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선회 주장은 성급하다
  • 박상기 <시사저널> 편집장 ()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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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정 침투와 햇볕 정책

북한 잠수정이 붙잡힌 속초 앞바다의 해류는 상징적이다. 해표면에서 수심 5m 내외의 윗물은 난류이며 북쪽으로 흐르고, 그보다 더 깊은 바다의 북으로 올라가고 속에서는 찬물이 남으로 내려오는 동해 해류는 오늘의 남북 관계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몰이 방북 이후 추진되고 이TSms 금강산 관광 유람선의 윗물을 따라 북으로 가고자 하는데, 그 밑 바다에서는 공작 임무를 띤 잠수정이 침투하는 2중 구조의분단 현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포획된 잠수정의 내부를 조사한 결과, 북한 공작원이 상륙 임무를 마치고 북으로 귀환 중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에 관련자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 약속과 사과를 요구했다. 또 정경분리 원칙 및 ‘햇볕 정책’의 전략적 기조는 유지하되 국민 정서를 고려해 정주영씨의 2차 소떼 북송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교류 속도를 늦출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처가 전제되지 않으면 남북 경협과 교류는 당분간 둔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잠수정 침투 사건이 ‘남조선에 의한 반북모략 소동’ 이라는 북한측의 반응으로 볼 때 우리 정부의 요구에 상응하는 북한의 답변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명백한 침투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북측의 태도에 국민 감정이 끓어오르고 ‘왜 우리만 늘 당해야 하느냐’는 분노가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시사저널>의 독자라는 한시민은 “우리가 너무 우유부단하게 나가니까 북한이 계속 도발해 오는 것이다. 96년에 쌀을 주었더니 강릉 앞바다에 잠수함을 보내고, 이번엔 소를 주니 잠수정을 보낸 것 아니냐”라며, 정부에 강경 대처를 촉구해야 한다고 전화해 왔다.

물론 이 시민의 의견처럼 북에 보낸 소떼와 잠수정 침투 사건이 무슨 인과 관계로 엮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 이쪽이 성의를 다해 도우려 하는데 번번이 이를 배반하는 도발 사건을 일으키니 우리도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결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잠수정 침투를 응징하기 위해 다시 대북 강경책으로 선회한다면, 반 세기 동안 경색되어 온 남북 대치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현정부와 민간 저변의 힘겨운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 뻔하다. 도해에 출몰한 잠수정 한 척 때문에 무력 도발 불용, 흡수 통일 반대, 교류 협력 확대라는 대북 3원칙을 수정하라는 요구는 지나친 것 같다.
 
감정대응, 북한 강경파 입지만 강화시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봉쇄나 압력보다. 지원과교류가 효과적이라는 이른바 햇볕 정책이 수립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대북 강경책의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 왔는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잠수정 사건을 계기로 보수층 일각에서 일고 있는 강격선의주장은 이런 점에서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화해 기류가 일고 있더라도 지금 남한과 북한은 엄연히 서로를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군사 대립의입장에 있다. 꽁꽁 얼어붙은 분단의 벽을 넘어서 작은 교류의 틈성이를 엿는 국면이지, 결코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 국면이 아니다. 분단의 벽을 녹이는 햇볕 정책의 기조는 일관되게 지켜가야 하되, 햇볕의 이면에서 이야기되는 도발 행위와 공작 침투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고 늦출 수도 없다.

 이번 잠수정 침투와 같은 ‘저강도 도발 행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남북으 lrls장 해소에 반대하는 북한강경 세력의 입지만을 강화해주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들로서는 화해 기류를 차단할 목적으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저강도 도발을 획책할 가능 성이 높기 때문이다. 분단 모순 속에서 햇볕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햇볕을 가로막는 갖가지 도발 행위의 징후를 읽고 이를 타고 넘을 처변불경의 지혜를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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