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아까운‘국가대표’극장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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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극장, 예산은 많고 예술은 빈약…“운영 방만, 경영 마인드 도입해야”

 국내 프로 축구에는 관중이 없어도 국가 대표의 경기에는 관중이 운집한다. 한국에서 기량이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국가의 이름을 걸고 벌이는 경기여서 그만큼 수준이 높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적용될 듯한 이 같은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예술 분야다.

 극단 · 창극단 · 무용단 · 오페라단 · 발레단 · 합창단 · 국악 관현악단 등 국립중앙극장 소속 단체의 예술가들은 말 그대로‘국가대표’이다. 국가는 빼어난 예술가들을 선발해 월급을 주고 공연을 하게 한다. 그러나 국립극장의 작품에는 관객이 별로 몰리지 않는다. 예술성이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지 못한다.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관광부 개편안이 발표되자 문화예술계에서는‘국립 극장 민간 위탁’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그 의견들은 대체로‘공무원들이 운영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미래는 없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국립극장과 소속 단체들이 그 대표성에 걸맞게 운영되지도 않을뿐더러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주돈식 전 문화체육부장관은 지난해 펴낸 <문민정부 1천2백일>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공산주의의 국영이라는 말이 비효율 · 무책임을 의미하듯이 우리 예술 단체들의 국립이라는 용어는 비능률을 의미하는 예가 너무나 많다. 국립극장은 연1백30억원을 쓰면서 수입은 3억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국립극장이 시민들에게 백억원 이상의 문화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는 자문해 볼만하다.’

1년 공연 횟수, 외국의 10분의 1수준    
 지난해 국립극장의 전체 예산은1백71억원. 그러나 입장 수입은 5억5천여만원밖에 안 되었다. 국립극장 사무국 관계자들은‘싼값으로 국민들에게 문화혜택을 준다’고 말하지만, 지난해 국립극장의 공연을 본 관객은 12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무료 관객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전문가나 애호가에게도 외면 받는 공연이 많은데다가, 빈 자리를 메우느라 초대권을 남발해 공연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예술 단체의 존립근거인 1년 공연 횟수를 보아도 국립극장 소속 단체들은 외국 국립 단체의 10분의 1수준인 20여회에 그치고 있다. 외국 국립 단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공연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국가로부터 전체 예산의 3분의1만 지원받고, 나머지는 기부금과 입장 수입으로 운영해야하기 때문이다. 기부금과 관객을 확보하기 우해서는 공연 횟수도 많아야 하지만 예술성도 뛰어나야 한다. 예술가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게 하고, 국민들에게는 수준 높은 예술을 즐기게 하는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 예술단체에 대한 국가의 전액 지원은 외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옛 소련의 예술단체들도 독립채산제를 채택했다. 국립극장이 운영비(세금)를 지불한 국민에게 그만큼의 문화적 혜택을 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방만한 운영이 꼽힌다. 국립극장 사무국 직원은 모두 1백45명. 국립극장보다 훨씬 많은 예술 공간을 운영하는 재단법인 예술의 전당 직원보다 많다. 1백45명 가운데 민간인 출신 극장 경영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관료 조직과 소속 예술단체사이에서 불협화음도 끊임없이 터져나온다.

“국립극장을 공법인화해 소유는 국가가 하되 경영은 예술을 잘 아는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경영 마인드 도입은 시대의 추세이다.” 지난 2월말까지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지낸 유민영 교수(단국대 · 연극 평론가)의 이 같은 지적에 공연 관계자들은 대부분 동의한다.“국가가 지원하되 더 효율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각 단체의 성격에 맞는 효율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예술도 살고 국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고 탁계석씨(음악평론가)는 말했다.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공무원들의 자리보전’외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국립극장 사무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예술을 경제 논리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하고, 세계 공연 시장에도 내놓는 미국 · 유럽 · 일본의 국립 예술 단체들은 지금‘옳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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