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판 난 불로소득자들 ‘요지경 세상’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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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ㆍ감시망 와해, 이자 소득 증가로 ‘물 만난 고기’ … 수억원대 장롱, 몇천만원 술값 쓰며 ‘흥청망청’

하루 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6월 24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에 자리한 갤러리아 명품관 앞 보도에는 지나는 행인의 발길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명품관 내부에 들어서니 수입품 코너마다 쇼핑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고급 여성 잡화류를 판매하는 1층의 한 매장에서는 중년 여성 세 사람이 물건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번에 산 베이지색 핸드백은 쉽게 싫증 나더라. 이걸로 하나 더 가져야겠어.” 한 여성이 지갑에서 수푤르 꺼내 갑을 치른다. 다른 일행은 남편 사업의 뒤를 봐준 공무원 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며 프랑스제 핸드백 2개를 샀다.

그들이 나간 뒤 점원에게 물어보니 제품은 프랑스게 와니 악어가죽 핸드백과 벌크ㆍ캐리 핸드백이라고 했다. 하나는 2천2백만원짜리이고, 나머지 2개는 각각 7백만원, 8백만원이라고 했다. 매장 관계자는 IMF체제에 들어선 이후 부유층 손님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2층 남성복 및 캐주얼 코너, 3층 생활용품 코너에도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명품 매장 “IMF 이후 고급 손님 오히려 늘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세계적인 고가 명품들을 들여놓았다는 각 매장의 제품들에는 그러나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 고객 대부분이 가격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비쌀수록 더 찾는 경향이 있어서 천만원짜리를 1천5백만원이라고 부른 뒤 1천2백만원으로 깎아 주면 기분좋게 사가곤 한단다.

매장 3층에 있는 한 홈세트점에는 영국ㆍ독일ㆍ일본 등지에서 수입된 고급 식기 세트가 진열되어 있다. 고객으로 행세한 기자가 요즘 많이 나가는 고급 홈세트를 찾다 영국 로젠탈 제품 부부용 찻잔세트를 내놓는다. 찻잔 2개에 1백50만원. 좀더 고가 제품을 요구하니 “역시 명가에서는 명품을 알아봅니다”라며 독일제 사라스트로 제품을 꺼내 가격을 뽑아 준다. 부부용 찻잔세트는 3백70만원, 4인조로 맞추면 천만원이라고 한다. 국내 굴지 재벌인 ㄷ그룹 회장 부부가 이 제품을 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유층을 상대로 한 호화 사치품은 갤러리아ㆍ현대 백화점 등이 개설한 명품관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외에도 하얏트ㆍ신라ㆍ힐튼 등 특급 호텔 지하에 개설된 고가 외제품 판매장에도 고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이들 매장에서 판매되는 수입 의류와 액세서리ㆍ보석 등의 가격은 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명 상표가 붙은 남녀 정장은 보통 3백만~5백만원 정도에 팔린다. 핸드백은 5백만원부터 억원대까지 다양하다. 2백만원짜리 남성용 벨트, 한 장에 5백만원 하는 티셔츠도 있다. 대개 샤넬ㆍ켄조ㆍ루이비통(프랑스), 아르마니ㆍ구찌ㆍ페라가모ㆍ톰볼리니(이탈리아) 상표가 붙은 것들이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한 관계자는 “IMF 이후에는 진짜 고가 명품만 잘 나가고 어중간한 브랜드는 다 도태되고 있다. 이자 소득이 높아져서 그런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에 대한 예약자가 늘고 있다”라고 말한다.

같은 날 오후 6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츠칼튼 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룸살롱 ‘델로스’에는 벤츠 승용차를 포함해 국산 고급 승용차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고급 의상으로 차려입은 늘씬한 미인들이다. 이곳 룸살롱은 강남 유흥가에서 고위 공직자, 정ㆍ관계 인사들이 많이 출입하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ㅎ그룹이 룸살롱 ‘델로스’의 뒤를 밀어 주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이내 건장한 사내들이 제지한다. 손님이라고 하자 “여기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라며 밀쳐낸다. 할 수 없이 맞은편 도로변에 정차하고 잠복해 살피면서 안으로 전화를 걸었다. 귀한 손님 접대 문제로 예약을 상의하겠다고 하자 담당 마담을 대라는 답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담과 흥정하게 되었다. 손님 숫자가 3~4명일 경우 술값으로 5백만원, 아가씨 팁은 백만원을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자리가 없으니 사전에 꼭 예약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잠복 3시간여가 지난 9시쯤 외제 승용차 2대가 나타났다. 이윽고 중년 신사4~5명이 차에서 내려 ‘델로스’로 들어갔다. 그중 차량 한대의 번호를 적어 차적을 조회해 보니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기업 사장이 아무개씨가 소유주로 나타났다.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호화 유흥업소 출입자를 취재한다고 밝히자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잠복 취재 내용을 들려 주자 그제서야 “아. 그날 거래처 손님들과 편의를 보아준 공무원에게 술 한잔 대접하러 갔는데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라고 반문한다.

다음날인 25일 청담동 에멜랄드호텔 지하 나이트클럽 ‘쥴리아’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손님들로 붐볐다.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곳에서 판매되는 술은 고가 외제 양주 일색이다. 술값도 테이블당 백만~2백만원에 이른다. 이 호텔 14층 술집 ‘페레’와 근처 나이트클럽 ‘라퓨타’도 마찬가지였다. 세 곳을 둘러보면 한국경제가 무너졌다는 사실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강남 일대에 벌집처럼 몰려 있는 룸살롱, 대낮에도 손님이 몰려드는 호텔 사우나와 안마시술소 등도 최근 들어 거액 이자 소득자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다.

특히 고급 소님들만 몰리는 곳은 시설이나 규모부터가 다르다. 이탈리아제 소파와 페르시아사 카펫, 대리석 탁자로 꾸미고 고가 미술품을 진열하는 등 방 하나를 꾸미는 데 5억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보통 한 테이블 술값만 5백~천만 원, 아가씨 팁이 백만~2백만 원, 고급 호텔로 2차를 가는 경우 2천만~3천만 원이 든다.

1인분 15만원짜리 외국 음식점 ‘만원 사례’
특수층과 부유층을 단골로 하는 이들 룸살롱은 ‘역할 분담’까지 되어 있다. 앞서 기자가 입구에서 잠복 취재한 ‘델로스’가 고위 공직자와 정ㆍ관계인사들이 주로 출입하는 곳이라면, 대치동에 있는 ‘개구리’ 룸살롱은 30, 40대 졸부와 재벌 2세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또 서초동 ‘미스테리’ 룸살롱은 변호사들이 즐겨 다니고, 역삼동에 있는 ‘아카’ 룸살롱은 정ㆍ재계 인사들을 단골로 두고 있다. 이들 룸살롱의 마담들은 정ㆍ재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들 호화 룸살롱에 근무하는 호스테스들은 업계 최고의 몸매와 미모를 무기로 특정 고객의 정부 노릇을 하며 아파트를 제공받는가 하면 고가 와제차인 벤츠를 몰고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와 탈선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호텔마다 월 5백만~천만원 정도 선금을 지불하고 객실을 임대해, 아무 때나 외도를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 ㄹ호텔의 한 관계자는 “호텔 객실을 장기 임대하는 사람 가운데는 업무용으로 쓰는 일도 있지만 본인이 수시로 들락거리거나 접대하고자 하는 기관장급 공직자를 보내 쉬어 가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밤낮 아무 때나 사용하기로 한 경우 정가의 40%를 할인해 주고 있다.”라고 말한다.

부유층이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고 있는 비용은 한이 없다. IMF 체제 이후 전국 대부분의 식당업계가 장사가 안되어 울상이지만 부유층을 상대하는 일부 식당은 오히려 대목을 만났다. 특히 외국 음식 전문 식당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논현동에 있는 프랑스 철판구이집 배니하나는 1인분에 8만원씩 하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신사동에 있는 바닷가재 저문 요리집 ‘코라’도 1인분 가격이 15만원 하는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이런 대형 별미집조차 상류층들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진짜 부자들이 외식 장소로 찾는 곳은 특급 호텔의 프랑스ㆍ중국 식당이다. 롯데ㆍ신라ㆍ힐튼ㆍ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운영하는 중국집은 1인분 정식 요리가 보통 30만~50만원이다. 특히 일품 요리라 해서 롯데ㆍ신라 등 특급 호텔이 부유층 단골을 상대로 주문받아 공급하는 요리는 1인분 값이 백만~3백만 원에 달한다. 개구리 요리ㆍ자라 요리ㆍ곰발바닥 요리가 그것이다.

졸부들, 너도나도 사채 시장으로
IMF 체제 후 국민 대다수가 부도ㆍ실직ㆍ감봉 등으로 고통의 나락에 떨어졌지만 오히려 제철 만났다는 듯이 흥청망청대는 사람도 적지 앟다. 고금리 시대를 맞아 거액 현금을 금융권이나 사채 시장에 집어넣고 톡톡한 이자 수입을 챙기는 계층이 그들이다. 여기에 서울 강남 일원의 부동산 졸부들까지 사채놀이에 가세함으로써, 이들이 몰려 드는 초호화 사치품 시장과 고급 유흥 향락 업소는 요즘 제철 만난 듯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른바 불로소득 계층으로 불리는 한국의 거액 재산가는 국민의 약 1%에 해당하는 4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평균 5억원 이상의 예금액에 유가 증권, 도시의 각종 상가와 빌딩, 시골의 농지ㆍ임야 등에 골고루 분산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다시 졸부라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5백억원 이상 재산가 중에서도 제조 법인체 등의 생산 활동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ㆍ금융ㆍ사채에 투기를 일삼는 부류를 가리킨다.

IMF 체제가 이들에게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준 것은 그동안 작동되어 왔던 사회ㆍ경제적 감시체제가 일거에 무장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즉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유보되고, 가명ㆍ차명 거래를 금지하던 금융실명제마저 사실상 폐지됨으로써 이들은 눈치 볼 것 없이 세금을 안 내거나 덜내고도 고금리 시대에 재산을 무한대로 불릴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특히 최근 들어 불로소득자들이 특특히 재미를 보는 곳은 사채업이다. 대형 오피스텔 건물이 밀집해 있는 강남 테헤란로 주변은 요즘 사채 시장의 메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곳에서 제법 규모가 큰 채권 회사 자금부장으로 있는 김관수씨(49ㆍ가명)는 요즘 졸부들의 사채 시장 진출 실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테헤란로 주변 오피스텔 소유자는 최근 사채 시장의 큰손으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체들과 급전이 아쉬운 수천억원대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접근해 연리 40%대의 이자를 받고 돈을 굴린다. 하루에 5억~6억원씩 벌어들이는 사람도 많다.”

김씨에 따르면, 사채 시장 전주들은 보통 현금을 2천억~3천억원씩 쌓아두고 돈놀이를 한다고 한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전주가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 없이 중개인을 통해 거래한다. 큰손일수록 3, 4단계씩 중개인을 거쳐 돈을 굴리는데, 이때 이자는 중개인 수수료를 포함해 연 40%이지만 급전일 경우 월3.7~4% 고액 이자로도 거래된다.

수백억원대의 ‘중간손’급 사채꾼들도 IMF 체제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경기가 침체해 고액 이자라도 마다하지 않고 급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데다, 돈의 출처와 흐름을 추적하던 금융실명제의 감시 장치들마저 완전히 무력해졌기 때문에 안심인 것이다. 여기에 수억~수십억 원을 장롱 속에 쌓아 둔 재산가들까지 사채 시장에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감관수씨는 “지난 봄 하루는 양재동에 사는 전직 고위 공직자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장롱 속에서 맥주 상자에 들어 있는 현금 3억원을 내밀고 사채 시장에서 굴려 달라고 했다”라고 말한다.

현재 서울에는 사채알선책이 만여 명 활동하고 있는데 시장 규모도 약 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IMF 시대를 맞아 졸부들의 검은돈이 세금이 없는 고금리를 쫓아 대거 사채 시장으로 이동한 것이다.

크리스털 양주잔 깨뜨리며 스트레스 해소
물론 불로소득의 근원이 사채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뇌물로 거액 재산을 형성해 숨겨 둔 전ㆍ현직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 호황기에 기업 재산을 빼돌린 기업체 임원들, 실제 소득 신고 액수를 누락한 변호사ㆍ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세금을 물지 않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재벌 2세들도 불로소득자 대열에 들어간다. 여기에 거액 재산가들을 상대로 호화 사치품을 공급하는 업자들, 고급 유흥업소 경영자들도 탈세를 통한 부의 왜곡된 흐름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로소득자라고 볼 수 있다.

IMF 체제에 접어들어서 한국 사회 불로소득층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이유는, 이들의 재산 불리기와 소비 행태가 사회ㆍ경제적 정의를 훼손하고 계층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붕괴하면서 정부는 실직자 구제와 기업 회생을 위해 엄청난 재정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갈수록 서민의 세금 부담만 늘어날 뿐 불로소득자들은 세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 전국민적인 고통 분담 추세에도 아랑곳없이 일부 부유층은 탈세해서 얻은 부를 과시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반 서민들은 부유층의 주거 공간에 들어가 볼 기회가 거의 없다. 과거에는 졸부들의 과시를 위해 여러방면으로 인연이 닿는 사람을 집으로 초청해 파티를 열기도 했지만 90년대 들어 이런 모습을 사라졌다. 5공화국 때부터 부유층 사이에 유명한 영어 가정교사로 통해 수시로 몇몇 특권층 집을 드나들어 온 서울 신사동 김명자씨(52ㆍ가명)는 한마디로 ‘서민들이 부유층 집을 방문해 둘러보면 졸도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해 준 방배동의 한 사채업자 집은 3층 건물인데, 건물 중앙을 유리관 물기둥으로 만들고 여기에 악어ㆍ자라ㆍ수초 등을 넣어 두었다고 한다. 거실 복판의 샹드리에는 5천만원자리 호주산 스왈로프스키 크리스탈이고, 장롱도 스칸디나비아 원목으로 된 이탈리아산으로 3억원대라는 것이다. 한남동 어느 고위 공직자 집은 앞뒤 두 채로 꾸며졌는데, 한 채는 수수하게 꾸미고 다른 한 채는 호화로운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외부인을 초청해야 할 경우에는 수수하게 꾸민 집을 이용하고, 부인이 친구들을 부를 때면 호화 시설을 갖춘 집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호화판으로 꾸며진 현대판 궁전은 서초구 방배동ㆍ양재동과 강남구 청담동ㆍ압구정동ㆍ논현동,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평창동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논현동 네거리에서 건축백화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일반이들은 강남에서 70~80평짜리 고급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부자라고 하지만, 진짜 부자들 눈에는 신혼 살림 수준이다. 집에 수영장과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정도라야 고급 주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택이 강남에만도 1백50여 곳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 부유층이 즐겨 찾는 실내 장식품은 세계 최고 일색이다. 장롱은 한자를 기준으로 3천만~5천만 원짜리, 소파는 1세트에 최소한 3천만원이 넘는 제품이 애용된다. 씽크대는 컴퓨터로 찌꺼기를 자동 탈수하고 드라이아이스로 얼려 처리하는 제품이 3천만원을 호가하고, 수증 안마기가 설치된 욕조도 최하 7백만원부터 시작해, 브랜드가 유명한 미국산 브릭스 제품은 3천만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바닥에 까는 카펫은 페르시아와 벨기에 산을 주로 찾는데 평당 3백만~5백만원이다. 벽지도 평당 10만원 이상인 이탈리아 제품을 사용하며, 까다로운 사람은 왕복 항공료와 체재비를 내고 도배 인부를 직접 이탈리에서 불러오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호화 생활을 하는 부유층은 취향도 색다르다. 거실에 설치된 난로 옆에서 고급 양주를 마시며 1개에 5만원이 넘는 크리스털 양주잔을 벽에 던져 깨뜨리는 ‘유럽 귀족 풍습’을 모방하는가 하면, 1억원이 넘는 경주용 모터 보트를 구입해 경기도 청평 별장 근처 호수를 질주하는 것을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삼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 재벌 2세가 캐나다산 제트스키를 사들여왔는데, 이 제품은 달리는 도중에 90도 회전이 가능한 신기술 제트스키로서 값이 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IMF 체제 이후 대다수 국민이 소득 감소와 경제 파탄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고액 재산가들 쪽으로 급속히 부가 이전되어 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한국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사유 재산 제도를 골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거액 재산가라 해서 무턱대고 경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부가 대다수 국민의 희생과 고통 분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탈세와 음성적 방법을 통해 특정 계층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무 조사만으로는 역부족, 사회적 장치 마련 시급”
최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불로소득자들의 음성ㆍ탈루 소득에 대한 세수 강화를 거듭해서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올 들어 두 차례 9백69명을 상대로 대대적인 특별 세무 조사를 벌여 2천4백53억원의 탈루 세금을 추정했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특별 세무 조사를 통해 호화 사치를 일삼는 부유층의 행태를 바로잡고,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세무 조사 방식만으로 이미 무너져 내린 사회 정의가 바로잡힐지는 의문이다. 호화사치 생활자와 음성 불로소득자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 조사는 해마다 있었던 일이다. 지난해에도 천여 명으로부터 2천3백억원을 추징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세연구원 현진권 상임연구위원은 “행정력을 동원해 반짝 세무 조사를 하는 방법만으로는 불로소득의 원인을 제거하고, 사회ㆍ경제적 폐해를 극복하기 어렵다. 불로소득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적으로는 금융 소득에 대한 종합 과세를 시급히 실시하고, 금융실명제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위 상자 기사 참조).

서민 정치를 기치로 내걸고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IMF 체제라는 최악의 국난 상황을 맞아 바야흐로 불로소득자들과의 전면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무너져 내린 중산층과 도탄에 빠진 서민들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부유층들의 천국’을 부며 더욱 깊은 좌절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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