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지도까지 바꾼다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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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은행들, 기업 강제 합병 나설 듯 … 네 그룹으로 재편 가능성

스미토모 은행과 사쿠라 은행이 통합키로 한 결정은 일본주식회사를 이끌어온 산업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두 은행간 통합이 스미토모 재벌과 미쓰이 재벌 간의 접목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손을 잡았다는 얘기이다.

  일본의 재벌은 패전 직후 미국 점령군 사령부(GHQ)에 의해 해체되었다. 그러나 옛 재벌들은 그룹 은행을 구심점으로 해서 다시 뭉쳤다. 전쟁 전의 재벌이 지주 회사를 통해 계열 회사를 지배했다면, 전후의 재벌은 그룹 은행의 자금 지원을 통해 결속력을 다져 왔다.

  예컨대 옛 스미토모 재벌 그룹은 전후 스미토모 은행을 중심으로 학스이카이(白水會ㆍ참여 회사 20개)를 조직해 거대한 그룹을 형성해 왔다. 옛 미쓰이 재벌 그룹은 전후 미쓰이 은행(현 사쿠라 은행)을 중심으로 니키카이(二木會ㆍ참여회사 25개)를 결성하고 그룹내 계열 거래를 확대해 왔다. 재벌 회사들은 맥주나 음료수,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자기 계열 회사 제품만을 이용할 정도로 한때는 결속력이 대단히 강했다.

  그러나 양대 재벌을 이끌어 온 두 주축 은행이 합병을 결정한 것은 재벌 간의 경계가 근본적으로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양대 그룹에는 금융기관 이외에도 경쟁 관계인 제조업체가 많이 속해 있다. 스미토모 상사와 미쓰이 물산, 스미토모 건설과 미쓰이 건설, NEC와 도시바, 스미토모 화학공업과 미쓰이 화학‥. 전문가들은 '메가 은행' 탄생을 계기로 제조업체 간에도 여러 형태의 제휴나 합병이 적극 추진될 것이며, 이에 따라 일본의 재벌 지도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통합 후 체질 개선을 위해 돈줄을 졸라메게 될 '메가 은행'들은 우선 경영 부진에 빠져 있는 대형 건설회사들을 무더기로 도태시키거나, 경쟁력이 있는 회사에 강제 흡수 합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의 재벌이 네 그룹으로 재편성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첫째는 랭킹 3위인 도쿄미쓰비시 은행을 주축으로 결속력을 더욱 굳혀 가는 미쓰비시 그룹, 둘째는 사쿠라 은행을 흡병하고 미쓰이 그룹 흡수까지 넘보고 있는 스미토모 그룹, 셋째는 다이이치간교ㆍ후지ㆍ닛폰코교 은행 간의 메가 은행 연합, 넷째는 산와ㆍ니혼 생명, 노무라 증권의 거대 금융기관 연합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네 기업집단을 '네오(新) 재벌'이라고 명명하고, 이들 네오 재벌과 슈퍼 기업집단이 더욱 공룡화해 일본 경제를 분할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말을 바꾸면, '메가 은행' 출현에 따라 재벌의 경계가 일단 무너지고 계열의 힘이 약해지지만, 재편 과정을 통해 몸집을 불린 네오 재벌이 다시 경제 활동의 모든 단계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렇게 보면 메가 은행 탄생이 일본 경제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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