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여명기 ‘어압과 저항’의 실록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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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역사> 시리즈 제4권 번역 · 출간

 출간 되지마자 프랑스의 여성 운동자들이 직접 트럭을 몰고 책을 전국으로 팔러 다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여성의 역사> 가운데 제4권(상·하/새물결 펴냄)이 출간되었다. 다섯 권으로 된 <여성의 역사> 시리즈는 프랑스의 중세학자인 조르주 뒤비와 노동운동사와 감옥 연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셀 페로가 지휘하고 연구자 68명이 3년동안 매달려 만들어낸 노작(勞作)이다.

 한국에서는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제4권을 맨 처음 번역했다. 이책은 프랑스 혁명에서 제 1차 세계대전까지를 다루었다. 혁명이 일어났고, 산업화가 가속화한 이 시기는 여성의역사에서도 거대한 전환기였다. <여성의 역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통념을 뒤집는다. ‘(프랑스)혁명은 남성 시민을 탄생시켰으나, 여성 시민은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1804년 나폴레옹이 내놓은 민법전은 오히려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재확인하는 것이어서 ‘예속의 기념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혁명기에 여성의 힘을 끌어 썼던 프랑스는 평화를 되찾아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 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여성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려는 이런 시도에 대해 여성들은 어떻게 저항했는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능 있고 열정적인 여성들의 치열한 진입 작전이다. 통념상 조각·음악 등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고 여여져 온 영역에 여성이 진입하는 것은 특히 어려워서 많은 여성이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여성들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거나 패션 도판 제작자로 나섰다. 음악적 재능이 슈만 못지 않았던 클라라 슈만은 남편과 가정을 존중하는 ‘여성적인’ 전략을 통해 폐쇄적인 음악계에 진입했다. 여성이 소설에 손을 대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겨던 탓에 브론테자매는 남자들의 필명을 빌려야 햇다. 루 살로메에 이르러서야 여성들은 우회로를 통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틈새를 찾이 않고 체제에 정면 승부를 거는 경우 곧잘 개인의 파멸로 이어졌다. 로댕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은 자기를 솔직히 표현한 탓에 비참한 말로를 맞은 여성 예술가의 전형이다. ‘조르주 상드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낸 남장 작가 조르주 상드는, 일부 낭마누의자들에게 찬미 대상이 되었으나 대체로는 격렬한 반발을 샀다. 남성들은 여성의 양성적인 모습에서 자신들의 권리가 참해당하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성의 역사>는 ‘인류의 절반이 막 시작한 초라한 모험에 대해 남성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이른바 ‘새로운 이브’에 대한 ‘낡은 아담’의 저항이다. 여기에서 이브의 모험이 초라한 것은 여성들의 행보가 항상 통념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저자들이 무조건 여성들의 역성을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다니엘 스턴이라는 필명을 썼던 다구 마리의 예를 들어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경우에도 오로지 남성만이 천재일 수 있다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라고 꼬집는다.

진보적 지식인의 편견 적나라하게 예시
 <여성의 역사>는 또 여성에 대한 ‘위인’들의 견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사회 운동가였던 프루동은 ‘여자는 주부 아니면 창녀’라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민주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아나톨 프랑스는 ‘오늘날 여성 해받은 어누 멀리까지 나갔다’고 엄살을 피웠다. 휴머니즘적인 작가로 칭송받는 작가 에밀 졸라나 화가 도미에조차도 여성 문제데 관한 한 별로 진보적이지 못했다. 정치 경제학자들과 노동조합도 에외가 아니었다. 19세기의정치 경제학은 남자들의 임금은 노동의 대가일 뿐 아니라 가족의 재생산까지 보장하는 ‘가족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에 따른 임금 차별을 정당화했다. 사료는 ‘남성들의’ 노동조합이 여성 노동자들을 받지 않으려 했던 숱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 책은 ‘여성의 역사는 양성의 관계사’이어야하며, 더 엄밀하게는 양성 간의 ‘차이의 역사’ 여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차이란 불평등의 다른 이름. <여성의 역사>는 차이의역사, 곧 유구한 불평등의 역사를 낱낱니 기록하겠다는 야심에 걸 맞는 성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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