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문 분리해 ‘신토 비리’막아라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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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 · 수 · 축협 개혁/세 기관 통합 등 강력한 구조 조정도 필요

문민 정부 초기 허신행 농수산부장관이 농수산부장관이 농업협동조합(농협)에서 금융 기능을 떼내려고 한 적이 있다. 농협의 기능이 농산물 유통 등 경제 사업과 공제 · 지도 사업으로 넓어지는 데다가, 전문성 면에서 금융기관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농협 외에 수협 · 축협 등 세 기관 모두 금융 기관화함으로써, 사실상 분리하기 힘든 농업 금융과 축산 금융이 이원화하는 문제도 있었다.

 당시 허장관은 세 기관에서 금융기능을 분리한 뒤 통합해 농어민을 위한 전문 금융기관으로 육성할 계획도 세웠다. 61년 설립 근거 법령을 통해 세 기관에 금융 기능을 부여한 당시의 치지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금융 부문 분리 번번이 실패한 까닭
 그러나 이 계획은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허장관이 당시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농 · 수 · 축협의 금융 부분 분리 문제는, 세 기관 자체의 통합 건과 함께 간헐적으로 제기 되어 왔다. 그럴 때마다 세 기관의 반응은 늘 똑같았다. 농어민 회원을 등에 업고 독자 생존론을 고수한 것이다. 최대로 양보한 것이 3개 중앙회는 그대로 두되 이들을 조정하는 제 4의 중앙회를 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파상적인 로비도 곁들여졌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김대통령은 세 기관 통폐합을 포함한 구조 조정 방안을 직접 언급한 적도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도 지난해 금융기관의 분리와 통합을 공언했다. 그러나 이 안건은 올해 기획예산위원회가 중점 추진할 과제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기획 예산위 한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거론하긴 했지만, 워낙 엄청난 사안이어서 (핵심 과제로) 선뜻 채택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올해를 공공 부문 구조 조정의 해로 설정한 상황에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을 유의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전면 수사, 그리고 관련 기관으로 감사를 확대하는 데 이르기까지 과거 전철을 되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는 얘기다.

 감사원이 지난해 9-10월에 실지 감사를 벌이고 지난 2월12일 농림부에 통보한 농협 감사 결과는, 금융부문(신용 업무)외에 다른 사업과 경영 관리 부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러나 농협이 돈놀이에 열중해 온 과정에서 부실과 비리 요인이 매우 크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농협이 당초 목적과 달리 돈놀이에 열중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지금은 신용 사업이 경제사업의 7배 규모에 이를 정도다. 수협과 축협의 신용 사업은 절대적 · 상대적 규모에서 농협에 턱없이 뒤진다. 이는 농협이 다른 기관과 통합하기를 거부해온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두 기관이 전문성을 중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 기관 모두 사실상의 금융기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 점은 세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신용 업무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세 기관의 중앙회는 모두 전화번호부에 금융기관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되었듯, 농업과는 별 관련이 없는 대기업에 대한 대출액만도 97년 말 기준으로 7천억원을 넘었다. 대기업으로부터 수신한 돈이 2천7백억원밖에 안되는데, 세 배에가까운 돈을 빌려 준셈이다. 여기에다가 대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지급 보증으로 최근 들어 부실 채권이 급격히 늘었다.

 대출금에 대해 은행보다 비싼 이자를 물게 한 것도 농어민에 대한 전문 금융기관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세 기관읠 평균 예대 금리차(여신 금리와 수신 금리 차이)는 은행에 비해 약2 높았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농협이 대출 금리를 내린 것도 이에 대한 농어민의 불만이 고조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 · 수 · 축협 생산성 형편없어
 세 기관은 사실상 금융기관 기능을 해 왔으면서도, 정작 금융기관에 대한 엄격한 감독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었다. 이들은 은행법에 적용되지 않고 기능에 따라 설립 근거법이나 여신전문금융업법 · 신용협동조합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외환 위기 때 부실 채권 정리 와중에서는 오히려 특수 은행으로서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감독의 사각 지대에 놓이면 비효율과 비리가 반드시 따르는 법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농림부 산하 협동조합발전기획단이 작성한 ‘협동조합 발전 방안’에 따르면, 세 기관의 1인당 생산성은 은행에 크게 뒤진다. 흔히 1인당 수신고로 표현되는 금융기관의 생산성에서 농협은 19억원, 수협은 12억원, 축협은 14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시중 은행 전체의 평균 생산성은 23억원이다.

 감사원은 이번 농협 실지 감사에서 부실 대출과 관련된 1백65명에 대해 징계와 문책을 요구했다. 검찰은 대출 비리와 관련해 모든 단위조합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남은 문제는 세 기관의 금융 부문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수술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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