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불길’ 사촌 집으로 번진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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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 축협도 부실 · 비효율 누적 … 검찰 수사 임박하자 ‘안절부절’

81년 7월 29일 농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된 이후 농협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감사원이 농협의 부실과 불법 경영 행태를 지적하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농협은 휴일에도 임직원 대다수가 출근해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내수 회장대행과 박해진 부회장을 비롯해 이사회 구성원 15명과 김용택 종합조정실장은 지난 2월25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이후 연휴에도 계속 비상회의를 가졌다.

 농협 직원들은 2월 27일까지 ‘감사원 감사 결과가 과장 ·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며 격앙되어 있었지만 비상 회의를 연 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농협은 외부로 나가는 모든 발표를 문화홍보실로 돌리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농협이 그만큼 직원들의 입 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원철희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힌 2월28일, 검찰은 농협중앙회를 내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넘겨 받는 대로 전면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농협 임직원 못지 않게 농협이 맞은 총체적인 위기를 불안하게 보는 기관들이 있다. 불길이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자 옆집들이 불똥이 튈까 봐 안절부절하고 있다. 농협의 사촌 격인 수협과 축협이 그들이다. 그동안 농협 못지 않게 농어민으로부터 원성을 샀던 이 기관들은 검찰의 수사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좌불안석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 수협과 축협 역시 농협과 비슷하게 지급 보증 한도를 비롯해 은행법이 규정한 감독을 지금까지 받지 않아 비슷한 부실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협과 축협을 감시 · 감독해야할 농림부나 해양수산부는 이 기관들의 신용 업무를 금융감독원 소관으로 여겼고 , 금융감독원은 수협과 축협이 은행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은행법이 적용되는 기관이 아니므로 ‘나 몰라라’했다. 농어민들조차 이 기관들이 당초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업무에 주력하고 있어 이미 관심 밖의 기관으로 치부한데다, 뚜렷한 감독 기관마저 마비되어 있었으니 부실은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은행감독원이 시중 은행들의 경영 행태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 · 감독했는데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제대로 유지한 은행이 손을 꼽을 정도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화재의 발화지점은 농협이지만 그불길은 수협 · 축협까지 휩쓸 태세이다. 자기 돈을 취급하는 세 기관이 부실해진 실태를 보는 농어민들은 분개하면서도 내심 즐기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기관들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부실 경영이 이만큼 밝혀졌기 때문에 대충 마무리하고 넘어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농어민의 기대이다. 곧이어 드러날 수협 · 축협에 대한 감사 또는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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