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 논의 새 지평 열다
  •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
  • 승인 1998.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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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국가 안보 논의는 전통적으로 현실주의 인식 체계에 지배되어 왔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세력 균형 결정론, 평화를 이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군사력 우선주의, 그리고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 군사력에 비해 항상 열세이기 때문에 군사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영구 열세론 등이 우리의 국가 안보 담론을 지배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함택영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국가 안보의 정치경제학>에서 예리한 분석 틀과 밀도 있는 경험적 탐구를 통해 기존 지배 인식 체계에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함교수는 남북한 군사 분쟁과 군비 경쟁의 성격을 주변 4대 강국의 역학 구조라는 외생적 변수보다는 국가와 시민 사회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라는 내생적 시각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군사 위협 과대 포장하면 북한의 도발 초래”
 함교수는 한국 군사력의 영구 열세론 역시 한갓 기만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70년대 초까지 북한이 군사력 우위를 유지해 왔지만 80년대 중반 이후는 한국 군사력을 배제한 한국군의 자체 군사력만으로도 대북 억지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하며, 주한미군의 지속적 유지와 그에 따른 과도한 대북 억지력은 불필요한 군비 경쟁을 가속시키고 남북한 신뢰 구축에 결정적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평시 작전 지휘권을 한국이 갖도록 하고, 주한미군의 점진적 철수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군사력의 ‘절대적 충분성’에 대한 집착이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방위비 증강을 위해 북한의 군사 위협과 군사력우위를 과대 포장하고 이를 국내 정치적 도구로 활용할 경우, 북한 지도부의 오판을 초래해 전쟁 가능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매우 설득력 있고 날카로운 성찰이라 여겨진다.

 함교수의 이번 저서는 정체와 답보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국가 안보 논의에 새로운 활력과 자극을 줄 수 있다. 특히 긍정적 현실주의와 포괄적 안보라는 대안적 분석 틀을 제시하면서 국가 안보·국력·군사력이라는 변수들을 그람시의 국가 이론에 접목한 것은 매우 독창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하겠다.

 경험적 시각에서 조망해 볼 때도 이번 함교수의 연구는 역대 남북한 군사력 비교 연구중 가장 충실하고 객관적이며 포괄적인 것이라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존 자료들과 교차 대비한 1차 자료 검증은 높이 살만하다.

 이 책은 정책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방비 증강의 새로운 준거로서 합리적 충분성 제시, 신뢰 구축 당위성에 대한 경험적 기반 구축, 민주주의와 군사력 증감 양상에 대한 인과 고리 규명, 경제 통합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 통일 방안 등은 참신한 정책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책이지만 문제점도 눈에 띈다. 우선 긍정적 현실주의와 포괄적 안보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책의 서두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기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또 군사(투자)비를 군사력을 측정하는 총량 지표로 사용하는 데 이의가 없으나 절대적 지표는 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군사력과 군비 지출을 오로지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만 연동한 것은 문제가 있다. 주한·주일 미군철수, 일본의 재무장 및 군사 대국화, 패권을 노린 중국의 ㄸ오름, 그리고 그에 따른 동북에서의 제한적 억기 구조 재현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분단 또는 통일 한국의 적정 군사력을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만 조율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부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함교수의 이번 저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역작이다. 한국의 국가 안보 논의가 표피적이고 당위론적이며 방책론적 담론에 그치는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함교수의 저서는 분석적·방법론적 그리고 경험적으로 국가 안보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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