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에 ‘인간의 입김’ 불어넣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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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연구회 ‘상식 깨기 14년 결실... 개고기 먹는 습관 등 일상에서 신앙 원리 규명

열서 회원이라고 해야 고작 20명 안파인 한 작은 공부 모임이 자유로운 책 읽기와 서슴 없는 글쓰기를 농해 관련 학계의 연구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서울 신림동에 둥지를 틀고, 벌써 14년째 종교학 연구에만 몰두해온 한국 종교연구회(한종연.회장 장석만)가 바로 그고시다. 이모임이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잇달아 내놓아관련 학계는무론 인접학문 분야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되고 있다.

 <세계 종교사 입문><한국종교문화사 강의><종교 다시 읽기><종교 읽기의 자유>...

제목만 얼핏 보아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책들이 모두 10년 넘게 지속된 ‘한종연식 공부’가 거둔 최근의 값진 산물이다. 제목만무거운 것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이들 책은 한결같이 5백 쪽이넘는 방대한 부피를 자랑한다. 한종연 사람들은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보통 2~3년에 걸친 연구가 격렬한 토론을 거친다.

 한종연의 작업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성과물을 출판해 해당 학문의 인식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까지 종교학의 소수전문 연구자들에게만 익숙한‘어렵고 딱딱한’ 학문이어다. 또한 종교학이 다루는 주제는 일반인에게 결코 분석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신념 문제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한종연은 ‘내세관’ ‘초월성’등 기성 학계의 종교담론에 결코 집착하지않는다.대신 이들은 기성학계가 사소하다고 무시하던 연구 주제로 눈길을 돌렸다. 이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주제 가둔데에는 기존 상식으로는 종교학과 전혀 어울ㄹㄹ 것같지 않은 주제가 많다.이를테면 ‘달력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인가’ ‘낙태와 생명 복제를 어떻게 볼것인가’ 따위이다.

 1주일을 기본 단위로 하여 생겨난 현대 역법에는고대 유태인들의 천지 창조에 관한 믿음이 깔려 이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하나님(또는 하느님)이 6일 동안 천지를 만들고 7일째 휴식을 취했으므로, 이를 성스럽게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기독교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시간 단위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에서도 이들은 종교적 설명을 찾아낸다.특정 음식물을 선호하거나 금기하는문화에는 종교 논리가 은연중 작용하는데, 개고기를 먹는 풍습도 마찬가지다.이들의설명에 따르면,한국인의 개고기 선호 경향 저변에는 ‘음양오행론’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의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운동권 특유의 외곬 학술 단체로 출발
 스스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놓조 해답을 구하려다 보니 이들의 연구 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유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漢)대 유학자 동증서를 읽어내야 했고, 한국의 불교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 역사도 알아야 했다. 개고기 식문화나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치병(治病) 행위를 검토하기위해서는동서양의 건강관이나 질병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자연히 한종연의 연구 방식은 ‘학제간 교류’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에 두 번 열리는 전체호의, 그리고 제약 없는 토론이 이루어지는‘집담회’는 학제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연구 성과를 직접 발표하거나 논평하는 사람 가운데에는역사학도 . 문화인류학도.사회과학도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실제로 이모임에 몸 담고 있거나 거쳐간 사람 가운데에는 민속학이나 과학사연구 분야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소장 연구자가 적지 않다.

 한종연이 처음부터 인접 학문과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 ‘종교학 대중화의 바다’에 이른 것은 결코아니다. 사실 한종연은 1980년대 운동권 특유의 틀에 박힌 의무감을 기둥으로 출발한 외곬 학술 단체였다. D 모임이 발족한 때는 1987년 여름, 익히 알려진 대로 당시는민주화 열기를 타고 한국 역사연구회 . 한국 철학연구회 등 이른바 진보적학술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던 시기였다. 당시 태어난 학술 모임들은 ‘사회 민주화에 기여하자’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한종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종연을 이끌어온 윤승용(한국방송개발원 부장).장석만(서울대 강사).이진구(외국어대 강사) 박사들이 처음 모임을 만들때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종교와 사회 변혁’ ‘종교와 혁명’‘종교와 해방’등 얼핏들어도 대강 성격을 짐작할 수이는 급진적ㅇㄴ 주제들이었다. 자연히 이들의눈길은 ‘해방 신학’이나 ‘마르크시즘’으로 기울었다.

 한종연의 급지적 연구 성향이 인접 한문분야의 다양하 S성과를 고루 섭취하는 오늘날의 성숙한 입장으로 선회한 때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국내적으로 민주화가 진척되고 세계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는 상황변동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종교 문제를 설명하는 데 주요 무기로 삼았던 마르크스주의가 한계를 드러내자 한종연은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은 공부모임으로 출발 했고,지금도 여전히 작은 공부 모임에 그치고 있지만, 한종연이 관련 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에사롭지않다. 기왕의 ‘급진성’을 빌미로 끊임없이 모임을 배척해온 한국종교학회마저 최근에 와서는 함께 공부하자며 손짓을 보낼 정도다. 인접 학문 분야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한종연의 실력을 알아보고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종교학에 몰두하게 된 배경에 대한 한종연의 설명은 인접 학문분야 연구자들에게도 들려줄만하다. “지금까지 종교학이 따분하게만 여겨졌던 까닭은 ‘도데체 종교학이라는 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한종연 장석만 회장은 말한다. 자신이 디디고 선 ’인식론적 기반‘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야말로 학문을 학문답게 지탱시키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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