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명부제’ 일전 임박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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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사표ㆍ지역주의 방지 명분 들어 도입 추진…한나라당 반대, 충돌 불갈피

국회의원 개개인의 운명이 걸린 선거제도 개펴 논의가 곧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국민회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야권은 중ㆍ대 선거구제를 선호하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다.

국민회의가 추진하려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소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합친 형태다. 이 제도를 실시할 경우 유권자는 투표를 동시에 두 번 한다. 한번은 해당 지역에 출마한 개별 후보에게, 또 한번은 시ㆍ도 별로 각 정당이 제출한 정당 명부에 기표한다. 각 정당은 제2 투표의 득표율에 따라 시ㆍ도 의석 수를 배정받고, 이 의석을 해당 지역의 소선거구에서 당선된 후보에게 먼저 배정한 후 나머지 의석을 정당 명부에 등재된 후보 순으로 할당한다.

국민회의는 이 제도가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는 비례대표제의 장점과 의원들의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는 소선거구제 장점을 적절히 가미한 환상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국민회의는 또 이 제도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의 폐해를 보완하리라고 본다. 특히 정당 명부에 등재되는 인사를 그 지역의 명망가로 선정할 경우,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국민회의는 영남에서 더 많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병행해 국민회의측은 지역별 인구에 따라 의원 수를 재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농촌인구는 감소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의원 수는 줄지 않는 반면, 늘어나는 도시 인구를 대표하는 의원 수는 지나치게 적다는 취지에서다.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측이 만든 아래 표는 꽤 흥미롭다. 이 표는 국민회의가 구상하는 새 선거제도를 도입했을 경우 각 당의 의석 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15대 총선 득표율을 대입해 산출한 것이다.

파란색 부분은 전체 2백99개 의석을 인구 비율에 따라 나눈 각 지역 해당 의석이다. 이에 따르면, 서울ㆍ경기ㆍ부산ㆍ대구 등 대도시는 의석이 늘어나는데 강원도를 비롯한 농촌 지역은 의석이 감소한다. 농촌과 도시의 인구 대표성이 잘못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노란색 부분은 각 지역에 배당된 의석을 15대 총선 당시 각 당이 그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에 딸 나눈 것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경우, 신한국당은 1석이 줄어드는데 반해 국민회의는 7석이 늘어나고, 1석도 없던 자민련은 8석을, 1석이던 민주당은 9석을 얻게 된다. 이를 전국에 확대하면 신한국당은 무려 24석이 줄어들고, 민주당은 25석이 늘어난다. 그만큼 당시 민주당 지지표가 사표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 표는 또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에서 국민회의 후보가 영남에서 다수 당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표에 따르면, 부산ㆍ경남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이 3명씩 나오고, 광주 전남에서는 신한국당 의원이 4명 탄생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한나라당은 이 제도가 ‘국민회의의 영남 잠식 전략’이라며 반대할 뜻을 분명히했다. 철웅성에 가까운 호남표의 결집력으로 볼 때 이 제도는 국민회의에만 유리할 뿐 동서 화합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지금처럼 중앙당이 후보 명단 작성의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제도가 보스 정치ㆍ계보 정치만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었지만, 자민련도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반대하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자민련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불리하지 않겠느냐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회의 핵심층 일부에서도 중ㆍ대선거구제를 주장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 앞으로 이를 둘러싼 격론이 예상된다.

국민회의, 원외 지구당위원장 폐지 검토
선거구제 논의와 별도로 국민회의 핵심층에서는 원의 지구당 위원장을 없애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원외 지구당 위원장이 후원회도 열고 공천 기득권도 주장하는 풍토는 난센스’라며, 고비용 정치 구조 청산과 정당 민주화를 위해 원의 지구당위원장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외 지구당 위원장 폐지는 결국 지구당 폐지와 연관된다. 하지만 지구당을 없애는 것은 당원 관리나 지역 후보 공천에 어려움을 초래해 자칫 풀뿌리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 ‘출장소’ 개념의 자부 설치이다. 각지역 지부가 평소에는 당원 관리와 민원 접수 업무를 하고, 선거때는 후보 선출위원회를 구성해 누구든 입후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원ㆍ내외 위원장들이 매달 몇천만원씩 쓰는 지구당 유지비를 줄일 수 있고, 국회의원은 의정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여권의 주장이다.

원의 위원장 폐지는 한때 김대중 대통령도 신중히 검토한 사실이 있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 시절 김대통령은 열세 지역의 원의 위원장 야당 시절 김대통령은 열세 지역의 원외 위원장 폐지를 검토했으나, 당시는 전국 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이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선뜻 추진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경우 자연히 해소된다.

머지 않아 수면 위로 떠오를 선거 개혁 문제는 앞으로의 정치 문화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재단된다면 자칫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느때보다 국민의 감시가 절실하다.
李叔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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