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시대 이후 노리는 4인의‘도전과 야망’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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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차세대 주자 이인제 · 이종찬 · 노무현 · 김근태,‘4인 4색’행보 분주…김대통령, 총선 승리 위해‘무엄한 언행’용인

 “여권내 차기 경쟁이 벌써 시작된 느낌이다.”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부쩍 분주해진 차세대 주자들의 행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권 또는 3김 이후의 지역 맹주를 노리는 이들의 대부분 50대이고 한결같이 당내 민주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DJ와 조금씩 거리를 달리하면서, 당내 민주화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처방을 제시한다. 이른바‘차세대 4인’으로 불리는 이인제 · 이종찬 · 노무현 · 김근태 의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튀는’인물은 역시 이인제 당무위원.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3김 이후’의 승부수를 띄웠던 그는 한동안 정치 방학기를 보냈지만, 언론이‘후3김 구도’를 거론하자마자 맨 먼저 독자 행보를 시작했다.

  그의 독립 선언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다가, 마침내‘총재가 왕제적 권한을 행사하는 오너 정당 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발언과 DJ 2선 퇴진론으로까지 이어져다. 기업 총수가 자기 지분을 초월하는 황제적 관한을 행사하는 관행을 타파하듯이 총재가 공천권을 몽땅 틀어쥐는 정당 구조 역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이위원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이 정가의 정당 민주화 논쟁에 불을 붙이는 인화제 노릇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인제“박찬종의 전철 밟지 않겠다”
  그는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았지만, 주변에는 앞으로 정치 지형과 여권내 역학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든 반드시 여권 주자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하면서, 확고한 자파 세력과 지역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이위원 진영의 판단이다. 비록 지난 대선에서 5백만표를 얻은 여권내 선두 주자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세 확장에 실패했던 박찬종 전 의원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위기 의식에서다.

  이위원이 알파 영입에 앞서 자민련과 합당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지역구를 경기도 안양에서 대전으로 옮기려는 배경도 다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 9월16일 대전 방문에 대해 대전대학 정외과 특강에 초청받아서 간 것일 뿐이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서는 출마 선언을 앞둔 분위기 조성용 행사라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충청 지역과 자민련 의원들 사이에서는 JP에 대한 기대를 접는 대신 이위원을‘대안’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동 여당의 합당이 이루어진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이위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공동 여당의 합당에는‘이인제 변수’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이위원보다 먼저 구여권 대권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이종찬 부총재는 국정원장에서 물러난 뒤 이위원처럼 한동안 정치 방학기를 가졌다. 여론을 탐색하려고 지역을 돌아다닌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역 순회를 마치자마자 이위원과 경쟁하듯 가파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첫 발언은, 경제 개혁이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이른바 개혁 속도 조절론, 그는 이발언이 여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김대통령의 유감 표명으로까지 이어지자 당 대변인을 통해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결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뒤 잇단 강연회에서 개혁은 당위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개혁 속도 조절론에 이어 청와대 이상비대론을 제기했다. 정권 출범 때 청와대 기능과 조직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갈수록 비대해지고 힘이 커지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국정원장 시절 이부총재와 김중권 비서실장 간에는 정보 보고 라인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이부총재의 발언을 그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그 배경이야 어디에 있든 청와대로서는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이부총재는 이위원이 제기한 DJ 2선 최진론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정당의 오너 체제도 청산해야 하지만 책임지는 정당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면, 그러려면 대통령이 직접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활발한 강연 정치를 통해‘개혁적 보수주의자’이미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두 이씨가 DJ와 거리감을 두는 아슬아슬한 행보를 통해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다면, 노무현 · 김근태 부총재는 DJ의 정치 구도를 적극 뒷받침하면서 개혁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경우다.

  일찌감치 부산 출마를 선언한 뒤 부산에서 상주해온 노부총재는 지난 9월15일 부산 강서 을 지구 당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그의 부산 지역구 출마는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국민회의가 주도하는 신당이 영남권에서 의석을 따내야만 지역 감정 극복과 전국 정당화의 기틀을 다질 수 있다는 것이 DJ의 생각이다.

  그러나 현행 소선구제에서 국민회의 소속 후보가 금배지를 다는 것은‘택도 없는 꿈’이다. 설령 중선거구제로 변경된다고 해도‘무사 귀환’을 장담하기 힘들다. 한 · 일 쌍끌이 협상에서부터 삼성 차 문제, 그리고 최근의 삼부 · 청구 파이낸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부산 민심을 거칠게 만든 요인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YS가 민산 재건을 총선 이후로 유보한 배경도‘서로 갈라지지 말고 강력한 단일 야당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97년 대선을 망친 사람이 내년 총선도 망치려 하느냐’라는 PK 지역의 비판 여론과 이를 의식한 현역 의원들의 참가 거부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지역의 반(反)DJ, 반(反)국민회의 정서가 강고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노부총재는‘지역 감정을 돌파하는 일이라면 가미가제가 되어도 할 수 없다’면서 부산에서 출마할 뜻을 굽히지 않는다. 비록 위험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그로서는‘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게임이다. 난공불락의 PK 아성을 뚫는 순간 몸을 던져서 지역 감정을 돌파한 정치인이라는 명분과, YS라는 맹주가 자리를 비운 PK의 차기 주자로 떠오르는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다.

  김근태 부총재 역시 DJ의 정치 구상을 뒷받침하면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시 개혁 세력의 대표 주자인 그는 당내 민주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DJ 2선 퇴진 등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라면서 방어 논리를 폈다. 그는 신당 추진 과정에서 신진 인사 영입을 둘러싸고 개혁이냐 전문가 위주의 안정이냐 하는 노선 갈등이 제기되자‘지속적 개혁을 통한 고도의 안정’이라는 통합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국민정치연구회가 신당 핵심 세력으로 합류하고 있어서, 그의 당내 세력 기반은 훨씬 탄탄해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김부총재는 재야의 대부라는 한정된 이미지를 넘어서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김종필 총리와 국민회의 재야 출신 모임인‘열린 정치 포럼’의 만찬을 주선했다. 보수와 혁신의 만남이라고 할 만한 이 모임은, JP가 자리에서 양당 합당 가능성을 처음 내비치면서 정가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4인의 야심과 DJ의 총선 전략 맞아떨어져
  이같은 여권 차세대 주자들의 발언 경쟁과 독자 행보는 내년 총선과 3김 이후를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서는 현정권의 권력 누수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를 두고 정반대 해석도 나온다. 즉 이들 차세대 주자들의 잇단 발언과 활발한 행보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독선적인 DJ라는 비판을 씻어내고 여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DJ 총선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들 차세대 주자들이 DJ와 독대한 뒤에 자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 청와대가 이들의 독자 행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들이다.

  3김 이후의 정치 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차기 주자들의 야심과, 이들의 스타성을 총선에 십분 활용하려는 DJ의 총선 전략, 최근 차기 주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양쪽의 계산이 서로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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