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흘러간 노래’ 유럽을 사로잡다
  • 허광 통신원 ()
  • 승인 199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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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내내 최고 인기 누려…영화<부에나 비스타…>가 일조

올 여름 독일에서 이색적인 일이 일어났다. 독일의 인기 가요 차트에서 쿠바 노래가 6월 말부터 인기를 모으더니, 여름 내내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독일에서 인기 있는 대중 가요는 대개 록 계통으로, 미국에서 수입된 노래가 태반이었다. 이에 반해 올 여름 유행하는 쿠바 노래는 재즈나 포트계열에 속한다.

 또 쿠바 현지에서 녹음한 이 노래의 주인공들도 색다르다. 그들은 상업 자본이나 매스컴이 길러낸 10-20대 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60-70대, 심지어 아흔 살인 넘은 인물도 있다. 이미 오래전에 음악 세계를 떠났던 이들은 쿠바에서도 잊힌 30-50년대 대중 음악을 세계에 알렸고, 유럽에서는 쿠바 붐을 일으키고 있다.

60-90대 쿠바 옛 음악인들 앨범 발표
 이같은 ‘이변’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여기에는 먼저 미국의 작곡가 라이 쿠더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세계적인 현악기 연주가로 알려진 그는, 작곡가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가면서도 언제나 세계음악의 뿌리를 찾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쿠더는 첫 연구대상으로 쿠바를 선택했다. 그는 96년에,30-50년대 쿠바 음악의 전성기에 활동한 인물들을 수소문해 찾았다.

 그렇게 해서 쿠바 최고의 음악가들로 알려진 인물들이 모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기타리스트 세군도. 그는 20대에 담배밭 노동자로, 때로는 이발사로 생계를 이으며 기타 연주를 배워 91세라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쿠바에서 40년대에 이름을 떨친 피아니스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인 곤살레스(80), 바리톤 이브라힘 페레르(80), ‘쿠바의 에디트 파아프’라 불리는 여가수 오마라(60)가 쿠더와 함께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시얼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을 조직했다. 이들이 첫 작품을 발표한 것은 그 후 1년 뒤인 97년. 밴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발표한 이 앨범에는 쿠바인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유럽에서 커다란 호응을 얻어 3백만장 넘게 팔렸고,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이같은 반응에 기운을 얻은 쿠더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독일 영화 감독 빔 벤더스에게 쿠바에서 거둔 성과를 전하고, 98년 3월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번에는 이브라힘 페레르의 독집 앨범을 만들 계획이었다. 쿠더로부터 ‘소시얼 클럽’의 성공담을 전해 들은 벤더스는, 소규모 촬영팀을 이끌고 하바로 가서 이들의 녹음 작업부터 카메라에 담았다. 그 결과물이 올해 6월 개봉된 음악기록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시얼 클럽>이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에는 아무런 줄거리가 없다. 단지 각자의 일상 생활과 하바나를 거닐며 나누는 대화, 그리고 해외 공연 실황을 두 대의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쿠바 뒷골목의 구석구석(동네 아낙네들과 꼬마들, 널려 있는 실업자들의 모습까지)을 아무런 여과없이 샅샅이 비추는 화면에 잔뜩 긴장하게 된다. 출연진을 소개하는 독백과 대화는 곧바로 연주와 무대 공연으로 장면을 바꾸어 지루함을 잊게 한다.

 연주와 무대 공연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98년 4월과 7월 암스테르담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있었던 공연이다. 이때는 일생 동안 한 발자국도 쿠바를 떠난 적이 없는, 일상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쿠바 노인들이 국제적인 음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공연장을 빽빽하게 메운 관중의 환호에 파묻혔다. 소시얼 클럽의 해외 공연은 올해 유럽 순회 일정에서도 모두 매진되는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모든 게 달라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라고 토로했다.

 쿠바 음악이 어떻게 유럽인읜 가슴을 사로잡게 된 것일까? 쿠더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쿠바의 음악을 재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쿠바의 음악은 박물관에 들여놓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고무한다. 나는 지금껏 이런 자각을 하기 위해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 해도 소시얼 클럽이 이렇게 갑자기 유럽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벤더스는 영화 시장이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데, 주로 미국에서 대량 생산되는 액션물이나 환상물에 대한 공급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자 유럽 소비자들이 싫증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기말을 앞두고 현실을 다루는 의미 있는 영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이 커지고 있다.

‘소시얼 클럽’ 유럽 공연 매진
 그렇다면 기록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시얼 클럽>은 어떤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1시간40분짜리 이 영화에서 쿠바의 역사 · 사회 · 정치 문제를 직접 다룬 독백이나 대화는 찾을 수 없다. 미국을 처음 방문한 소시얼 클럽 회원들이 미국사회에 ‘경탄’하는 모습을 보면, 이 영화에 사회적인 비판을 담은 발언은 설 자리가 없다는 의심마저 든다. 벤더스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어쩌면 그러한 무색(無色)의 대화 뒤에 숨어 있는 쿠바의 불안한 미래가 아닐까?

 벤더스의 현지 관찰에 따르면, 하바나에서는 하루에 적어도 30여채씩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이것은 쇠락한느 쿠바 경제에 더 이상 기대를 걸기 어려운 징표라는 것이다. 쿠바는 밖으로는 과거에 도움을 주던 동맹국들이 사라졌고, 안으로는 경제가 붕괴 과정에 있어 희망이 없는 땅이 되었다. 이러하 쿠바의 위기를 조성한 1차적인 책임은 미국의 봉쇄 정책에 있다고 한다. 벤더스는이같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쿠바인들이 낙관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영화 음악의 밝은 정취는 쿠바인들이 낙관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영화 음악의 밝은 정취는 쿠바인들의 이 같은 굳센 생활력을 반영한 것 같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홀의 절반을 채운 망명 쿠바인들은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해 해외 이주를 선택한 이들이 왜 눈물을 흘린 것일까?

 그 뒤 영화는 망명 쿠바인들이 카네기홀 한복판에서 쿠바 국기를 휘날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벤더스는 이 장면으로 최소한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 조처가 상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4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쿠바 봉쇄 조처를 해제하라는 목소리는 이제 미국 의회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유럽에서 쿠바붐을 일으키고, 해외 쿠바인들의 심정을 울린 소시얼 클럽이 미국의 경제 봉쇄까지 허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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