20여 정씩 고성능 불법 총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3년여 동안 안기부 국제범죄정보센터가 테러 방지 차원에서 구내 불법 총기류 실태를 정밀 내사해 집계한 수치이다. 이에 대해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 조사를 시작할 때는 총기 관리가 엄격한 민간 사회에 고성능 인명 살상용 총기가 얼마나 있으랴 싶었는데, 막상 조사해 보니 너무나 많아, 지금까지 국가가 이런 실상을 방치해 온 사실에 놀랐다”라고 말한다.

공기총보다 10배가량 ‘투투총’이 주종
현재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총기류는 이른바 ‘투투총’이라 불리는 소총이다. 투투란 말은 사용하는 총탄의 직경이 0.22인치라는 데서 나왔다. 외국에서 밀수된 소총과 국산 공기총을 불법 개조한 소총이 투투총 범주에 든다.

투투총의 문제점은 먼 거리에서도 인명 살상이 가능한 고성능 화약탄을 사용하는 총기라는 점이다. 소리가 작으면서도 화력이 일반 공기총이나 엽총보다 10배 이상 강력해 범죄 및 테러용으로 자주 쓰이는 총이다. 유효 사거리 400m인 이 총은 200m 거리에 있는 멧돼지를 1발에 즉사시킬 수 있는데, 실제로 미국 로버트 케네디 암살과 레이건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에도 사용되었다. 특히 국내에 나도는 미제 윈체스터 16연발 소총은 탄창에 실탄 16발을 장전해 연속 사격이 가능하다.

이 같은 고성능 투투총이 국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수요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투투총의 주요 수요층은 밀렵꾼과 범죄 조직 소속원들이다. 특히 밀렵꾼 중에는 전과자가 많은데, 이들은 사냥을 하고자 해도 경찰로부터 총기 소지 허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연중 소지할 수 있는 불법 투투총을 찾기 마련이다.

문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이런 투투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현실에 있다. 순수 외국산 투투총은 주로 미군부대를 통하거나 밀수에 의해 유통된다. 일부 주한미군(속)은 공항 세관에서 검색을 면제한다는 점을 악용해 불법 총기류를 들여오고 있다. 동두천 · 평택 · 군산 · 용산 등지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속)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국인에게 고성능 투투총을 대량 밀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냥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 그 베일의 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5일 서울지검과 안기부 공조 수사팀이 주한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마린사 22구경 16여발 소총을 소지한 조 아무개 씨와 미제 레밍턴 22구경 5연발 탄창식 소총을 구입해 소지한 박 아무개 씨를 검거한 바 있다.

투투총의 성능이 전국의 밀렵꾼에게 알려지면서 아예 전문 밀수 조직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외국에서 총기를 구입한 후 항공기 · 선박의 화물이나 이삿짐에 은닉해 한번에 수십 정씩 밀반입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남대문시장에서 총포상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는 “고성능 외제 투투총은 보통 5백만 원에서 많게는 1천5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 밀매업자들이 들여와 일부 영세한 총포상을 통해 판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밀수 과정에서 단속을 피해 기상천외한 수법을 동원한다고 한다. 수입 원목에 구멍을 뚫어 10~15정씩 비닐로 싸서 숨기거나, 총기를 분해한 뒤 기계류 부품과 섞어 들여옴으로써 감쪽같이 감시의 눈을 속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들여온 외제 총기류는 공급책을 통해 밀매 조직에 넘어간다. 외제 투투총 밀매 조직은 천국 천여 개 총포상 중 일부 업소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판매망을 구축한다. 이들의 거래는 마약 거래처럼 철저히 점 조직으로 되어 있으며, 서로 신분과 연락처를 노출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주로 차량끼리 고속도로 갓길이나 공터에서 현금과 총을 맞바꾸는데, 나중에 총기 구입자가 경찰에 적발되더라도 밀매 사실을 입 밖에 내면 소음 총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도 뒤따른다. 그 많은 총기 소지자가 검거되었어도 출처까지 드러난 경우가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현재 비밀리에 유통되는 투투총이 모두 외제인 것은 아니다. 국내 구식 공기총을 개조하거나 밀제조한 투투총이 오히려 더 많다. 이들 개조 또는 밀 제조 총기류도 외제 총과 같은 실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살상력은 비슷하다.

국내 총기 밀제조 기술 세계 수준
현재 국내 총기류 밀제조 기술은 세계적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철사 · 쇠파이프 · 드릴 · 쇠톱만 있으면 고성능 총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강에 열처리가 필요한 총열 제작은 전문 기계제작 공장에 의뢰하는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과 청계천 · 구로동 등에 산재한일부 공작소들이 총기 밀 제조에 가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 문래동 ㄱ정밀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백만 원만 준다면 총기 제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개 정밀선반가공 작업을 해야 하는 총열이나 공이만 만들어 달라고 하므로 외부에 드러날 염려도 없다”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아P 집에다 선반과 밀링머신을 갖추고 22구경 소총을 대량 생산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지난해 11월 25일 서울지검 강력부(불법총기 단속반장 신은철 검사)에 적발된 강희광씨(41 · 청주)는 이런 방식으로 총신과 개머리판을 분리할 수 있고 조준경까지 달린 고성능 소총을 대량 제작해 판매해 오다 덜미를 잡혔다. 또 비슷한 시기ㅔ 강원도 속초에서는 자기 집에서 드릴과 쇠톱으로 구식 공기총을 개조해 22구경 권총과 소총을 만들어 팔아 온 주민 2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총기 밀수와 밀제조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수십만 발로 추정되는 고성능 실탄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실탄은 사용이 금지된 고성능 화약탕인데, 대부분 밀수된 것이거나 국내 사격업체가 합법적으로 수입한 뒤 불법 유출한 것들이다. 현재 시중에 나도는 실탄 수십만 발은 탄환 뒷면에 각각 알파벳 E자 F자 REM 자가 새겨진 것들이 주종이고, 일부는 △표가 새겨진 것도 있다. E자는 영국 커넥스사 제품인데 성능이 뛰어나 사격선수용 실탄으로 유일하게 합법 수입되는 제품이다. 이 실탄은 사격 계에서 불법으로 시중에 흘러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총포상은 “사격 선수와 코치들이 실탄을 빼내 개당 5백 원씩 밀매업자에게 판다. 밀매업자는 다시 실수요자에게 개당 천 원씩에 파는데, 요즘은 사격연맹이 단속하기 시작해 값이 2천원으로 뛰었다”라고 말한다.

F와 REM이 새겨진 실탄은 국내에 합법적인 수입처가 전무하므로 밀수 외에는 달리 출처를 설명할 길이 없다. 국내 밀매업자들은 미국에서 개당 30원꼴로 살 수 있는 이 실탄을 대량 밀수해 1천5백 원씩에 판다고 한다. 또 △표시가 된 실탄은 방산업체인 풍산금속이 제작해 경찰 전용으로 공급하는 실탄이다. 이 역시 시중에 널리 나돌고 있는데, 일부 경찰이 유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들어서는 이중 폭발을 일으키는 고성능 실탄도 널리 유통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실탄을 투투총에 장착해 발사하면 목표물에서 화약이 다시 폭발하면서 납 재질의 탄피가 수류탄처럼 파열되는 고성능 탄환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지검 강력부가 밀수업자 노광용씨를 검거하면서 이 실탄의 유통 경로 일부가 밝혀졌다. 노씨는 94년부터 필리핀에서 이중 폭발 실탄 1천8백 발을 구입해 버너 · 코펠 등에 넣어 들여온 후 국내 총포상과 낚시점 업주 등을 상대로 공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불법 고성능 총기류의 유통망과 암시장이 널리 퍼져 있지만 아직까지 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를 단속해야 할 일부 경찰마저 총기 밀거래를 ‘부업’으로 삼거나 회수한 불법 총기를 제대로 폐기하지 않아 다시 민간에 유통되도록 방조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적발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허술한 총기 관리 체제에서 IMF 시대를 맞아 총기 범죄가 꼬리를 잇고 있다. 해마다 2월이면 불법무기류 자진신고기간을 정해 신고를 받아오던 경찰이 어쩐 일인지 치안 불안이 고조되는 올해는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결국 국민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불법 고성능 총기류 10만 정을 이웃에 두고 날로 세태가 각박해지는 시대를 헤쳐 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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