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맡고도 고배 마셨으니…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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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규 국회 부의장, 민생법안 강행 처리 총대 메고도 의장 후보 못돼

 
“고려대 100년 한이 풀렸다.” 4선 임채정 의원이 열린우리당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고려대학교 교우회 한재호 국장의 감회다. 대표적인 명문 사학으로 꼽히지만 그동안 고대 출신이 입법부(국회의장) 행정부(대통령) 사법부(대법원장) 수장을 지금까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의원 선출은 열린우리당에서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당초 임의원의 고려대 1년 후배인 김덕규 부의장이 더 유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앞서 김부의장은 그동안 활발하게 움직였다. 각종 행사에 정동영 의장과 함께 참석해 당내 최다선(5선)인 자신이 선출되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교황 선출 방식처럼 특정 후보를 두지 않고 비밀리에 투표를 진행하는 ‘콘클라베’ 방식으로 치러진 투표 결과는 71대 69였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둘의 표는 더 좁혀지지 않을 만큼 좁았다”라고 말했다. 양자 구도였으니 사실상 ‘한 끝’ 차이였기 때문이다. 만약 임의원에게 간 표 중 한 표만 김부의장에게 와서 동점이 되면 다선 우선 원칙에 따라 김부의장이 ‘간택’되는 것이다.   

임채정 의원에 71대 69로 석패

승부의 분수령은 5월2일 있었던 부동산법 등 6개 법안의 강행처리에서였다. 김부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봉쇄된 김원기 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 받아 강행처리를 주도했다. 평소 ‘원만하지만 강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김부의장으로서는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회심의 반전 카드였다.  

그러나 총대를 멘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법안 강행 처리 때문에 여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이를 주도한 김부의장이 의장 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이 반발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오히려 임의원 쪽으로 전략적 투표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부의장과 임의원의 대결이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이유는 열린우리당 대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김부의장은 정의장과, 임의원은 김최고위원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 진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표심을 갈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정동영계의 한 관계자는 김근태계 표가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임채정 의원에게 뭉치표가 갔다. 김근태계, 참여정치연구회, 신진보연대에 속한 의원들의 표가 결집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생성된 반정동영파의 ‘이삭줍기’에 나선 김근태계의 조직력이 발휘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임채정 의원측은 이런 정치적 해석을 일축했다. 이번에 후보에 선출된 것은 그동안 당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자임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4선인 임채정 의원과 이용희 의원이 여당 쪽 국회의장·부의장 후보로 선출되자 한나라당도 의장단이 4선으로 ‘하향 평준화’ 된 탓이다. 애초 한나라당은 자기 몫 부의장 후보를 5선인 이상득 의원으로 교통정리했는데 4선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한 4선 의원 보좌관은 “이상득 의원의 동생인 이명박 시장이 대권 후보로 나서는 상황에서 이의원까지 부의장 자리를 꿰차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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