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언론’이 북한 도운 꼴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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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정 침투 사건/보수 논조에서 인도주의로 표변…북측에 억지 주장 빌미 제공

나포한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이 초미의 환제가 되고 있다. 문민 정부 때까지 정부는 북한 정규군(인민군)이 침투하면, 이들을 ‘공비’로 규정하고 대간첩작전인 ‘진돗개’를 발령해 이들을 추적했다. 공비 침투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남북한 합작 사업과 접촉을 일시 중단시켰다. 반면 노동당 산하 사회문화부ㆍ작전부 등 4개 부서 소속원이 침투하면, 이들을 ‘간첩’으로 부르며 필요에 따라 진돗개를 발령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번 유고급 잠수정의 영해 침범을 정전협정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대북 접촉은 계속 추진하겠다며 ‘햇볕 정책’을 외치고 있다. 이러한 햇볕 정책에 대해 적잖은 군 간부가 불만을 품고 있다. 이들은 “96년 상어급 잠수함 침투 사건 때 북한은 재발 금지를 약속하고도 이를 어겼다. 왜 우리만 참아야 하느냐”라고 항변한다.

6월27일 북한 조평통은 ‘우리 잠수정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고 있으면 남조선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구조했어야 한다. 남조선은 제때에 구조하지 않고 침투 운운하고 있으니 이는 반북모략이다’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주장은 북한 공작원3명이 한국 땅에 상륙해 공작을 수행한 사실이 잠수정 항해 일지 등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왜 우리만 참아야 하느냐’라는 보수층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북한 급변 상황에 의한 한반도 긴장 고조를 막고 통일을 위한 평화 무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햇볕 정책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북한의 군사 도발은 판문점에서 열리는 미ㆍ북한 장성급 회담 등을 통해 따지되, 대북 경협 등은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두 관점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것은 언론이었다. 사건 초기 언론은 북한의 침투행위를 비판하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다 잠수정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자 해군이 예인 작업에만 신경 쓴 나머지 제때 북한 승조원을 구조하지 않았다면서 인도주의적인 태도로 표변했다. 이러한 보도는 예인 도중 잠수정의 해치를 열였다가 폭발물이 터지거나 바닷물이 들어가면 잠수정을 잃게 된다는 것을 간과한 매우 비전문적인 의견이다.

DJ와 군에 상처 준 ‘비전문’ 기자들
이러한 보도를 한 기자들은 대개 군사분야나 남북 분야 모두에서 비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의 즉흥적인 보도태도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군 간부들과 전향적인 김대중 정부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북한 조평통은 이런 허점을 포착해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을 이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의 비전문적인 보도 태도가 북한의 책동을 자초한 것이다.

대북 햇볕론에 대한 평가는 국민 몫이다. 이미 야당은 7월21일 강릉을 비롯한 전국 다섯 군데에서 실시되는 보궐 선거 때 정부의 유화 정책을 비판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7월21일 보선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지지)를 묻는 중간 평가가 될 전망이다.

언론은 기자 개인의 느낌이 아닌 사실 보도에 주력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해설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언론의 혼란스러운 보도만 없었다면 이번 사건은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만 많은 ‘꽤 괜찮은’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해근은 상어급 잠수함에 이어 유고급 잠수정을 나포함으로써 북한 잠수함에 관련된 생생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수중폭파팀(UDT)과 해난구조대(SSU)를 비롯한 해군 부대는 실전을 방불케 한 훈련을 했다. 또 어민들에게는 첨단 장비로도 탐지하기 힘든 적 잠수함 발견 신고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군사 문제와 별개로 남북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천명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과시할 수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부채질하는’ 일거삼득의 효과가 언론의 혼란스런 보도 때문에 일부 퇴색한 것이 이번 사건이었다.
李政勳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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