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패’불똥 아르헨티나로
  • 부에노스 아이레스·손정수(자유 기고가)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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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관료 상당수, 이탈리아 기업으로부터 수뢰 의혹



 이탈리아를 뒤흔들고 있는 ‘부패한 정치와의 전쟁’이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에까지 번지고 있다. 기업인들의 정부관리 매수사건을 수사하는 이탈리아 사법당국의 조사가 확대되면서 이 사건에 아르헨티나 정부 관리들의 관련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깨끗한 손”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도 “관련 기업과 아르헨티나 정부의 접촉과정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탈리아 검찰 주변에서 알폰신 정부(83-89년)와 현 메넴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이탈리아 당국이 아르헨티나 관리들이 관련돼 있다고 의심하게 된 것은 구속된 기업인들이 아르헨티나에 진출해 있는 이탈리아 기업 그룹의 최고 경영인이라는 점과, 구속된 정부 관리들이 경제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아르헨티나에 대한 차관을 승인했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탈리아의 투자는 지난 89년 양국이 합의한 경제협정에 따라 이탈리아가 제공키로 약속한 저리 차관과 무상지원이 포함된 50억달러 규모이다. 현재까지 제공된 30%는 아르헨티나에서 칠레에 이르는 가스관 설치공사와 전화시스템 디지털화, 그리고 오염된 마탄사강의 환경정화, 멘도사공항의 레이더 현대화 등 여러 건의 정부 공사에 투자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SNAM.AGIP.FIAT 등 이타리아 기업 그룹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인에 공공연히 뇌물 요구

 검사 70여명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조사에 나선 이탈리아 검찰당국은 이들 기업 그룹이 차관에 대한 결재를 신속히 얻어내기 위해 정부 관리를 매수했을 가능성과 함께 이미 아르헨티나에 진출하고 있는 계열 회사를 이용해 자금을 유용했을 가능성에 수사 초점을 두고 아르헨티나 당국에 관계 자료를 요청했다.

 이탈리아 당국의 심증은 석유 천연가스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가스회사 AGIP가 부에 노스 아이레스에 10여개의 압축가스 스테이션을 건설하면서 차관을 유용했다는 협의가 짙어지면서 더욱 굳어졌다.

 이 사건을 이탈리아어로 ‘탕젠테(뇌물)’라고 부르는 이곳 언론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관리들의 관련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더 많은 사실을 경쟁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놓고 여야 간에 벌어진 열띤 공방전은 중간선거를 앞둔 정가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유력 주간지 <SOMOS>는 대부분의 공사가 공개경쟁입찰을 거치지 않은채 관계 당국이 시공자를 직접 선택했다든가, 40-50%씩이나 높은 공사비로 계약된 공사에 뇌물이 개입했다는 증언, 공사입찰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건으로 알폰신 정부와 현 메넴 정부의 관리들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았다는 한 이탈리아 기업인의 증언도 폭로했다.

 또한 지난 90년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디미셀리스(구속중.당시 이탈리아 외무장관)가 “전화시스템 디지털화 계획을 이탈리아 기업과 계약하지 않을 경우 양국 간의 경제협력은 어렵게 될것”이라는 위협적인 발언을 했다는 사실과, 당시 총리였던 베니토 그락시(구속중)가 최근 20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정치가.기업인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어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몇 개월 전에 내무장관직을 사임한 루이스 만사노와 직업외교관 출신인 카림조마이다. 만사노는 메넴 대통령 측근으로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페론당 원내총무를 거쳐 내무장관에 올랐으나 부패 정치인이라는 여론에 몰려 이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그가 이 사건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까닭은, 구속중인 디 미셀리스와 절친한 사이로 재임중 깊은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메넴 대통령의 처남인 카림조마의 경우 언론들이 지적하는 의혹은 만사노 전 내무장관보다 더 구체적이다. 메넴 정부 집권 초기 그가 이탈리아.아르헨티나 경제협력 공동위원회의 아르헨티나 대표로서 차관문제를 협의한 장본인이라는 사실과, 자기의 가족 기업인 조마 피혁회사 명의로 2백수십만달러의 자금과 함께 차관 혜택을 받은 사실, 그리고 이탈리아 기업인들에게 공공연히 구전을 요구했었다는 것들이 의혹의 대상이다. 이러한 의혹은 사실 오래전부터 언론에 의해 폭로됐으나 그동안 당국의 조사는커녕 의혹을 제기한 신문에 대한 장본인의 법적 항변도 없이 그저 ‘이해 사항’으로 치부돼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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