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신당은 과도 정당?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199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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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과 합당하면 ‘헤쳐 모여’ 가능성 … 안개 속 추진에 내부 불만 팽배

여권 신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신당창당추진위원회는 예정대로 11월 25일 창당준비위를 띄운다. 잠정적으로 정한 신당의 이름은 참여민주당(약칭 민주당)이다. 신당의 지도 체제는 2인 공동위원장과 6인 부위원장 체제가 유력하며, 2인 공동위원장에는 이만섭 - 장영신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을 알려졌다. 창당 예정일은 내년 1월 20일이다.

이 · 장 체제가 일단은 유지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는 신당의 대표를 누가 맡을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여권 내의 역학 구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당 초기에 노무현 · 김근태 · 이인제 씨가 신당 발기인에 포함될 듯하다가 무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도 체제 문제가 공론화할 움직임을 봉자 김대중 대통령은 신당 간부진과 직보 채널을 만들고, 현재 여권과 거리를 두도록 함으로써 이 같은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지역 안배 케이스인 장영철 의원과 참모형 핵심 실세인 정균환 의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초 · 재선급 의원들을 추진위원으로 배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현재 신당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수성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인제 국민회의 당무위원,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 노무현 · 김근태 부총재. 그 가운데 이인제 당무위원은 최근 신당 준비위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수성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아직 합류할 생각이 없다로 밝혔으나, 합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도 체제 문제가 당장 수면에 떠오르는 일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후계 체제 문제가 부각되면 DJ의 레임 덕이 앞당겨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당내에서도 금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자민련과 합당 문제가 불거질 경우 지도 체제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딜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정균환 조직위원장 “신당 목적은 정치 개혁”
신당은 애초 DJ의 정국 돌파 전략 중 하나로 기획되어Te. 옷 로비 사건, 도 · 감청 시비, 언론 문건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DJ 정권은 소수 정권의 비애를 끊임없이 맛보았다. 여권 내에는 총선이후 레임 덕은 물론 자칫하면 정권 자체에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여기에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만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현재의 신당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아웃소싱’이라고 신당 창당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DJ는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바깥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다시 재기에 성공하곤 했다. 아웃소싱은 87년의 평민련 입당처럼 단순 수혈로 끝나기도 했고, 91년 신민주연합과의 합당을 통한 신민당 창당이나, 꼬마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한 민주당 창당처럼 신당 창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DJ당과 다른 정치 세력이 통합해 신장개업’하는 틀 안에서 진행되었다. DJ는 이런 단계적인 순서를 밟으면서 정치적 위기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당의 외연(外延)을 확장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시사저널> 제510호 참조).

그렇지만 지금 진행 중인 신당은 이전에 DJ가 위기 국면에서 신당 카드를 던진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야당 시절 아웃소싱의 초점이 인물 수혈을 통한 외연 확장이었다면, 지금의 신당 창당은 인물 수혈뿐만 아니라 전체 정치판 재편과도 맞물려 있다. 정균환 조직위원장은 이에 대해 “신당의 목적은 정치 개혁이고, 정치 개혁의 핵심은 인물 개혁과 제도 개혁이다”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이 제도 개선 · 선거구제 개선이라는 DJ의 3대 개혁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신당이 ‘새 천년’ ‘21세기’ 같은 단어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신당의 인적 구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추진위원 93명 중 72명이 외부 영입 인사이다. 여당인 국민회의에서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는 이만섭 대행을 비롯해 19명뿐이다. 준비위원으로 선정된 3천 2백여명 중 65%를 신진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장영신 공동위원장은 “여성 비례 대표 30% 할당제를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준비위원들의 나이도 20~40대가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80%가 50대 이항다. 국민회의 의원들도 모두 개별 입당 형식으로 받아들일 계획이다.

신당 창당 작업이 기존 정당 창당과 다르게 진행되다 보니 불거지는 문제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회의 현역 의원들의 소외감과 새로 정치권에 편입된 인사들이 가는 불만이다. 한 의원은 기자에게 “신당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원회관 안에서도 신당 추진위원에 포함된 의원들과, 그렇지 않은 의원이 만나면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경우가  목격되기도 한다. 한 추진위원은 “솔직히 처신하기 어렵다”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이러한 모습은 국민회의의 해체 작업이 시작되고 의원들의 개별 입당이 러시를 이루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법을 개정하면 의석이 줄어들 판인데, 신진 인사들과 공청 경합까지 벌여야 할 현역 의원들로서는 신당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신당 지도부나 지역구 공천도 경선으로 하자’는 김상현 의원의 주장이 의외로 호소력을 얻고 있다.

추진 상황, 91년 신민당 창당 때와 비슷
신당에 참여한 신진 인사들 중에서도 불만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외부 인사 영입 작업에 추진위원들의 견해가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야 출신 한 추진위원은 “어떻게 ○○○ 같은 인물이 영입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겟다”라면서, 개혁성보다 전문성과 경쟁력이 영입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했다. 추진위원들이 영입 기준이 뭔지, 누가 영입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신당도 기존 정당과 똑같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재 외부 인사 영입 창구는 정균환 조직위원장으로 일원화해 있으며, 정위원장은 김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영입자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내부 마찰설은 2차 영입 인사 면면이 발표된 직후 불거져 나왔다. 1차 영입자 25명은 신당 이미지에 맞게 각계각층에서 고루 선정되었다. 따라서 개혁 성향 인사들이 다수 포함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 나갈 후보를 영입하자는 2차 영입에서는 개혁 성향 인사들이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것이 일부 추진위원들의 항변이다. 재야 출신 한 추진위원은 “2차 영입자 30명에서 개혁 성향 인물들은 거의 배제되었다. 회의에 들어가면 우리는 완전히 들러리가 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영입 기준은 신당의 좌표 변경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개혁 이미지보다 경쟁력 있는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여권 핵심부의 판단이 인물 영입 기준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당 창당을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났으나 여전히 모든 것이 안개에 싸여 있다는 점이 내부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불만이다. 누가 대표를 맡을지, 신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자민련과의 합당은 언제 될지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이 같은 현상은 신당 창당이 여권의 전체적인 재편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민련과 합당이 된다면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신당의 틀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느냐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신당의 추진 상황은 91년 평민당이 신민주연합과 통합하면서 신민당을 창당할 때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신민당을 창당한 지 불과 몇 달 뒤 이기택 총재가 이끌던 ‘꼬마 민주당’과 다시 합당 작업을 벌여 민주당으로 재편되었듯이, 신당도 자민련과 합당되면 사라질 과도기적 정당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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