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경제’ 축배 든 프랑스
  • 파리.김제완(자유 기고가) ()
  • 승인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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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급증. 자본유입. 내수 확대로 불황 탈출...유연한 정부 정책도 한몫

 캥거루 족 출현과 대가족 제도 부활. 프랑스가 영기불황을 오래 겪으면서 지난몇 년 사이에 생겨난 현상이다. 프랑스에서는 수년 전부터 20세가 되도록 집을 떠나지 않고 부모에 의존하며 사는 캥거루 족이 생겨 사회적 관심이 된 바 있다. 지난해부터는 여러 가족이 결합해 대가족을 이루며 사는 새로운 현상가지 나타나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이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 프랑스 국민들의 생활방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국민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프랑스의 경기 불황이 이제 끝을 보이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프랑스 언론에 보도된 국립경제통계연구소(INSEE)의 각종 경제 지표들은 90년대의 길고 고통스러웠던 불황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 지표들에 따르면, 프랑스 경제에는 이제 파란불이 켜졌다.

  국립경제통계연구소가 지난 7월 초에 발표한 올해 예상 성장률은 3.26%로 서방 선진 7개국(G7)중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놓은 수치이다. 97년에는 그 전해보다 0.7%포인트 오른 2.3%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럽 국가가 3%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97년에만 일자리가 18만개 새로 만들어졌으면 98년에는 이보다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임시직을 중심으로 39만개나 고용을 창출한 덕분에 한 해 동안 1% 포인트 감소해 11.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미 경기호황. 아시아 경제 위기 ‘호재’
  파리 주식 시장에 상장된 40대 주요 기업의 주가는 올해 전반기에만 40.5% 상승했다. 사상 최고의 약진이어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장기적인 불경기에 따라 침체 일로이던 부동산 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파리의 부동산 가격은 90년대 초에 비해 무려 30%나 떨졌는데, 지난해부터 아파트 시세는 하락세가 멈추었고 대부분의 지방 도시에서는 1.7% 상승했다. 자동차 시장에도 햇볕이 들어 지난 상반기에 자동차 판매가 16.6% 증가했다.

  10년간의 길고 긴 경제 침체기를 살아 온 프랑스국민들에게 이러한 경제회복은 ‘갑작스러운’ 일로 보이는 듯하다. 내부보다 외부의 변화에서 말미암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 원인으로 비약적인 수출 증진. 자본유입, 이에 따른 내수 증가세가지를 꼽는다.

  우선 미국과 유럽경기의 호황으로 인한 구매력 증가가 프랑스로 하여금 기록적인 무역 수지 흑자를 기록하게 했으며, 이런 무역 흑자가 경제 성장 지표를 끌어올린 절대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유럽 내에서의 주문 쇄도, 자동차 수출 증가, 에어버스 판매 실적 덕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에어버스의 경우, 지난 4월에 약 31억 프랑 판매고를 기록한 후 5월에도 약51억 프랑 판매를 기록했다.

  두 번째는, 아시아 경제 위기에 따라 이 지역으로 투자될 자본 가운데 일부가 프랑스로 유입 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유럽 통합에 대한기대감으로 유럽의 대기성 자본이 모여들어 증시 폭발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고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 투자된 프랑스자금이 ‘귀국’ 하는 현상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 경제 회복을 낙관해 투자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무역 수지 흑자로 인해 소득이 다소 높아지자 올 들어 가계 소비, 즉 내수가 늘어나 경기 호황을 받쳐 주고 있다. 97년 6월부터 1년 동안소비는 8.35% 증가했다.

  경제 회복이 이처럼 자체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심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현재 사회당이 이끌고 있는 좌파 연립 내각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데로 옮겨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우파의 실정과 낮로 인해 ‘뜻밖에‘ 제1당으로 올라선 뒤 공산당 . 녹색당과 좌파 연립 내각을 구성해 시라크 대통령과 ‘동거 정부’(코아비타시옹)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정책의 효과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금의 경기 회복을 지난 1년 동안의 사회당 정책의 성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오히려 사회당은

경기 회복의 수혜자라고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스팽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줄곧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들의 조사에 따르면, 집권 1년 동안 줄곧 60% 안팎을 유지하는 지지율 ‘고공비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좌파는 전통적으로 성장보다 분배, 자본보다 노동에 중점을 두어 왔다. 현재까지 출범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도 주 35시간 근로제라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관철하는 것이었다. 기존 39시간에서 4시간을 줄이고 이를 실업자에게 할애한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일자리를 나누어 갖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는 기업의 부담을 정부가 한시적으로 보전해 준다고 했지만 우파와 기업 측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 왔다. 장 강두아 프랑스 전경련회장은 이 방침이 나온 뒤 항의하는 표시로 사임했다. 그러나 이 법안 제안자인 마르틴오브리 고용연대장관의 이름을 딴 오브리법은 지난6월 하원에서 통과되어 2000년부터 전면 실시될 예정이다.

사회당의 세금 인하에 우파 . 기업 환경
  이 법안만을 보면 프랑스 사회당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사회당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점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프랑스 노조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우군’인 사회당의 입장을 고려해 극단적인 노사 대립을 자제하게 만든 것뿐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그러나 사회당 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도미니크스트로스-칸 경제무장관이 주도해 이루어지는 경제 정책의 변화는 7월22일 발표된 세제 개혁안에서 잘 나타난다. 이 개혁안은 기업이 부담하는 근로자의 직업세를 50억 프랑 이상 경감하고 전기 .  가스세와 요식업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인하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 같은 세금 인하 정책을 우파나 기업도 쌍수를 들고 환영 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사회당  집권시기에는 사회복지 예산을 조성하기 위해 고율 세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사 주간지<르프앵>은스트로스-칸 장관에게 ‘좌파 속의 우파‘ ’프랑스의 토니 블레어’ 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현내각의 수장인 조스팽 총리도 경제학교수 출신이고 상회당 내각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실업난 등 경제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문제에 관해 스트로스-칸 장관만이 유일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보다는 좌파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우파 정책이 요구될 때는 과감하게 우파를 선택할 줄 아는 유연함 또는 이런 여유를 가능케 한 주변 여건 덕분이라는 것이 프랑스 경제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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