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정곡 찌른 ‘직장 별곡’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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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미스터Q / ‘뼈 있는 풍자’로 인기…샐러리맨 ‘패자 부활전’, 대리 만족 효과

SBS 수·목 드라마 <미스터 Q>(극본 이희명) 연출을 맡은 장기홍 PD. 그저 지난 6월 어느날 여의도 전경련회관 뒤편에서, <미스터Q>를 촬영하다가 뜻밖의 광경에 놀랐다. 이강토(김민종가 등장하는 평범한 장면을 활용할 때였다. 한창 연출에 몰두하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30명은 넘을 법한 ‘넥타이 부대’가 활영 모습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장PD는 “주로 30대로 보이는 직장인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화이트칼라가 드라마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라고 말했다. 여의도는 방송사들이 밀집한 탓에 드라마 촬영이 구경거리가 되지 못하는 곳이다. 게다가 전경련회관 뒤편은 여의도에서도 외진 곳이어서 장PD의 놀람은 더욱 컸다.

 지난 5월 20일 처음 선보인 드라마 <미스터Q>는 방영 첫주에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대박’을 예고했고, 6월 이후에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종합 시청률 수위를 다투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떠 올랐다. 7월 16일 끝나는 이 드라마는 국내 성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거의 최초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평범한 내용의 수·목 드라마가 직장인들, 특히 남성인가지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어떤 점들이 깐깐한 화이트칼라들에게서 흥미를 자아낸 것일까. 대중문화 평론가 김종엽씨는 <미스터Q>가 일, 곧 직업 세게를 깊이 있게 그려낸 사실을 중시햇다.

 이 드라마에는 여느 안방 드라마처럼 애정 문제가 등장한다. 이강토와 한혜원(김희선), 황주리(송윤아)가 형성하는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하지만 <미스터Q>가 다른점은 등장 인물의 직업 세계가 사랑타령에 묻혀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종엽씨는 “드라마에서 직업 세계가 피상적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작가와 연관되어 있다. 유명 드라마 작가들을 보면 말잔치로 한몫 하는 여성이 태반 아닌가, 게다가 작가들 대부분은 문창과(문예창작과)·국문과 등 인문계 출신이다. 다양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힘이 없는 데다, 직업 세계에 대한 취재도 부족한 게 우리 드라마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직장 남성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당초 장기홍PD가 의도한 바였다. 지난해 11월, 장PD는 새 드라마로 정통 멜로물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부의 국제통과기금 지원 요청 발표를 듣고 떠올린 아이디어가 ‘기업형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그에 걸맞는 소재를 물색하던 장PD 뇌리에 예전에 재미있게 본 허영만 만화 <미스터Q>가 떠 올랐다.

 “대박을 터뜨리는 스토리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여고 괴담>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귀신을 소재로 해서가 아니라 학교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겪는 학생들의 심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인의 심리에 주목했다. 직장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치고 자기 능력을 탓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이 적성에 안 맞는 다든가 상사에게 밉보여서라는 식으로 대개 다른 이유를 대게 마련이다.

 <미스터 Q>의 무대인 라라패션 개발과는 직장에서 ‘잘릴’ 위험에 처한 사라들이 모인 부서이다. 직장에서 살아 남기가 최대 화두가 된 IMF 시대 정서에서 라라패션 개발과의 ‘패자 부활전’이 먹혀든 것이다.

 차재호 교수(서울대·심리학과)는 ‘코핑(coping)이라는 말로 요즘 직장인들의 집단 심리를 분석했다. 코핑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햇을 때의 ’대응‘을 듯하는 심리학 용어, 사람들은 자기도 부닥칠지 모를 문제를 남들이 어떻게 풀어 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원작 만화의 힘·경쾌한 연출이 성공요인!”
 <미스터q>가 직장인들의 관심을 끈 또 다른 동인을 만화 평론가 박인하씨는 우너작 만화의 힘이라고 풀이했다. 특이한 소재를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허영만 만화가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드라마의 무대인 라라패션은 여성 속옷을 전문으로 만드는 란제리 회사이다.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특이한 업종이다. 그렇지만 등장 인물들이 직장인으로서 겪어야 한는 업무 문제나, 감원·파벌등 조직내에서의 갈등은 보편적인 것이다. LG증권 기획실 정태수 대리는 “어느 직장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극중 등장 인문들의 처지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에 <미스터Q>는 지나친 우연남발, 과장된 선악구분, 비상식적 인물 묘사등 원작을 능가하는 ‘만화적’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스터Q>의 라라패션과 같은 업종 회사에 근무하는 한정숙씨(27·(주)비비안 상품기획과 MD)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인공 이강토가 경쟁자의 방해로 란제리 샘플 만들 곳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애인 한혜원과 함께 부산의 한 인형 공장에 가 샘플을 만드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란제리는 봉제방법이 매우 다양해 가장 단순한 제품을 만들 때에도 열 가지가 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허구적 묘사 때문에 이 드라마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좀 과장되어서 그렇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야기들을 설득력 있게 다루었다.”

 <미스터Q>의 성공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연출에도 기인한 바 크다. 장기홍PD는 “알머 전에 한 선배 PD가 명예퇴직자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그린 드라마를 찍었는데 시청률이 10%에도 못미쳐 곤혹스러워한 적이있다.”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원장(연희정신건강클리닉)은 연출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국민들은 모든 문제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입시·실연·실직 등 인생 자체가 어차피 위기의 연속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위기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까지 만화처럼 쉽게 생각하다가는 자칫 현실감을 상실할 소지가 있다. 김병후 원장은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상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공상은 공상으로 끝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경계했다.

 원작 만화여서일까. 이 드라마를 만화 같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물론 이 드라마는 트렌디 드라마를 연상케 할 만큼 감각적인 연출, 개성 있는 조연들의 활약 등 뛰어난 성공 요인을 지녔다. 그렇지만 <미스터Q>가 고단한 샐러리맨들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어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들 이야기’를 펼쳐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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