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전제된 정부 제3청사 설계 공모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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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담은 ‘작품’보다 행정편의 위주 凡作뽑아

 정부가 지난 해 11월30일 당선작 1점(삼우종합건축, 김창수·전동훈)과 우수작 2점(건원국제, 한현호·유걸/엄·이건축, 엄덕문)을 선정, 발표하면서 매듭지어진 정부 제3청사 현상설곅공모(건축계에서 흔히 ‘꼼페’ 혹은 설계경기라고 한다)가 뒤늦게 ‘2차폭발’을 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예술·건축·환경 전문월간지 《공간》3월호가 정부 제3청사 설계경기의 당선작이 아닌 우수작 투시도를 표지(아래 사진)에 싣고, 정부 제3청사 설계공모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전방위에서 조명하는 대특집 ‘한국건축의 단면’을 마련한 것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고자 총예산 1천1백25억원(설계비 25억원)을 책정해 추진하는 정부 제3청사는 대전직할시 서구 둔산 신시가지의 15만9천1백22평 대지에 연건평 약 5만5천평 규모로 세워질 예정으로, 조달청을 비롯한 10개 청과 문화재관리국 산하 11개 기관이 들어가게 된다. “근래에 보기 드문 대형 프로젝트”인 정부 제3청사 설계경기에는 국내 1백72개 설계사무소가 응모해 40개 작품이 최종 출품되었다.

설계경기, 왜 건축계의 잔치가 못되는가
 모두 78면에 달하는 이 특집은 좌담과 논문들, 외국사례 그리고 출품작 39평을 지상전시하면서 한국건축의 고질적 환부에 메스를 들이댔다. 그간 정부가 주관한 공공건축물 설계경기는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았다. 한국 건축문화가 처한 전반적인 환경이 열악하지만, 특히 공공건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해서, 설계경기가 열릴 때마다 생겨난 ‘화산재’는 건축계 전반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 《공간》 3월호에 따르면, 이 화산 폭발의 요인들은 당국은 물론 심사위원(서울대 김진균 교수 외 8인)과 건축계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범재 김인철 김영섭 이종칠 씨가 함께한 좌담 ‘정부 제3청사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본 한국의 건축적 상황과 논리’에서 김영섭씨(건축문화 소장)는 “공공건축은 한 나라의 문화 척도이며 이벤트”라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 공공건축물의 보편성과 공익성을 강조하는 이종칠씨(창조건축 전무)는 “공공건축물은 그 시대적 특성과 가치관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건축작품으로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맡는다”고 말한다.

 동시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공공건축물이 갖는 의의가 위와 같이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설계경기의 참목적은 새로운 것을 찾는 데 있다”는 김인철씨(인제건축 소장)는 “그러나 현실은 보편타당성의 경향으로만 기울어 있다. 결국 형식을 위한 형식으로 설계경기가 진행된다”고 안타까워 한다. 건축문화 진보에 이바지할 만한 뛰어난 작품은 배제된다는 것이다.

 설계경기가 건축계의 축제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범재씨(간·삼건축 파트너)는 “설계결기의 추진방식이 잔치적 성격을 반감시킨다”고 진단한다. 이 좌담은 발주자인 당국과 응모자, 그리고 심사자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짚고 있다. △건축가를 무시하고 건축데 대한 무지한 당국의 행정편의주의적 운영과 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심사위원은 사전에 알려져야 하며, 심사과정도 건축계와 국민에게 공개돼야 한다. △건축법상 설계사무소를 할 수 없는 대학교수들이 심사를 맡아 현실성이 없으며, △ 작품성보다 사업성을 우선하는 건축가들의 ‘노예근성’도 적지 않은 독소라고 좌담 참석자들은 비판한다.

당선전략 “사업성·무난한 설계·로비”
 건축평론가 함성호씨가 본지 125호(3월19일자)에서 비판했듯이 관 주도 공공건축물이 한국 현대건축에 끼친 영향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최관영씨(일성종합건축 대표)는 《공간》지 특집에서, 경복궁 내 민속박물관·독립기념관·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상 설계가 공감과 설득에는 미치지 못한 채 일부 사고의 혼란만을 가중시켰다”고 쓰고 있다.

 공공건축물 현상설계 파문은 끊이지 않는 저 ‘로비설’ 때문에 증폭된다. 정부 제3청사 설계공모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제3청사의 경우 설계비가 25억원으로 책정됐는데 이 가운데 1억~2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쓰는 것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한 건축평론가는 “로비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작품도 당선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말한다. 정기용씨(기용건축 소장)는 이번 특집에서 “우리 건축인 모두가 이 증상(로비)의 감염자”이며 “건축계가 결국은 한국사회 병리학 내에 존재함”을 확인하고 있다.

 《공간》 편집장이며 건축평론가인 전진삼씨는 이번 기획에서, 정부 제3청사 설계공모에 참가했던 40개팀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가운데 13개팀으로부터 회답을 받았는데, 그 결과 이번 설계공모에 참여한 목적을 “구태한 관료의식과 기념성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새로운 관건물을 창조하기 위하여”라고 밝힌 팀이 45%에 이르는 반면 “프로젝트 자체의 매력 때문에” “당선을 위해서”가 각각 10%를 차지하고 있어 참여 의도는 비교적 ‘순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선을 위한 디자인 전략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당선을 전제로 할 때는 디자인 자체가 갖는 의미는 없고, 구태의연한 방식의 수용이 적합할 것이며, 가급적 새로운 타입보다는 무난한 타입이 적당할 것”이란 대답이 30%를, “로비를 잘해야 하며 심사위원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가 15%를 차지, 한국 건축계의 우울한 투시도를 극명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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