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에는 출구가 없다
  • 김상익 <시사저널> 편집장 직무대행 ()
  • 승인 1999.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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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호프집 호프 참사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을 읽다가 이런 대목과 마주쳤다.‘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우체통 · 전기 청소기 · 동물원 · 소스 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덫.’

 그 전까지 나는 쥐덫의 형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쥐덫의 구조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쥐를 잡는다는 목적에 철두철미한, 그 군더더기 하나 없는 기능주의적 철사 구조물에서 나는 숨막힐 듯한 공포를 느꼈다.

 지난 10월30일 밤 인천의 한 상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무려 1백 30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끔찍한 뉴스를 접한 뒤 나는 또 다시 쥐덫의 공포를 느꼈다.

 학교 축제가 끝난 뒤 2층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잇던 청소년들은 영락없이 쥐덫에 갇힌 꼴이었다. 합판을 덧댄 창문은 꽝꽝 못질이 되어 있었고, 술집 주인은 하나뿐인 입구를 탐욕의 빗장으로 가로질렀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주인공은 아파트 싱크대 밑에 쥐덫을 설치했다가 사흘째 되는 날 덫에 걸린 작은 쥐를 발견한다.‘사람으로 치면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 정도일 것이다. 안타까운 나이다.’ 쥐를 잡기는 했지만 주인공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쥐는 그 이튿날 아침에 죽어 있었다.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진다.‘그 쥐의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겨 주었다.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입구와 출구가 있어야 한다.’
 
‘어른들의 사회’가 청소년을 호프집으로 몰아 넣어
 그러나 인천 호프집에서 수민 청소년들 앞에 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찌 그 호프집만의 일일까. 가정에도 학교에도 사회에도 그들의 출구는 없다.

‘학교? 짜증나는 곳.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숨통이 막혀 오고 조이는 곳. 인격을 기른다고? 난 학교에 들어와서 인격 따위가 성장해 본 적은 없어. 학생들은 인간이 아냐… 학교가, 선생들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지랄하지 말라고 그래. 위선 떨지 말라고 그래.’ <시사저널> 제517호 커버 스토리에 인용된 한 여고생의 글이다.

 그런 글들을‘어른들의 사회’가 토끼몰이 하듯 호프집으로 몰아넣었다. 법을 어기고 청소년들에게 버젓이 술을 파는 호프집을 그들은 비상구라고 여겼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구청과 소방서의 무책임과 악덕 업주의 탐욕이‘비리의 철사줄’로 얽어맨 쥐덫이었음을 죽음이 눈앞에 닥칠 때가지 알지 못한 채. 우리 사회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쥐덫이 존재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9시 뉴스를 보기가 무서워졌다. 10대 탈선이나 청소년 매춘 따위 선정적 소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아예 온 식구가 시청금지다. 그런데 사고 이튿날 늦은 저녁을 먹다가 그만 그 참혹한 현장을 보고야 말았다.

 한참 동안 숟가락질을 멈추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듯 아내가 딸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너 어릴 적에 사고 뉴스를 보다가 왜 저런 슬픈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느냐며 앵커한테 화낸 일 기억나니?” 머리가 굵어진 우리집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순진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아내 덕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졌지만 두 아이는 좀처럼 브라운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통곡하는 부모들, 책임을 회피하는 관할 경찰서 경찰관, 술집 주인이 밖으로 못 나가게 막았다고 증언하는 남학생…. 그 뉴스를 보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같은 뉴스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그 아이들이 진작부터 알아채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대한민국 아들아 딸들아,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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