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목마른’ 방송프로 제작사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7.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활황 기대 속 전문인력 없어 허덕…대기업 본격 참여 새 변수

 서울방송의 텔레비전 개국과 유선텔레비전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방송프로그램 외주시장이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몇해 동안 침체를 벗지 못하던 방송프로그램 전문제작사들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가운데 광고 제작으로 기량을 다진 대기업들의 참여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올들어서만도 10여개 중소업체들이 신설되는 등 일대 시장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공보처에서 ‘문화영화제작사’로 등록된 외주제작사 (독립프로덕션) 는 전국에 2백여개. 이 가운데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업체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업계 사정이 취약하다. 시네텔서울이나 제일영상 같은 방송프로그랩 전문 제작사들과 유선텔레비전까지를 겨냥한 서울텔레콤 등의 후발주자, 대기업 계열의 종합광고대행사 및 제작 프로덕션, 편집 용역을 전담하는 포스트프로덕션 등 주력 업종이 다른 약 30개의 업체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지난 4월 공보처가 방송사들의 외부제작물 편성비율을 3% 이상으로 고시함으로써 업체의 사기가 한충 고무되어 있는데, KBS와 MBC 기존 양사의 물량에 허기가 진 업체들로서는 신생 서울방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의 '오아시스'로 떠오른 서울방송
 서울방송은 현재까지의 인력채용 현황과 시설 준비상태로 보아 상당량의 물량을 외주제작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4이 업계의 전망이다. 방송사측은 "텔레비젼 개국 전까지 MBC 인원의 3분의 1 선인 약6백명의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히j있으나 "인력 확충에 고전하고 있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파다하다. 6월말 현재까지 프로듀서만도 KBS에서 약 50명, MBC에서 10여명이 자리를 옮겼으나 프로듀서 치용 예정인원인 1백60명 선에는 크게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아직 스튜디오 설비를 마치지 못해 중앙일보 영상센터와 스튜디오 임차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예정했던 10월 개국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서울방송측은 "제작진 수가 문제될 것은 없다"며 "수준 미달의 외부 제작은 사절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시권 편성관리부장은 △단일 프로그램을 단위로 발주하는 기존의 방식 외에 △외부에서 연출자만 빌려오는 방식 △프로그램 중의한 코너를 떼어주는 부분외주 방식 등을 병행, 경제적 편성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송사들이 이처 럼 발주에 까다로운 까닭은 그동안 외부 작품의 질이 안에서 만든 것만 못하다는 불신이 쌓였기 때문이다. 일선 제작자들은 자신들을 '여의도 공장'의 공원이라고 자조할 만큼 빡빡한 공정에 불만이 높지만 경영합리화의 차원에서 보자면 구태여 엄청난 웃돈을 들이며 함량 미달의 작품을 밖에서 사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몇해 동안 방송사들은 작품의 질이 높아져야 발주를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제작사들은 안정된 물량 확보를 통해서만 업종의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맞서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싸움을 되풀이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업종 전체가 영세성에 허덕여왔다는 얘기이나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대기업들의 ’참전‘있다. 삼성, 두산, 롯데 등의 대기업이 이미 자사 계열 광고대행사 안에 별개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대는 현대전자 내에 프로그랩 제작부를 두는 등 각사가 앞 다투어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표 참조)

광고대행사 중 방송 외주제작의 선발주자인 제일기획은 지난해 구성한 뉴미디어팀을 통해 사업을 추진해왔다. 수주형 프로그램과 함께 지난 연말부터 자체 기획물을 제작중인데, 광고사의 강점인 기획력과 '선투자'의 자본력을 이용, 방송사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판매경쟁에 나서기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84년에 방송프로덕션의 기능을 갖춘 오디오비디오센터를 설립해 놓았던 오리콤에서는 지난 4월 영상제작팀을 구성해 업무를 본격화하고 있다. 또 그간 뉴스 타이틀 제자 정도로만 방송사업에 프로그램 제작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계열 광고대행사인 금강기획으로부터 업무를 이관 받은 현대전자 뉴미디어팀도 방송사로부터 이미 수주를 해 제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팀 관계자는 제작실무진 구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방송사로부터 견본에 대한 품평을 받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행중이며 따라서 일부 프로듀서들의 스카우트도 이뤄졌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세계 굴지의 조직망을 가진 현대가 이를 활용해 방송사로서도 못할 '거작'을 만들어낼 경우 어느 대기업보다 먼저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어 업계의 관심이 현대의 움직임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밖에서 볼 때 활황이라고 떠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 외주 제작업계 전반이 전문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부 방송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지난해 태동한 방송제작인협회 심현우 회장(제일영상 대표)은 "17개 분야 2백50명의 회원 중 핵심 직종인 프로듀서는 50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실제 연출력을 가진 7"10년 이상 경력자는 불과 25명 선"이라고 밝힌다. 심회장은 제작의 3요소인 사람·시간·돈 중 가장 큰 문제가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적어도 2년 이상의 장기교육을 통해 자체 인력을 조달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기구의 설립을 방송위원회와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7~10년 경력을 기준으로 방송사 중견 프로듀서들의 연봉은 약 2천6백만원~천7백만원 선이며 경우에 따라 1억원~2억원의 '기본 몸값‘을 부르고 있어 중소업체들로서는 연출자 스카우트에 고층이 크다.  또 연중 고정 일감 찾기가 어려워 제작사에 적만 걸어두고 평상시 프리랜서로 뛰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중소업체 보호해야
 업계에서는 이밖에도 △제작자의 프로그램 분야별 전문성 확보 △제작비 현실화 등을 업계 활성화 과제로 꼽고 있다. 특히 제작비 산출에 시설 사용료나 직원 봉급 등의 간접비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방송사측의 대응은 냉담하며 업자들간에도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네텔서울의 황재목 상무는 제작비 산출에 제3의 조사기구가 나서서 방송사와 제작사간의 조정역할을 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발주물량과 시기 설정 등의 제도적 확립을 촉구했다.  한편 서울 텔레콤의 정의용 상무는 “그간 좋은 기획, 좋은 작품을 내놓지 못한 제작사측에 우선 책임이 있다.  현 단계에서 제작비가 문제는 아니다”라고 잘라말해 물량확보와 작품의 질적 향상이 관건임을 강조했다.

 인력과 장비의 투자만이 외주제작사의 살길이라고 볼 때 뒤늦게 뛰어든 대자본의 ‘독식 공포’로부터 중소업체들을 보호해야할 과제가 남는다.  계열 기업을 앞세워 외주제가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열의’에 대해 방송사들로서도 적지 않은 기대를 보내고 있어 중소업체들의 불안은 더욱 크다.  대자본의 참여가 업체의 질적 비약을 이루는 주요한 전환점이 될 것은 자명하지만 ‘공생’을 위한 당국의 제도적 육성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