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병 자민련 사무총장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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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화해 위해 5공 세력과 연대 필요”

당초 박준병 총장을 만나려 한 이유는 자민련의 새 살람군이 된 그를 통해 자민련의 미래를 가늠해 보고자해서였다. 청청도 출신이면서 민정계인 박총장은 JP와 TJ를 연결한ㄴ 몇 안되는 당내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인 데다, 당 구석구석에 ‘말발’이 통하는 실세 총장이다. 게다가 그는 자민련이 잠재적 우군으로 상정하는 5공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를 비롯해 정호용ㆍ장세동ㆍ허문도 씨 등 5공 핵심 인사들을 자민련이 접촉하는 과정에서도 박총장의 걸음은 분주했다. 그런 그가 뜻밖에 서초 갑 보궐 선거 후보로 결정되었다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결국 본인이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이다. 출마 발표 다음날인 6월 26일 당사에서 박총장을 만났다. 하룻밤 사이에 마음의 준비를 끝낸 듯 거침없이 출마 선언을 한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서초동으로 이사할 집을 보러 간다며 서둘러 당사를 빠져나갔다.

박총장의 서초 갑 출마를 두고 ‘깜짝 카드’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당에서 좋은 분을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몇몇 분은 완곡히 거절했고요. 시간은 자꾸 가는데, 선거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총재를 비롯한 당지도부가 총장인 제가 나가는 게 좋겠다고 추천하신 겁니다. 뜻밖의 결정이지만 당명에 따라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서초 갑은 상당히 까다로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에 하나 실패한 다면 총장 개인이 아닌 당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텐데요.
서초 갑은 강남의 정치 1번지라는 말에 걸맞게 유권자들의 정치 의식이 높습니다. 그동안 각계의 유능한 인사들이 오랫동안 갈고 닦은 곳이어서 새내기인 저에게 특히 어려운 선거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개혁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 지역 중산층을 대변하는데는 저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KBS 시사 토론을 진행한 박원홍씨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인지도 면에서 박총장이 뒤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박후보는 텔레비전에서만 가끔 봤지 개인적으로 잘 모릅니다. 유능한 분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정치는 제가 한수 위 아닐까 싶습니다. 짧은 시간에 인지도를 높일 비장의 무기도 있습니다.

지난번 6ㆍ4지방 선거에서 박총장은 강원도지사 특별지원단장을 맡아 패배했고, 왕년의 지역구인 충북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밀렸습니다. 정치인은 선거 결과로 평가받는 것인데, 너무 부진한 것 아닙니까?
제가 1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은ㆍ옥천ㆍ영동에서 65.4% 득표율을 얻어 전국 2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지역구를 후배에게 양보한 다음에는 거의 지역구를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강원도 선거에서는 제가 지원단장을 맡고 난 후 마지막 6일 동안 우리 당 후보 지지율이 6%나 올랐습니다. 안타깝게 석패했지만, 이 정도의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박총장 하면 아직도 12ㆍ12와 5ㆍ18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거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민자당 시절 3당 합당을 주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후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당시 야당인 자민련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때문인지 김영삼 대통령이 제정한 5ㆍ18특별법에 걸려 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 2심과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모두 무죄 판정을 받아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부분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박총장이 취임한 이후 5공 인사 영입 논의가 부쩍 늘어나면서 자민련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습니다.
한국 정치의 최대 폐해인 동서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5공 인사의 여권 영입은 신중히 고려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도권과 영남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민련의 입지 강화를 위해 앞으로도 5공 인사들과의 협력을 계속 추진할 생각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동의를 얻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흐르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지탱하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역사 아닙니까? 평소 변화와 개혁을 중시해 온 사람으로서 저는 역사의 매듭이 잘 풀려 개혁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개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자민련의 체질 개선이 가능합니까?
자민련은 창당 첫해인 95년 6ㆍ27 지방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에는 4ㆍ11총선에서 압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공동 정권을 창출하는 등 해마다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각종 선거에서 패하는 등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반성과 함께 변화가 절실합니다. 저는 우선 부총재 15명을 반으로 줄이고, 당무위원 67명을 45명으로 줄이는 등 당을 작고 효율적인 체제로 변화시키는 데서부터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 조직 개편은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 몹시 힘든 작업입니다. 앞으로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과거에도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노인 정당ㆍ보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가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번에야말로 당을 정책 정당으로 확 바꾸겠습니다. 중시ㆍ실업ㆍ교육 문제 등 각 분야의 정책 세미나를 활성화하고 통일에도 대비할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최근 전문인력을 충원했습니다. 앞으로 특히 전국의 여성 조직을 정예화하고 여성 지도자 발굴에 힘쓸 작정입니다.

당장 자민련이 풀어야 할 과제가 김종필 총리서리 국회 인준문제입니다. 한나라당에 국회의장을 내주는 조건으로 총리 인준안을 통과시키려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데, 사실입니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여ㆍ야 총무가 총리 인준 문제와 의장단 구성 문제를 일괄 타결하기로 합의했는데,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이 곧 깨질 테니까 큰 어려움 없이 여당 뜻대로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자민련에 들어올 야당 의원이 더 있습니까?
제가 민정당과 민자당 사무총장을 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지인이 많습니다. 이들 중에 이미 움지이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 여럿 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당이 선거에 진 것이나, 야당 의원들이 국민회의 쪽을 선호하는 점 등이 그렇지요. 하지만 머지 않아 몇몇 의원이 더 우리 당 식구가 될 것입니다.

항간에는 김종필 총리서리와 박태준 총재가 자리를 맞바꿀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누구보다도 두 분을 잘 알고 있는 제가 장담컨대,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박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내각제 개헌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내각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경제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 내각제를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내년에 검토해도 충분해요. 다만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려면 검토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학자들을 중심으로 당 차원에서 차근차근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공론화하지 않고 내부에서 조용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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