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모태는 ‘오성회’
  • 편집국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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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주도로 결성…5·16부터 조직 확대



 하나회의 뿌리는 육사 11기인 전두환 노태우 박병화 최성택 김복동 등이 생도시절 결성한 ‘오성회’이다. 모두 영남 출신인 오성회 멤버는 생도 때부터 엘리트 의식으로 뭉쳐 서로를 끌어주기로 다짐했다. 나중에 박병하가 탈락하고 새로 권익현 백운택 손영길 정호용 노정기 박갑룡 6명이 가세해 오성회는 ‘10인회’로 확대되었다. 이들 중 친화력과 지도력으로 모임을 주도하고 확대해 나간 사람이 전두환이었다.

 10인회가 하나회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5·16쿠데타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0인회를 주도하던 전두환씨는 대위 시절인 61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단신으로 박소장을 찾아가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 시위’ 허락을 받아냈다. 전두환 대위는 육사 후배 생도들을 부추겨 가두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후 최고회의 의장에 오른 박씨의 민원 보좌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5·16쿠데타가 성공하자 전두환 대위는 박정희 의장을 만나 육사 출신으로 구성한 사조직의 필요성을 건의하면서 11기생 모임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박의장은 당시 측근이던 윤필용 중령을 통해 ‘10인회’를 지원해주고 육사 출신 사조직을 확대 결성하도록 일렀다고 한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하나회가 조직으로서 모습을 갖춘 때는 65년경이었다. 11기 모임인 10인회는 어느새 17기까지 이어지는 비밀 사조직이 되어 있었다. 주로 영남 출신을 중심으로 후배들을 ‘포섭’해 조직을 확대하면서 이름도 하나회로 바꿨다. 박대통령은 5·16쿠데타를 함께 주도한 육사 8기생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하나회를 친위세력으로 육성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회장은 전두환, 총무는 이종구(전 국방장관)씨가 맡았는데 입회식은 회장·총무·신규 가입자·추천자 등 5명만 참석한 가운데 주로 전두환씨 집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나회는 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때 그 실체가 드러났다. 준장급에서 중위까지 육사 11기부터 20기에 이르는 2백여명이 당시 회원이었다. 박대통령은 윤필용 장군이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동원해 쿠데타를 준비한다고 판단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윤필용 사건으로 손영길씨 등 일부 회원이 군에서 떨어져나간 뒤 하나회는 한동안 숨을 죽이다가 회장이던 전두환 소장이 79년 3월 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하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두환 소장은 15년간 육성해온 비밀 사조직 하나회를 동원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후 정권을 잡은 전씨는 81년 자신이 키워온 하나회를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비판 여론을 피하기 위한 기만 조처였다. 그는 해체 지시 이후에도 회원들을 군 요직에 두루 앉혔고, 6공 들어서도 이같은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현재 대부분의 군 요직에는 하나회 출신이 포진해 있다. 5공·6공 들어 더욱 강화된 하나회 인맥을 관리해온 사람은 이번에 전격 교체된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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