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표밭, 대권씨 뿌리기 경주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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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인제 선두로 김근태 . 노무현 . 이종찬 . 김중권 . 정대철 등 각축

16대 총선은 다음 대통령 주자감을 고르는 ‘예비 선거’로 출발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각 정당은 차기 대권과 연결하는 총선 전략을 경쟁적으로 들고 나오기 시작 했다. 가장 먼저 대권 구도 굳히기 전략으로 총선 승부수를 띄운 쪽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기습 공천을 통해 예상을 뒤엎고 비주류 대학살을 감행한 이총재의 심중에는 ‘이번 총선에서 난공불락의 대권 주자 자리를 굳힌다’는 야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총재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지는 촌선 결과를 지켜보아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총재는 이번 승부수를 통해 최소한 모든 정치 세력이 16대 총선을 대권 전초전의 장으로 삼도록 분위기를 선도하는 데 성공 했다.

김대통령 발언으로 경쟁 불붙어
 김대중 대통령은 이에 질세라 16대 총선에서 여권 차세대 대권 주자감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2월26일 <조선일보>차악80주년 기념 회견에서 김대통령은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부터) 같은 조건에서 경쟁시켜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AS주당에서 차기 대권 후보를 노리는 잠재적 주자군은 김대통령의 이 날 발언에 한껏 고무되어 민심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16대 총선이 일찌감치 차기 대권을 둘러싼 각축장으로 변하자 오래전부터 정치권에 내재되어 있던 또 하나의 화두가 튀어나왔다. 이른바 영남 정권 창출론ㅇ다. 공천 과정에서 이총재에게 밀려난 비주류 중진들은 민국당 창당 명분으로 차기 대권이 ‘반DJ . 반 이회창’ 노선임을 간조하고 나섰다.  김윤환 민국당 창당준비위 부위원장은 3월5일 대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 . 경북과 부산 .경남이 합심해야 차기에 영남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 했다.같은 날 김광일 민국당 창당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부산에서 “차기 대통령은 영남에서 확실한지지 기반을 가진사람이 나와야 한다. 신당이 부산에서 실패하면 우리는 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이번 총선에 뛰어든 여야 각 정치 세력은 차기 대권을 내세우며 치열한 득표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유권자 역시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런 선거 판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차기 대권 구도가 16대 총선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다.  그중에서도 집권당 대권 후보 주자들의 향배는 김대통령의 차기 구상과 맞물려 우선적인 관심 대상이다.

 민주당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권 후보 예비군은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 . 김근태 수도권선거대책위원장 . 노무현 지도위원 .이종찬 고문이다. 여기에 경북 .울진 .봉화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김중권 지도위원과, 15대 때 석패했던 서울 중구에 다시 도전장을 낸 정대철 당무위원도 내심 차기 주자의 꿈을 접지 않고 있어서 넓은 의미로는 6명의 주자가 포진한 셈이다.

 이들 중 여권내 차기 대권 경주에서 아직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은 당연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이다. 당내에서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대중 지지도를 갖고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사실상 민주당 간판으로 추대되었다.

 이인제 선대위원장 진영은 이번 총선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확고 부동한 여권내 차기 주자 자리 굳히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은 ‘이인제 작품 만들기’로 모아진다. 차기 대권 전략의 일환으로 자신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충청권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수도권(특히 경기 남부와 동부)에서 압승한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전략에 따라 공천자 발표 이후 이인제 위원장은 충청권과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돌고 있다.

이인제, 충청권이어 수도권에도 ‘대권벨트’ 노력
 특히 충청권에 대한 이인제 위원장의 집착은 유별나다. 그는 3월2일 충남 당진 . 서산 지구당 개편대호를 시작으로 1주일 이상 충남북 지역을 흝으며 강행군하고 있다.  이처럼 그가 충청권 바람몰이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에 대해 이인제 진영의 한 관계자는 “영남에는 노무현 의원과 김중권 전실장이 유력한 후보로 뛰고 있으나 충청권만 유력자가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위원장이 작심하고 비례 대표를 고사한 채 논산 . 금산에 출마했다.  민주당 불모지인 충청권에 단순한 교두보 이상을 확보해야 확고한 차기 주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커게 작용했다” 라고 전했다.

 이위원장측은 ‘충청권 교두보 확보’라는 표현에 대해서조차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교두보를 만드는 정도에 그친다는 말은 곧 ‘김종필 대승’을 의미하기 eOANSD다.  차기대권을 향한 그의 야심은 이번 청선에서 JP를 보기좋게 무너뜨림으로써 자연스럽게 3김 이후 전국적인지도자 자리를 확보하겠다는 데 있다.

 현재 이인제 위언장은 가는 곳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논리로 JP와 자기를 비교하고 있다. JP에 대해 뿌리 깊은 충청 지역지지 정서를 의식해 그를 ‘충청인 자존심의 표상’이었다고 치켜세우면서도, 지금까지 밀어 주었으면 되었으니 이제는 자기를 차기 대권 경쟁에서 ‘될 사람’으로 밀어 달라는 호소이다.  이같은 바람몰이는 당내에서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인제 위원장과 충청권 세몰이에 동행한 정동영 대변인은 ‘앞으로 3년뒤 젊은 지도자 시대가 열리면 이 대열의 최선두에는 이인제 위원장이 서있을 것이다’라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

 이인제 위원장이 충청권 못지 않게 중요한 전략지역으로 잡고 있는 지역은 수도권이다.  특히 경기 남부와 동부가 주된 타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낸 이위원장이 주가가 이들 지역에서 아직도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 민심을 이번 총선에서 눈을 드러나는 작품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 그의 야심이다.  수원 용인 여주 이천 양평 가평을 집중 공략대상으로 잡아 경기 남동부에 ‘이인제 벨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차기 구도를 놓고 볼 때 이인제 위원자의 이런 행보는 사실상 독주 체제나 다름없는 형국이다.  노무현 . 이종찬. 정대철 . 김중권 씨등 다른 잠재력 경쟁주자는이번 총선에서 자기 한몸 건사하기도 바쁜 형편이다. 지역구에 출마한 이들은 모두 당선해 돌아와야한다는 부담을안고 있다. 물론 이들이 출마하는 대부분의 지역이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곳들이어서 총선에서의 생활 자체가 차기 대권주자 판도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이견이 없다.

  지난해 국정원장 직에서 물러난 후 대권을 겨냥한 행보가 활발했던 이종찬 고문은 언론 문건 사태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지만 절치부심하며 종로에서 당선된 후 여권의 차세대 구도에 합류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노무현 지도위원 역시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 서구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는 것으로 대권 행보에 배수진을 쳤다. 그는 부산에서 당선되면 지역주의를 극복할 정치 지도자가 되어 국민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표밭 갈이에 전념하고 있다.  김중권 지도위원 역시 자기가 야권에 맞설수 있는 여권 내의 유력한 차기 영남 후보라는 논리를 펴며 이번 총선에 이변을 일으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들과 다소 다른 여건에서 여권내 차기 대권을 꿈꾸는 사람은 김근태 수도권 선대위원장이다.  이인제 선대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총선 기간에 자기 지역구 선거운동에 전념할 필요가 없는 김근태 위원장은 수도권 바람몰이 전략에 나섬으로써 차기 대권을 향한 위상을 한껏 드높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무기는 미래 지향적 리더십니다.  전국에서 의석수가 가장 많고, 정치적 비중도 가장 높은 수도권에서 국민의 지지를 높게 받는 것이 사회 발전과 지역주의 극복의 모태를 만들 수 있는 리더십니라는 논리이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수도권 전략과 관련해 “선거 기간에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가 지역주의를 극복할 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하고, 내가 거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선거후 당과 국민으로부터 평가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인제 선대위원장이 민주당내 차기 대권 구도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잠재적 경쟁 주자들도 이에 대해서는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위원장 본인은 물론 당내에서도 현재의 구도가 계속 되리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총선 결과에 따라 여권 구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총선 실패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
 이인제 위원장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도 충청권에서 소기의 성과(최소 5석 D상)를 거두지 못하거나 AS주당이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하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인책론이 대두할 것이고, 이위원장의 여권내 차기 대권 주자 자리는 물 건너가리라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을 통해 제1당이 되더라도 이위원장이 확고한 대권 주자 자리를 굳히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당내에서 가장 큰 변수로 꼽는 사항은 김대통령의 친위 부대라 할 수 있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향배이다. 이들은 현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신뢰도를 기준으로 차기 주자를 재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9월 전당대호까지는 특정 인사를 지지하는 일이 없으리라는분 것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당의 착 지도자는 선거 이후가 문제이다.  누가 만들어서 되는 잘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이번 총선에서 기여한 대로 당내 평가가나올 것이며,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동안 돌출 행동으로 부담을 주지 않아야한다는 점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인제 위원장이 민주당에 들어온 이후 김대통령에 향해 납작 엎드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당내에 독자적인지지 세력과 계보를 특별히 갖고 이지 않은 그이기에 핵심 세력인동교동계의 마음을 붙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권 주자 자리는 권력의 생리상 두각을 나타낼수록 사람과 힘이 모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권력 핵심부와의 차별성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유력한 대권 주자로서 야권 주자와 국민에 E한 임지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도 그런 모습은 불가피하다. 이인제 위원장이 끊임없이 김대통령을 향해 당 총재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김근태 수도권 선대위원장이 수시로 당내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인 지배 정당 정치를 민주적으로 바꾸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동교동계의 독주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AS주당 일각에서는 이번에 수도권에서 대거 공천된 이른바 386세대를 포함해 개혁 성향 출마자들과 전무자들이 무더기로 당선될 경우 당내에서 조직적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김근태 수도권 선대위원장의 향후 대권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이같은 전제는 모두 선거에서 민주당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 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비슷한 의석을 얻거나 패할 경우에는 차기를 꿈꾸는 모든 주자들에게 아예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정국 안정을 위해 또다시 정계 개편에 대한 유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이럴 경우 내각제 개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본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김종필 명예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이 공조 파기를 선언하고 이번 총선에서 배수진을 친 것도 선거 결과를 활용해 내각제 개헌의 물꼬를 다시 트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여권 차기 주자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인제 위원장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도 바로 이 대목이다. 때문에 그로서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김명예총재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발판을 없애야 한다. 작심하고 충청권에 달려든 이위원장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가 여권내 차기 대권 구도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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