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국토여, 불끈 솟아라”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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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6월에 이어도 부근 지질 조사 착수…“한반도 주변 수역 탐사 지속해야”

 ‘이어도 사나, 이어도사나~’ 제주도 민요 <이어도>는 이렇게 너울너울 이어진다.

 이어도는 제주도에서 11㎞ 떨어진 마라도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1백52㎞를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전설의 섬’이다. 이 섬은, 평균 해면의 4.6m 아래 숨어 있다. 그 때문에 5m가 넘는 파도가 쳐야만, 그 끝이 살짝살짝 물 위로 드러난다. 파고 5m라는 말은, 파도가 평균 해면의 5m위로 치솟았다가, 평균 해면의 5m 아래로 꺼지는 것을 뜻한다.

 파고 5m짜리 파랑이 치려면 대개 폭풍 경보 이상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추측컨대 먼 옛날 제주도 어부들이 이어도를 본 것은 바다가 거칠게 울부짖던 날, 그들을 태운 목선(木船)이 파도의 가장 높은 끝에 올라가 ‘마지막으로’ 곤두박질칠 때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어도를 본 사람은 거의 다 불귀의 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어도 부근은 한반도로 올라오는 태풍의 70~80%가 지나가는 ‘죽음의 바다’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평균 수심이 50m밖에 안되고 물고기의 은신처가 되는 암석이 많아, 천혜의 어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어부들은 생사를 하늘에 맡기고, 이어도 부근으로 출어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도가 전설을 깨고 나와 세계 해도(海圖)에 등재된 것은, 1906년 6월5일 저녁 9시40분쯤 이곳을 지나던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 호와 접촉함녀서였다. 그래서 ‘소코트라 암초’라는 국제적인 몇잉이 붙었다. 훗날 일본인들은 파랑(波浪·파도)이 거친 날 이 섬이 드러난다고 하여 ‘파랑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밀물 때도 해면 위에 드러난 것만을 섬으로 인정한다. 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울릉도나 제주도처럼 자연적으로 샘물이 솟아서 사람이 거주하며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 ‘도서(島嶼·Island)'이다. 도서는 12해리 영해와 24해리 접속 수역은 물론이고, 대륙붕을 보유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초목은 자라지만 샘물은 솟지 않아 사람이 경제 생활을 할 수 없는 독도와 같은 ’암석(巖石·Rock)'이다.

 암석은 대륙붕이나 배타적 겨제 수역(EEZ)을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암석을 보유한 나라는 이암석을 중심으로 12해리 영역의 바다(바다 면적 1,550㎢·제주도보다 약간 작음)를 영해로 선포 할 수 있다. 또 암석을 중심으로 한 24해리 영역(바다 면적 6,203㎢)에 대해서는 사법권을 행사할 접속 수역으로 선포할 수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이어도처럼 물 위로 나오지 못한 암초는 해양관할권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자연은 매우 오묘한 것이어서 화산이 폭발하거나 산호가 성장해 암초가 물 위로 솟아나기도 한다. 이때 이 암석의 소유권은 속된 말로 ‘먼저 깃발을 꽂는’나라로 귀속된다.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자기 나라 연안에 어떤 암초가 있는지 지속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어도는 산호초가 아니기 때문에 물 바깥으로 자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이어도는 화산재가 응고된 응회암 덩어리여서 거친 파도에 깎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어도가 해면 위로 솟아나오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잠재적인 영토’ 이어도의 가치를 가정 먼저 인식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56년 그는 독도는 물론이고 이어도 바깥으로 평화선(어업 자원 보호선)을 긋는 용단을 내렸다.

 이어도는 한국령인 마라도로부터 1백52㎞, 중국령인 동도(童島)로부터는 2백45㎞, 일본령인 도리시마(鳥島)로부터는 2백76㎞ 떨어져 있어, 3국이 중간선을 그을 경우 한국 바다에 귀속된다. 또 이어도는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 내에 있어 이어도의 소유권은 한국에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중국이 발견한 호피초·압초 한국은 몰라
 87년 주변국이 이어도를 선점할 가능성 등에 대비해 등(橙) 부이를 띄웠던 정부는, 올 6월 노르웨이 시추선을 빌려 이어도 부근에 대한 정밀 지질 조사에 착수한다. 지질 조사가 마무리되면, 해양수산부는 곧 2층 구조 철골 구조물을 제작할 계획이다. 높이 41m 너비 10.5m로 제작되는 이 구조물은, 선착장과 해양과학자들이 거주할 연구 공간, 풍차 발전기, 헬기 착륙장 등으로 구성된다. 사업비는 2백20억원, 제작 완료 시기는 2000년께. 해양수산부 주성호 해양개발과장은 “이어도 정상이 수면 위로 솟아오를 가능성을 고려해, 될수록 이어도 정상 부근에서 먼 곳 중에서 지반이 단단한 곳을 골라 구조물을 세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어도를 소암(蘇岩)이라고 부른다.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국제해양재판소 재판관인 박춘호 박사는 “중국 정밀 해도에는 소암(이어도)서남쪽 70㎞쯤 떨어진 수심 20m 바다 속에 호피초(虎皮礁)라는 암초가 있고, 소암에서 동남쪽으로 70㎞ 떨어진 바다 속 30m쯤에 압초(鴨礁)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호피초와 압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호피초와 압초도 한국쪽 중간선과 배타적 경제수역 안쪽에 있는 만큼 주변국들에 앞서 먼저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직 초보 단계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주변 수역에 대한 지형 조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기관으로는 한국자원연구소·해양연구소·국립해양조사원이 있다. 이 중 지난 겨울 탐사선 ‘탐해 2호’를 끌고 독도 주변을 탐사한 한국자원연구소는 독도가 수심 2천5백m 바다 속에서 화산 활동으로 솟아오른 해산(海山·Sea Mount)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암초와 해산은 대개 크기에 따라 구분된다.

 한국지원연구소 한현철 박사(42) 팀은 이 곳에서 독도말고도 해산을 2개 더 발견했는데, 수심 1백60m에 있는 것을 ‘탐해 해산’, 수심 1백40m에 있는 것을 ‘오키 해산’으로 이름지었다. 한박사는, 탐해 해산은 조사선의 이름을 땄고, 오키 해산은 과거 일본이 발견한 오키(?岐) 뱅크 가까이에 있어서 오키 해산이라고 명명했다고 말했다.

 동해는 한반도와 붙어 있던 일본 열도가 떨어져 나가면서 생성된 바다이다. 한박사는 독도 주변에 해산이 발달한 이유를 동해가 생성된 원인에서 찾았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지각이 찢어져 동해는 깊은 바다가 되었다. 이때 지각이 약한 곳으로 마그마가 솟아 해산이 만들어졌다고 추측된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오키 해산이고, 이어 탐해 해산·독도·울릉도 순서였을 것이다. 울릉도는 가장 최근에 생성된 것이어서 큰 섬으로 남아 있고, 그 전에 생성된 독도는 오랜 세월을 깎여 작은 섬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박사는 오키·탐해·독도·울릉도는 한 분화구에서 생성된 섬일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일본이 자꾸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먼저 생긴 오키 해산이 일본 쪽으로 따라가고, 이어 탐해 해산과 독도가 일본 쪽으로 이동하며 다시 마그마가 분출해 울릉도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는 독도 주변 해산들은 죽은화산이어서 다시 마그마가 분출해 물 위로 솟아날 가능성이 적은 것 같다고 예측했다.

 선진 열강이 한 뼘이라도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것이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주요 국가들이 바다를 더 차지하려고 총력을 다하는 시대이다. 한민족이 한반도라는 좁은 국토에 갇힌 채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답답하게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바다를 넓힐 수 있도록 어느날 갑자기 암초나 해산이 불숙 물 위로 솟아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해양과학자들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주변 수역에 대한 탐사를 지속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李政勳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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