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우파 설치면 한 · 일 관계 망가진다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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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협정 파기 주도 등 번번이 ‘암초’ 노릇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는 73년 8월 8일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씨와 김대중 씨의 대담 기사를 게재한 9월호를 발매했다. 공교롭게 이 잡지가 서점에 깔리고 난 몇 시간 뒤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 민주화의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대담 기사에서 김대중 씨는 일본인의 한국관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정당 별로 도식화해서 말한다면, 자민당 정권의 주류적인 사람들과 재계 사람들은 안정 제일, 무엇보다도 이웃 나라는 안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모든 대한(對韓) 정책의 대의명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른바 자민당 내의 양식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세 번째는 사회당 등 야당 세력의 생각이 있습니다.’

“한국 버르장머리 고치자”
‘자민당의 주류적인 삶들’이란 박정희 정권과 한 · 일 유착 문제를 일으킨 보수 우파를 가리킨다. 그들은 전두환 정권 때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고, 노태우 정권 때는 혐한 감정을 부추긴 장본인들이다. 또 김영삼 정권 때는 역사 왜곡 발언을 주도했으며,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는 한 · 일 어업협정을 일방으로 파기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다. 당시 김대중 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자민당 내 양식파’란 베트남 · 북한 · 쿠바 · 중국과 물꼬를 터 보수 정당인 자민당의 폭을 넓힌 사람들이다. ‘야당 세력’은 당시 제1 야당 사회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 일본 정계의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일본 보수 우파는 한때 자민당과 신진당으로 두 쪽이 났고, 좌파 세려의 주축이었던 옛 사회당은 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적대 세력이던 자민당과 손잡고 연립 정권에 참여함으로써 점차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치를 움직이는 주체 세력이 자민당 보수 우파라는 점에서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다. 지난 1얼 초 일본이 한 · 일 어업협정을 일방 파기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 국회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한 자민당과 그 주도적 세력인 보수 우파들이 벌인 한국에 대한 세력 과시나 다름없다. 어업협정 파기를 주도한 자민당 수산부 회의에는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한국에 대해 좋은 일도 많이 했다”는 망언을 해 총무청 장관에서 해임된 에토 다카미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오부치 게이조 외무장관이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자민당 수산부 회의 간부들을 설득했으나, 그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라고 한 발언을 들먹거리면서 “이번 기회(한국의 IMF 사태)에 거꾸로 한국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한다”라며 오부치장관의 설득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당 보수 우파는 최근에도 자민당 내에 교과서문제소위원회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은 작년 봄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종군위안부 대목이 수록된 데 불만을 품고 이 부분을 삭제하자는 운동을 집요하게 벌여 오다, ‘일본 전도의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을 결성하고 자민당 집행부에 끊임없이 삭제 압력을 가했다.

교과서문제소위원회 설치는 집권당 차원에서 종군위안부 대목 삭제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보수 우파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정식으로 설치될 문제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초래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되어 위원회 설치 문제는 일단 물 건너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95년 봄 NHK와 가진 인터뷰를 묶은 <나의 자서전>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역사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하는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내 경험으로는 일본인은 반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기 윟ㄴ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과거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인이 역사의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학자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과거에 일본이 행했던 사실이 어떤 것이었는냐를 공동 연구할 필요가 절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는 한 서로가 상대를 꾸짖는다든지, 항의를 하더라도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민당 우파 내에서 자학적인 역사관을 시정하고 종군위안부 대목을 삭제하자는 등의 ‘일본식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요즈음 김영삼 정권 때 제기된 한 · 일 역사 공동 연구가 앞으로 제대로 진척될 리는 만무하다.

김영삼 정권도 출범 당시 ‘경제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한다’는 획기적인 대일 정책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일본 정치가들의 망ㅇㄴ으로 앞서의 ‘버르장머리’ 발언이 튀어나와 한 · 일 관계는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후퇴했다.

보수 우파, 일앙 방한 극력 저지
그렇게 상황이 전개된 데에는 물론 김영삼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산케이 신문>은 ‘김영삼 대통령은 한마디로 일본을 전혀 모르는 지일파 대통령이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 청와대 관저에서 매일밤 NHK 위성 방송을 시청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비서관들에게 여러 가지를 지시하는 바람에 비서관들은 일본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위성 방송을 항상 켜놓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김윤환 한 · 일 의원 연맹 회장과 가은 일본통들에게 한 · 일 관계에 대해 자문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언급하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와 가진 런던 정상회담, 오부치 외무장관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가진 방한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한 · 일 관계를 일왕이 방한할 수 있는 분위기로 끌어 올리겠다”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주간지 <주간 신조>는 최근호(4월 9일자)에서 ‘서두르지 말라, 천황 폐하의 방한’이라는 특집 기사를 싣고 ‘양국 간에는 종군위안부 · 독도 영유권 등 난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서둘러 폐하가 방한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일왕의 방한 문제는 84년 9월 한국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해 당시의 히로히토 왕을 초청한 이래의 현안이다. 그 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도 현재의 아키히토 왕을 공식 초청했다. 아키히토 왕이 왕세자이던 86년에는 그의 공식 방한이 추진되기도 했다. 당시 나카소네 내각의 외무성이 적극 나서 고령인 히로히토 왕의 대리로서 왕세자 방한을 추진했으나, 미치코 왕세자빈의 병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러나 궁내청과 자민당 우파가 방한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방한을 적극 저지한 것이 진짜 이유이다. 또 92년에는 아키히토 왕이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방문하는 안이 검토되었으나 똑같은 이유로 방한이 무산되고, 그 해 10월 아키히토 왕의 중국 방문만 실현되었다.

<주간 신조>에 등장하는 일본의 보수 우파 지식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 · 일간에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논리를 펴며 일왕 방한 문제에 쐐기를 박고 있다. 그들은 또 한국 언론이 덴노(天皇)를 왕(王)으로 표기한다는 것을 트집 잡으며, “한국이 일본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한 덴노가 방한할 환경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거는 일본 측의 기대는 매우 크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잘 아는 지도자이자 현실주의 정치가이므로 정치 · 경제 ·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 과거 정권처럼 일본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경제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했던 문민정권도 자민당 보수 우파의 잇단 망언으로 새로운 대일 관계를 정립하는데 실패했다. 김대중 정권도 자민당 정권의 주류격인 사람들, 즉 보수 우파로부터 똑같은 반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일본을 잘 안다고 섣불리 나서면 안 된다. 일본의 자민당 보수 우파와 양심파, 야당 세력을 고루 아우를 수 있는 합리적이 대일 정책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그래서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인맥 외교에 치중했던 과거 정권이 심각한 한 · 일 유착 문제를 일으켰고, 시류에 따라 변했던 문민정권의 대일 외교도 결국 실종하고 말았다는 교훈을 현 정권이 잘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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