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마약 스캔들 두려워하랴
  • 워싱턴 · 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199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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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용 사실 부인하다“한때 실수”시인… 지지율 1위 불변에“나 싫으면 다른 사람 뽑아라”

오는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조지 부시 2세 텍사스 주지사(53)가 젊은 시절 한때 마약을 복용한 전력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부시는 얼마 전까지 자신의 마약 복용설을 한사코 부인하다가 언론에 들통이 났다. 정직성을 지도자의 덕성 가운데 제1 품성으로 믿어온 미국인들이 실망한 것은 물론이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부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마약 복용 사실을 시인했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부시에 대한 언론의‘뒷조사’가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 8월15일 아이오와 주 공화당 대선 후보 모의 선거에서 그가 1위를 차지한 뒤부터였다. 부시는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을 거뜬히 누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언론에 의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모의 선거를 통해 그가 다시 한 번 명실상부한 공화당 대선 후보 1순위임이 확인되자 미국 언론이 앞다투어 대통령 후보 자질 검증에 나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부시에 대한 미국 언로의‘벗기기’작업을 공교롭게도 민주당 소속 톰 대실 상원 원내총무가 점화했다는 사실이다. 대실 총무는 지난 8월4일 중견 언론인과 조찬 모임을 가졌는데, 그 날 주된 화제는 언론의 대선 후보 사생활 캐기였다. 이 자리에서 대실 총무는 언론이 클린턴 대통령이나 고어 부통령, 나아가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의 비리 캐기에 열중한 것에 비하면 부시는 너무 살살 다루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과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 모두 70년대에 마리화나를 복용한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조찬 자리에서 일부 기자가 부시의 마약 복용 여부를 캐는 것이 정당하냐고 질문하자 대실 총무는 기다렸다는 듯‘그렇다’고 대답했다. 최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조찬 모임에 참석했던 기자 가운데 최소한 3~4명은 대실 총무가 은근히 언론이 부시의 마약 복용 전력 문제를 다루기를 기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막상 자신과 언론의 만남이 부시 후보 뒷조사를 부추긴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대실 총무는 부랴부랴 이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부시는 즉각‘쓰레기 같은 입을 이용하는 정치는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반격에 나섰다. 그가 반격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뉴욕 데일리 뉴스>가 부시에게 포문을 열었다. 부시를 포함한 대선 후보 12명에게 마약 복용 여부를 묻는 공개 질문서를 보낸 것이다. 그 결과 부시만 빼고 나머지 후보 11명 모두‘노’라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뭔가 구린 것이 있다고 판단한 미국 언론이 부시를 가만둘 리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8월11일‘마약 복용, 선거 쟁점화할 듯’이라는 제목으로 부시 주지사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냈다. 문제는 언론이 무자비한 추적을 시작했는데도 마약 복용 전력에 대해 떳떳치 못하게 대응하려던 부시의 태도였다. 그는 94년 텍사는 주지사에 출마할 때도 언론으로부터 비슷한 추적을 받자‘무분별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부인했다. 이번에도 그는“어린 시절 한때 실수한 것을 가지고 뭘 그러는가? 나의 대선 출마와 별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이런 식의 모호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 지난 2월 뉴햄프셔 주의 한 방송국에 들렀을 때도 그랬고, 지난 7월 <워싱턴 포스트>와 회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이처럼 마약 복용 여부에 관해 말꼬리를 흐리는 동안에도 수많은 기자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를 뒷조사했다는 점이다.

부시 주지사, 마약 퇴지 운동 솔선수범
  기자들의 집요한 추적이 계속될수록 부시는 정공법을 택하기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아이오와 주의 주 모의 선거를 계기로 언론의 뒷조사가 본격화하자 부시는 누군가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또 뒷조사를 통한 상대 후보 흠집 내기야말로 미국 정치의 고전적 수법이기에 자신은 이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독 자신의 마약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그런데 이처럼 마약 사용 여부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도 결국은 언론의 끈질긴 추적에 두손을 들었다. 최근 들어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답변 방식을 조금식 바꾸어 오다가 마침내 마약을 복용한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마약 복용 여부에 관해 침묵이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최근 <댈러스 모닝 뉴스>와 가진 회견에서‘과거 25년 동안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없다’고 처음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25년 이전에는‘과거’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마약을 복용했느냐는 질문에“대통령 후보 전력 검증 기간인 최근 7년은 물론, 지난 15년 동안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부시 자신은 모든 연방 공무원에 대해 연방수사국(FBI)이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마약양성 반응 검사에 당당히 응해 이를 통과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방수사국이 정한 마약 복용 여부 적용 기간은 7년.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7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가도 자신의‘과거’는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까지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친 조지 부시 1세는 89~93년에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까지 자신은 깨끗하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런 부적절한 석명은 오히려 언론의 추적을 부채질했다.

 ‘몇년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계속하던 부시는 오하이오 주에서 지금까지 받은 질문 가운데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성인이 된 18세 이후 단 한 차례도 마약을 복용한 적이 없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그만하면 되었지 않은가. 몇해 전 일어났던 특정인의 과거를 그만큼 캤으면 족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댈러스 모닝>와의 회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시인했다. 즉 20대 후반이던 74년에‘실수’를 저질렀으며, 그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의 실수가‘마약 복용’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폭음 습관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한때 알코올 환자라고 인식될 정도로 폭음 습관을 갖고 있었지만 부인의 정성 어린 내조와 스스로 노력한 끝에 40회 생일을 기점으로 술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한때 마약을 복용한 것이나 과음벽이 있었던 것을 빼놓고는 부인 로라 여사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또 가정에서는 열일곱 살 된 쌍둥이 딸에게 더없이 자상한 아빠다. 그뿐인가. 그는 텍사스 주지사로 있는 동안 역대 지사 중 누구보다 마약 퇴치를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그는 96년 10대들의 마약 복용이 늘어난다는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지시했으며, 마침내 97년 1g 이하의 마약이라도 소지하거나 이를 복용하는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95년 학교에서 30m 이내에서 마약을 소지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말하자면 주지사로서 솔선수범해 마약 퇴치 운동에 앞장선 것이다.

  최근 집계된 통계에 따르면, 97년 텍사스 주에서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2만6천여 명이었으며 지난해는 2만8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또 현재 마약 소지와 복용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1만3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 젊어 한때 마약을 복용한 사실만을 가지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부시를 무작정 흠집 내는 것이 공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미국 언론의 자질 검증은 무자비하기로 유명하다. 과거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성 추문 사건이 보도되어 도중 하차한 것이나, 92년 민주당 대선 지명전에 나섰던 빌 클린턴 후보가 간통과 징집 기피 문제로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은 것은 유명하다. 이에 비하면 현재 마약 복용 여부에 대한 언론의 집중 포화는 공격 수위 면에서 하트나 클린턴 후보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약하다는 평이다.

  현재 대다수 국민은 마약 복용 전력이 있는 부시에게 대체로 호의적이다. 최근 <타임>과 CNN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마약 복용 전력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고작 11%였다. 또 언론이 계속해서 그의 마약 복용 여부를 캐는 것에 대해서도 58%가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부시를 포함한 그 어떤 대통령 후보라도 마약 복용 전력과 관련한 질문에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과반수가 훨씬 넘은 60%에 달했다.

부시가 마약 복용 시인한 속사정
  부시 후보측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계속 자신의 마약 복용 혐의 여부에 대해 얼버무렸다가는 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할 것은 하루빨리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자는 것이 부시 후보 진영의 전략이다. 얼마 전까지도 자신의 마약 복용설을 터무니 없고 우스꽝스럽다고 치부했던 그로서는 180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부시 특유의 자신감도 작용한다. 그는 최근“미국 국민이 나의 해명을 듣고도 불신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나말고 다른 후보를 찍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2000년 11월 첫 화요일에 치러질 대선과 관련해 상당수 공화당 의원이나 주지사는 부시 2세의 대세론에 편승해 그를 지지할 태세다. 물론 선거일까지는 1년여가 남은 만큼 부시는 앞으로도 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자질 검증’을 받을 거이다. 현재 공화당에서 그를 제칠 수 있는 후보는 사실상 전무하다. 여성인 엘리자베스 돌 후보는 부시에게 더블 스코어 차로 뒤진 형편인데다 민주당측 유력 후보인 고어 부통령에 비해서도 열세이다. 때문에 공화당 전체가 부시의 마약 복용설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 대선 가도에서 악재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워싱턴 · 卞昌燮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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