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과 부국의 경제통합 실험
  • 시카고·조광동 통신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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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자유무역협정 놓고 미국· 멕시코 실익 챙기기 동상이몽


클린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이 서서히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장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미국인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상되나, 그 중요성에 비해 대부분의 미국인은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 NBC와 〈월 스트리트 저널〉의 최근 공동 여론조사에서 40%가 넘는 미국인이 이 협정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없다고 답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멕시코의 살리나스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협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조용히 외교 노력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반대세력들이 시민운동 형식으로 세를 규합하고 있어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여론싸움이 한차례 불붙을 듯하다. 부시 전 대통령이 협정안에 서명하긴 했지만 의회인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반대세력인 시민연합은 노동조합이 주축을 이루고 여기에 소비자·농민·환경보호·종교 단체들이 가세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도 선두에 나서고 있는데 다른 데서는 좀처럼 연대하기 어려운 환경보호운동가 동물애호가 인권운동가 종교인들과 노조·소비자 단체가 이 문제에 관해서만은 공동보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인권탄압·환경문제 해결이 협상의 열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은 역시 클린턴 대통령이다. 지난 선거운동 기간에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쪽에 섰던 그는 대통령 취임 전인 1월 중순 미국을 방문한 살리나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환경과 노동문제를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특히 인권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멕시코는 파격적으로 경제개방을 한 것에 비해 정치분야에서의 개혁이 미온적이고 아직도 고문과 정치박해가 만연하고 있다고 비판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협정을 지지하는 민주당의 대니얼 모이니헌 상원의원 같은 사람도 자유무역과 함께 자유정치를 허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의 공업지역인 마퀴라도라에는 미국 기업체들이 조립공장을 세우고 멕시코 노동자를 고용해 여기서 생산된 제품을 관세 없이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다. 현재2천개에 가까운 이 지역의 공장에서 50여만에 달하는 멕시코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부시 전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 협정을 속전속결 방식으로 밀고 나가다가 선거가 임박해 이 협정이 선거쟁점화되는 것을 염려해 일단 접어두었다. 이제 공은 클린턴 정부로 넘어왔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한데 묶어 자유무역블록으로 만든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유럽공동체(EC)와 아시아 경제권에 대항하는 북아메리카 경제권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세계 경제 구조에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이 틀림없다. 성공할 경우 남미까지 통합하는 새로운 블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세계 최대선진공업국과 가난한 나라가 각자의 주권과 존엄성을 지키면서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느냐하는 점도 큰 관심사이다. 결국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선진공업국과 제3세계 나라 들이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문을 열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실험장이 될 것이다.

흔히 이 협정을 유럽공동체와 비교하지만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유럽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은 경제수준에 큰 차이가 없으며,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는 포르투갈 그리스도 멕시코 국민소득의 2배가 넘는다. 이 두 나라가 유럽공동체에서 차지하는 인구비중은 6%밖에 안된다. 그러나 멕시코는 북아메리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데 비해 국민소득은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며 전체 경제력은 25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유럽공동체는 뒤진 국가들이 평균 수준을 따라올 수 있도록 수십억달러를 투입해 환경상태와 근로시설을 개선하고 있다. 멕시코가 열악한 작업환경과 공해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특히 7백50억 달러나 되는 외채를 그대로 안은 채 자유무역을 할 때 과연 남미의 용으로 비상할 수 있을까. 용이 되기는커녕 자칫 미국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염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얻는 자와 잃는 자를 동시에 만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반대입장에 선 사람들은 잃는 자이거나 잃는 자를 동정하는 사람들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크게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기업가들이 싼 임금을 찾아 공장을 미국에서 멕시코로 옮기기 때문에 실직자가 많이 생긴다는 소리이다. 둘째, 멕시코의 환경법규나 작업규정이 엄격하지 않아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시킴으로써 결국 그 피해가 인접한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다. 셋째, 미국의 이익을 위해 멕시코를 공해산업 처리장으로 만들 수 없으며 넷째, 정치탄압을 하는 멕시코 정부와 자유경제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중에 가장 큰 쟁점은 미국의 일자리를 멕시코에 빼앗긴다는 것이다. 계속 위축돼가는 미국 제조업체는 싼 임금의 활로를 찾아 너도나도 미국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미국의 제조업체 종사자가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9년 23%에서 90년에 18%로 줄어들었으며 실질소득도 10%가 감소되었다. 이같은 현상이 가까운 시일 안에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싼 임금을 찾아 한국 대만 중국 동남아를 누볐던 미국 제조업체는 이제 멕시코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 제조업체의 시간당 임금이 평균 10달러인 데 비해 캐나다는 12달러, 멕시코는 80센트~l달러이다.

반대여론 거세지만 대세는 실현 쪽

미국 기업체가 멕시코로 대거 이전할 것이라는 우려는 임금문제에만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다. 까다로운 미국의 근로법과 건강법, 환경법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의 가구제조업체가 대표적인 예이다. 캘리포니아 남쪽 지역에서는 최근까지 6만3천명의 근로자가 가구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88년 공기정화법이 제정되어 페인트에서 유출되는 하이드로 카본 가스를 방지토록 강제하자 하루 아침에 40개 업체가 문을 닫고 멕시코 마퀴라도라 지역으로 옮겨가 5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멕시코의 환경 오염이 이미 미국의 하늘과 바다를 더럽히기 시작하고 있는 마당에 자유무역이 성사될 경우 미국 기업가들이 멕시코땅과 하늘에 쏟아 부을 오염은 가공할 정도이며 그 직접적인 피해자가 미국이 되리라는 점도 쟁점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멕시코는 환경법을 강화해 미국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보수적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미국식 환경규정을 멕시코에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현실감각이 없는 이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공해문제까지 해결할 경제능력이 없다. 일자리와 공해로 인한 반대가 거세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성공시키려는 찬성쪽의 논리는 물리치기 힘든 명분과 실리를 가지고 있다. 블록화로 치닫는 지구촌 경제시대를 앞두고 미국이 계속 세계 최강의 경제국 자리를 지키려면 지금의 경쟁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미국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자면 북미자유무역협정만큼 좋은 구상이 없다는 것이 대기업측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측은 국력신장이 국민복지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작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본 것처럼 미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복지의 재분배라고 주장하며 협정을 연기하라고 요구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 혜택받는 층과 못받는 층의 간격을 더욱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론은 2대 1로 협정 체결을 반대하고 있지만 대세는 실현쪽으로 가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는 두나라 국민의 이중심리가 깔려 있다. 미국인은 심리적 부채를 갚고 싶어한다. 또 멕시코 경제가 조금 나아져 불법체류자가 감소했으면 하는 현실적 계산, 그리고 경제가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멕시코인들은 미국에 대해 불신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한나라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숫자가 59%까지 올라가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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