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英子 정무제2장관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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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특별법 올해 통과된다”



 그는 유신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75년 오랫동안 일해온 언론사에서 쫒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언론계 인사들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동아투위 위원장??으로 맹활약하던 그의 모습이 지문처럼 선명히 찍혀 있다.

 그러나 83년 한국여성개발원 교육연수실장으로 여성문제 전문가라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정무제2장관실 정무조정관 한국여성개발원 원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여성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최고 자리에 올랐다.

 신임 權英子 정무제2장관(56)이 그 인물이다. 여성계가 ‘진짜  여성 장관??이라고 반긴 권장관 시대에 여성계는 과연 얼마만큼,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본디 언론계 출신이신데 언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라고나 할까요(웃음). 제가 나고 자란 안동 문화권의보수성과 여성비하 문화라는 건 정말 대단했어요. 심지어 삼촌에게는 존대를 바쳐도 고모에게는 예를 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남성우월적인 문화에서 자라면서 왜 여자나 딸이 남자나 아들만 못하게 취급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무척 저항감을 가졌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여성 문제를 주로 다뤘는데, 저에겐 이 시절이 의식전환의 계기로 작용했고, 여성개발원에 몸담으면서 아예 그 분야의 일을 하게 된 거지요.

 

한국여성개발원은 반관반민 연구소인데,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체제 비판을 압도할 정도로 컸습니까?

물론 주변에서 왜 반관반민 연구소에 가느냐고들 했지만, 전 민주화가 이뤄지더라도 여성문제는 남는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그런 기관이라면 백번이라도 가겠다고 말했고, 지금 돌이켜봐도 역시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문제를 푸는 ‘전략??으로 여성부 신설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남녀 문제를 너무 분리해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여성이 더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정무제2장관실이 여성 부가 되든 처가 되든 간에 여성 문제를 총괄 조정하고 어느 정도 집행 기능을 갖는 부처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문제인 데다, 그 이전에 여성계나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필요하겠지요.

 

‘거리에 내몰린 시절??이 있긴 합니다만, 오랜 맞벌이 부부이신데 공개된 재산 규모가 다른 장관에 비해 아주 적더군요(부군인 하동훈숙대교수의 명의를 포함한 권장관의 재산은 5억원대였다).

그랬어요?(웃음) 사실 저희 집은 대지가 1백10평이나 되는 꽤 넓은 집입니다. 남들이 못 가진 넒은 마당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재산이 적다고 느끼지 않는데요. 오랜 사회생활 때문에 시간에 쫓겨 재산을 불릴 여유도 없었어요. 그게 지금 와선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80년대 초와 88년에 잠깐 증권투자를 해봤는데 재간이 없어서인지 두 번 다 원금만 날리고 막차를 타고 말았지요.

 

‘성폭력특별법 제정??은 93년 안에 제정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3당이 내놓은 안과 여성 단체의 청원 등 네가지 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는데, 4월30일 법사위 주최로 공청회가 열립니다. 네가지 안이 조금씩 다 다르고 쟁점이 있긴 합니다만 법사위에서 상당히 적극성을 띠고 있는 만큼, 정기 국회가 열리는 금년말에는 통과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여성계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가도 관건일 텐데요.

성폭력 실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심지어 중고생까지 그 대상이 되고 있는 데다 양상도 굉장히 심각하다고 해요. 쟁점을 갖고 오래 다투기보다는 일단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여성계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하나의 통일된 안이 만들어져야겠지요.

 

정신대 피해자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정부 결정이 한?일간의 쟁점을 흐리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그 점을 염려하더군요. 최근 외무부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생활을 돕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을 먼저 했을 뿐, 한?일간의 문제는 그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문제??라고 말하더군요. 진상조사 결과 일본 정부가 구체적으로 개입했거나 국제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면 그에 따른 요구는 외교 차원에서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일하는 여성의 탁아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 본인 체험 때문입니까?

집에서 놀 때 큰 손주를 한 2년 키워줬는데, 그게 딸을 돕는 유일한 길이더군요. 여성개발원에도 기혼 여성들이 많았는데, 산전산후 2개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 문제로 고민을 시작하는 거예요. 여성개발원 교육연수실장으로 있을 때 여성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궁리한 것이 ‘가정탁아모 훈련 프로그램??이었지요.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취업 여성도 도울 수 있고, 새로운 여성 직종도 개발할 수 있는 1석3조라고 판단한 거지요.

 

여성 고용 형태가 임시직?파트타임 등 불완전 고용쪽으로 나아가는데 대한 여성계의 우려가 높습니다.

너무 한쪽으로만 바라봐선 곤란하지요. 오히려 여성들이 자기 입장에서 다양한 근무 형태를 개발하고 적극 선택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임금이나 취업 조건, 경력 환산에서 지나치게 불이익을 강요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만 마련된다면, 시간제나 임시직만 아니라 재택 근무 등 근무형태와 시간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적용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정작 권장관은 10여년 동안 가정?직장?공부를 병행하는 ‘1인 3역??을 해왔습니다. 슈퍼우먼이신가요?

전혀 아니예요. 될 수도 없고요. 다만 생략해도 되겠다 싶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살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시간 맞춰 식사 대령도 못하고, 집안을 깨끗이 하는 일도 포기하고 살았어요. 일을 해야겠고 일을 하려면 지식도 쌓아야겠는데, 그러려면 먼지 있는 데서 사는 것도 감수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전 사실 그림처럼 집을 가꾸고 살림을 챙기는 주부야말로 슈퍼 우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정부와 거리가 있었던 재야 여성단체들을 어떻게 수렴하실 작정입니까?

저는 그 점에서는 철저하게 중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보수 성향의 단체든 진보 성향의 단체든 사안에 따라 어느 쪽이든 접촉하고 이야기를 들을 작정이예요. 취임한 지 한달도 안돼서 정대협 관계자들을 만나고, 여성단체연합을 방문한 것도 다 그런 뜻에서였지요. 단체의 성격보다는 풀어야 할 과제 중심으로 접촉하고 연대해야지요. 재야 여성 단체들도 정부와 접촉하면 마치 오염되는 것처럼 여기고 접촉을 피해온 경향을 바꿔주기 바랍니다.

 

간첩단 사건으로 옥중에서 자살한 전 고려대 교수 권두영씨와 오누이간인데, 그 문제를 둘러싸고 장관 자격 시비도 일었습니다만….

재판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오빠가 돌아가셔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그저 비통하고 가슴 아플 뿐입니다. 왜 좀더 자주 만나 오빠의 근황을 알아보고 대화를 못 나눴는지 안타깝고 후회스런 마음뿐이지요. 그러나 출가해 따라 산 지 30년이나 지난 친정 동생이 혈육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지요.

 

다른 부처와 이견이 생기면 힘으로라도 해결하실 겁니까?

덮어놓고 밀어붙이지는 못하지요. 우선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요즘은 딸만 둔 분들도 많아져서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 다행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는 아직도 보수적인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한편에서는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한편에서는 제도를 바꿔나가는, 강온 전략을 함께 구사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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