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계 짝짓기 붐 '메가 뱅크' 탄생 임박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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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權業ㆍ富士ㆍ日本興業 은행 통합하면 세계 제1 규모

일본 금융계가 '대통합 시대'를 맞았다.
  지난 8월 다이이치간교(第一權業)ㆍ후지(富士)ㆍ닛폰코교(日本興業) 은행이 2000년 9월 지주 회사 설립을 통한 통합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 초순에는 도카이(東海)ㆍ아사히(朝日) 은행이 2000년 가을께 통합을 결정했다. 또 10월 중순에는 스미토모(住友)ㆍ사쿠라 은행이 2002년 4월까지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일본 금융계의 서열을 총자산 규모로 보면, 1위는 총자산 약 69조8천억 엔인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 은행이다. 2위는 약 52조5천억 엑인 다이이치간교 은행, 3위는 약 51조5천억 엑인 미토모 은행. 다음 산와(三和ㆍ약 47조6천억 엔)ㆍ사쿠라(약 47조2천억 엔)ㆍ후지(약 46조4천억 엑)ㆍ닛폰코교(약 42조1천억 엔)ㆍ도카이(약 30조3천억 엔)ㆍ아사히(약 28조6천억 엔)ㆍ다이와(大和ㆍ약 15조5천억 엔) 은행이 그 뒤를 쫓고 있다.

  그러나 은행 체질 강화와 국제화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지난 8월 제일 먼저 랭킹 3위 다이이치간교ㆍ6위 후지ㆍ7위 닛폰코교 은행이 오는 2000년 9월까지 지주 회사 DFI를 설립해 실질 통합하기로 결정하자, 다른 은행들도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체질을 강화하고 국제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은행에 뒤지지 않을 튼튼한 몸집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자극된 랭킹 8위 도카이 은행과 9위 아사히 은행이 오는 2000년 가을 지주 회사를 설립해 통합하기로 결정했고, 랭킹 3위인 스미토모 은행과 5위인 사쿠라 은행이 2000년 9월 합병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내년 9월까지 통합하는 다이이치간교ㆍ후지ㆍ닛폰코교 은행의 총자산은 약 1백41조 엔으로 뛰어올라, 일본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계에서도 총자산 규모가 가장 큰 세계 제1 의 '메가 뱅크'(거대 은행)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 2002년 4월 합병하는 스미토모ㆍ사쿠라 은행도 총자산 규모에서 세계 제2위(약 99조 엔)로 떠오를 전망이다.

자산 규모 1위 도쿄미쓰비시, 3위로 처질 듯
  일본 금융계의 이같은 대통합에 따라 총자산 규모로 따져 세계 10대 은행에서 1ㆍ2위는 물론 7위(도쿄미쓰비시 은행)ㆍ10위(도카이ㆍ사쿠라 은행 연합)를 일본 은행들이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참고로 세계 랭킹 3위는 독일의 도이체 방크, 4위는 스위스의 UBS그룹, 5위는 미국의 시티 그룹이다.

  일본 은행들의 대통합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미토모 은행과 합병을 결정한 사쿠라 은행은, 실은 랭킹 4위인 산와 은행과 합병을 전제로 진작부터 맞선을 보아 왔다. 산와 은행은 스미토모 은행과 경쟁 관계였고, 규모를 전국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수도권 지역과 미쓰이(三井) 그룹을 중심으로 대기업에 강한 사쿠라 은행과 합병하는 것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은행의 경영자들이 합병 조건에 의견차를 보이고, 상대방 은행에 대해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교섭을 질질 끄는 사이에 점차 합병 의욕이 쇠잔했다. 그러는 사이에 '물과 기름'격으로 알려졌던 사쿠라 은행과 스미토모 은행이 전격적으로 약혼 선언을 해 버린 것이다.

  사쿠라 은행과 결합하려던 희망이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산와 은행은, 결국 일련의 합병이 완료되면 일본 국내 랭킹 4위에서 5위로 처지게 된다. 총자산 규모로 보면 다이이치간교 그룹의 약 3분의 1, 스미토모 그룹의 약 절반으로 멀어진다.

  당연히 산와 은행으로서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산와 은행에게는 다른 금융 기관과 '짝짓기'가 살아 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산와 은행은 지난 7월 도요(東洋) 신탁 은행과 유니버설 증권, 다이요(大陽) 생명보험, 고아(興亞) 화재해상보험과 포괄적으로 업무를 제휴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제적인 금융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결정타가 부족하다'며 이 업무 제휴에 비판적이다.

  전문가들은 산와 은행이 살아 남으려면 대형 금융기관과 합병 제휴가 필요하며, 그런 전략에 실패하면 2류 은행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산와 은행은 평소 관계가 깊은 노무라(野村) 증권과 니혼(日本) 생명보험과 제휴 내지 합병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련의 합병 발표로 졸지에 랭킹 1위에서 3위로 밀려나게 된 도쿄미쓰비시 은행도 큰 위기이다. 도쿄미쓰비시 은행은 미쓰비시(三菱) 그룹의 중추 은행이다. 따라서 결속력이 강한 미쓰비시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안정된 경영을 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집보다 2~3배나 큰 '메가 은행'이 출현함에 따라 다른 금융기관과 제휴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도쿄미쓰비시 은행은 지난 9월 노무라 증권 계열사인 고쿠사이(國際) 증권의 주식 일부를 취득했다. 노무라 증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주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문가들은 '대통합 시대'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맨 꼴지로 처지게 된 다이와 은행의 거취도 크게 주목된다. 다이와 은행은 미국에서 부정 거래가 발각된 이후 모든 해외 업무를 포기하고, 간사이(關西) 지방의 대형 지방 은행으로 남는 것이 최선의 진로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산업계 재편 부채질
  그러나 도카이 은행과 아사히 은행 그룹은 중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도카이 은행과, 수도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아사히 은행이 간사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이와 은행과 합병할 경우 '규모의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며 두 은행의 통합에 다이와 으행도 참가할 것을 요청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이와 은행은 간사이 지역에서 체질을 강화한 뒤, 2년쯤 지나 두 은행과의 통합에 참여할 것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 간의 대통합 행진은 다른 금융기관들과 일본 주식회사, 즉 산업계의 자발적인 재편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60쪽 상자 기사 참조).

  예컨대 스미토모 은행과 사쿠라 은행 통합에 영향을 받아, 스미토모 은행 그룹 계열인 스미토모 생명과 사쿠라 은행 그룹, 즉 미쓰이 그룹인 미쓰이 생명이 합병하게 되면 총자산 규모 업계 1위인 니혼 생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또 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과 미쓰이 해상화재보험이 합병하게 되면, 업계 1위인 도쿄 해상화재보험과 똑같은 규모의 화재보험회사가 탄생할 수 있다.

  일본의 손해 보험 업계는 지난 10월세 회사가 1~2년 안에 통합한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미쓰이 해상화재보험ㆍ니혼 해상화재보험ㆍ고아 해상화재보험은 1~2년 안에 공동 지주 회사를 설립해 △사업 효율화와 수익력 제고 △판매력 강화 △전문성 향상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 통합안은 스미토모 은행과 사쿠라 은행이 통합을 발표하기 전에 공개된 것이어서, 만약 이 통합 그룹에 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이 참가한다면 일본 제1의 손해보험회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의 증권업계도 대통합 물결을 피할 수 없다. 두 은행의 통합 결정에 따라, 스미토모 은행과 제휴하고 있는 다이와(大和) 증권과 사쿠라 은행의 계열 회사인 사쿠라 증권의 통합은 거의 결정적이다. 또 스미토모 은행 계열 메이코(明光) 내쇼날 증권과, 사쿠라 은행 계열 야마네(山種) 증권이 합병할 가능성도 한결 높아졌다.

  그러나 은행 대통합으로 세계적인 '메가 은행'이 탄생한다는 데 대해 모두 두 손 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금융 전문가들은 일본 은행들의 합병ㆍ통합 바람은 미국에서 97년과 98년에 일어난 대형 합병을 모델로 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메가 은행' 탄생에 따른 경제적 이점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은행원 만여 명, 실업 가능성 높다
  실제로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97년과 98년 사이에 합병한 15개 은행 중 13개 은행이 당초 예상한 수익률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아스테츠 파이낸셜을 합병한 퍼스트 유니언의 99년도 수익 목표율이 당초 목표보다 23.8% 밑돌 것으로 예상되며, 대합병으로 탄생한 뱅크오브아메리카도 16.8%쯤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는 합병에 따른 인원 정리가 비교적 수월한 미국에서도 대형 합병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은행이 합병과 통합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만 하면 경영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통합에 따른 실업 대책도 큰 문제이다. 세계 제1의 은행으로 등장할 다이이치간교 은행 그룹은 통합하는 세 은행에서 약 5천명을 정리할 예정이다. 스미토모 은행 그룹도 합병 전까지 9천3백명을 정리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통합을 예정하고 있는 3개 손해보험회사는 5년 안에 3천명을 정리한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간 대통합 물결이 다른 금융기관과 산업계로 확산될 경우 일본의 실업자가 7백70만명으로 늘어나, 근로 세대 8.4명당 1명꼴로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한다. 어는 나라나 대규모 구조 조정에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일본의 '대통합 시대'가 몰고 올 사회적인 파장도 간단치는 않을 것 같다.

도쿄 · 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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