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아이돌 그룹 그들이 반짝이는 이유
  •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6.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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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업계, 동방신기·SS501 등 불황 타개책으로 적극 활용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의 팬은 방청석에서 흔드는 풍선 색깔로 자신을 구분한다.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형형색색의 풍선이 휘날렸다. 흰색(H.O.T), 노란색(젝스키스), 하늘색(G.O.D), 주황색(신화) 풍선이 '오빠들'이 나올 때마다 미친 듯이 나부꼈다. G.O.D는 마지막 앨범에서 '하늘색 풍선'이라는 노래로 그동안 함께 해주었던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방청석에서는 한 가지 색의 풍선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동방신기의 색깔인 펄 레드였다. 그러닥 지금, 펄 레드 풍선의 독주를 깨고 다시 방청석이 봄의 꽃밭처럼 물들기 시작했다. 동방신기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SS501의 초록색, 그리고 12명이 인해전술로 승부하는 슈퍼주니어의 사파이어 그린색이 아이돌 그룹의 색을 삼등분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산 아이돌 그룹들이 줄줄이 해체하거나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돌입하면서 말 많고 탈 많던 아이돌 그룹의 시대는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돌 그룹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그들이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비용은 점점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소녀 팬들을 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팬이 성인이 되면서 이탈자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그들의 위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기 곡선이 하향세로 들어서면 미련없이 팀을 해체하곤 한다. 뉴 키즈 온 더 블록부터 백스트리트 보이스까지, 예외는 없었다.

게다가 한국은 더 특수한 상황이다. 음반 시장이 급격히 몰락한 것이다. 기존 주류 가요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mp3의 출현은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차지하는 지분을 급격히 끌어내렸다. 서서히 내려가던 매출 곡선이 급격히 추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기존 팬들만 가지고 영업을 계속하기에는 당최 수지타산이 안 맞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그룹은 해체하고 어떤 그룹은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멤버들은 솔로로 활동하거나 연기자, MC 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지나가고 비·세븐·휘성처럼 4명, 5명이 나누어 갖고 있던 역할을 모두 갖춘 솔로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가창력과 댄스, 출중한 외모를 겸비한 그들은 가요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 동방신기가 등장했을 때 이들의 성공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방신기를 '제작'한 SM엔터테인먼트조차도 이들이 내수용이 아니라 중국 시장 진출용으로 기획해 구성된 팀임을 밝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동방신기는 데뷔 곡 'HUG' 하나만으로 단숨에 무주공산이었던 아이돌계에서 새로운 맹주가 되었다.

 
동방신기라는 상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기존의 아이돌 그룹이 댄스, 또는 팝 발라드를 음악적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던 반면 동방신기는 가요계의 트렌드를 장악하다시피 한 미드템포 R&B 발라드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 명이 가창력, 한 명이 랩, 한 명이 댄스, 한 명은 외모 하는식으로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해 기획되었던 1990년대 아이돌 그룹과도 동방신기는 달랐다. 이들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 중 보컬 파트로 ‘길러진’ 멤버들로만 구성되었다. 이것도 10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시아준수’ ‘미키유천’ 같은 특이한 이름과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 메이킹도 아이돌 그룹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들에게는 새롭게 다가들었다. 요컨대 동방신기 팬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로우틴 계층(13~15세 청소년층)은 이들을 ‘멤버 모두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얼굴까지 잘생긴 데다가 멤버 이름도 왠지 멋있는’ 판타지의 주인공처럼 여겼던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라이벌, DSP가 핑클 멤버들의 솔로 활동에 주력하는 동안 동방신기는 약 2년간 초등학교, 중학교 교실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오죽하면 동방신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는 호소까지 나왔을까.

동방신기와 H.O.T의 같은 점과 다른 점

H.O.T를 겨냥해 젝스키스를 내놓았던 그때와 같이, DSP가 동방신기의 대항마를 내놓은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동방신기와 똑같이 다섯 명으로 구성된 SS501은 ‘외모’에 치중했다. 기획사와 상부상조 관계에 있는 인터넷 연예 신문들은 이들을 수식할 때 ‘꽃미남 5인조 그룹’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불과 싱글 두 장을 내놓았을 뿐이지만 지난해 말까지 이들의 인기는 수직상승했다.

이에 질세라 SM엔터테인먼트는 물량 승부를 걸었다. 지난 연말 데뷔 앨범을 발표한 슈퍼주니어는 ‘꽃미남’ 12명이라는, 소녀들에게는 세계 올스타 축구팀과 맞먹을 환상적 라인업으로 단숨에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물론 SM엔터테인먼트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겠지만.

아이돌 그룹의 가수 활동은 연예 활동 위한 포석

지금의 아이돌 삼국지는 1990년대의 4강 구도와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선배 아이돌 그룹을 벤치마킹해 그 모델이 된 그룹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고, 음반이나 콘서트 중심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동방신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기획사 통제 아래 움직인다. 버라이어티 쇼에 나와 수다를 떠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인터넷 연예 뉴스에도 좀처럼 가십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선배인 H.O.T와 비슷한,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반면 SS501은 친근화 전략을 통해 로우틴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G.O.D.와 닮아 있다.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의 후발 주자였던 G.O.D.는 육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중원에 진출했다. SS501도 ‘스토커 사건’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슈퍼주니어의 모델은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화가 지금까지도 매체를 통해 팀의 결속을 과시하면서도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인기를 이어가듯, 슈퍼주니어도 처음부터 음악 활동보다는 시트콤과 쇼 프로그램 MC로 흩어지며 멤버 한 명 한 명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노리는 것은 ‘가요계의 최강자’보다는 연예 활동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음반 시장이 바닥에서 헤어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수 활동에 ‘올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디션과 캐스팅이라는 험난한 산맥을 넘어야 하는 연기 활동과 달리 가수 활동은 그럴듯한 스태프들을 끌어모아 앨범만 내면 좀더 쉽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나 DSP처럼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획사라면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가수 활동은 연예계 신고식을 위한 명함이요, 쇼 프로그램 무대를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인기를 얻으면 이를 기반으로 재빨리 방향 전환을 하려는 노림수인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은 현재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중음악의 위상이 연예계에서 약해졌다는 증거다.

아이돌 그룹 시장에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일까. SM엔터테인먼트는 슈퍼주니어에 이어 '슈퍼걸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S.E.S와 핑클이 이끌었던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을 부활시키겠다는 의도다. 슈퍼걸스가 성공한다면 또 다른 그룹들이 등장할 것이다. 비와 세븐의 대를 잇는 솔로 슈퍼스타가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뭉쳐서라도 힘을 갖는 상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반업계는 불황이지만 대신 디지털 음원이 그 매출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코묻은 돈’을 노리는 음악업계의 노림수가 한국 음반 시장의 최대 호황을 이끌었던 아이돌 그룹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新) 아이돌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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