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식 ‘북새통’ 백악관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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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백일 앞두고 국민 반응 무덤덤....자유분방 집무 스타일, ‘군기’는 엄정


 

 이달 말로 클린턴이 취임 1백일을 맞는다. 그가 취임초 입이 닳도록 “기대하시라!”를 강조한 ‘1백일작전’의 기한이 다 돼가지만 정작 미국민들은 이렇다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클린턴의 ‘1백일 작전’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쏟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미국 언론뿐이다.

 지난달 21일, 클린턴이 취임한 지 두달째 되던 날을 기해 미국의 유수한 신문과 텔레비전들이 집중적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24시’를 특집 보도한 데 이어, 이달말 취임 1백일을 겨냥해 유사한 특집 경쟁이 또 시작될 눈치이다. 클린턴의 백악관 1백일을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스케치해 본다.

 약간은 차기 섞인 취재거리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기는 하지만, 클린턴 백악관의 변화를 대놓고 밖에다 크게 자랑하는 대목 가운데는 백악관 주방의 주방기구 배치를 바꾼 것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가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평소 간식으로 즐겨온 빅 맥(맥도널드 햄버거 곱빼기)을 잊지 못해 백악관 주방의 일부를 개수해 올 가을부터 밤참거리를 배식받게 된다는 소식이다. 클린턴의 거실과 침실은 백악관 2층에 있다. 따라서 2층에서 1층에 있는 타원형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 내려오는 것이 그의 공식 출근이 되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퇴근이다.

 

“기물 부수며 대판 부부싸움” 소문도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시각은 아침 8시30분이다. 그때면 보좌관과 비서들이 이미 한시간 전에 아침 정례회의를 마치고 보고순서까지 정한 뒤다. 그가 다시 2층으로 퇴근하는 때는 대략 오후 6시30분께. 때로 낮에 다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어도 일단 2층에 올라갔다가 밤이 깊어 다시 내려오는 것이 관행이라고 알려져 있다. 각 언론사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한가지 의문으로 여기는 것은 클린턴의 저녁 일정속에 그의 부인 힐러리의 일정과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의료제도를 혁신하는 총책을 맡고 있는 힐러리의 입지 때문이라는 것이 백악관측 해명이지만, 최근 부부가 2층에서 기물까지 부수며 큰 싸움을 벌였다는 미확인 보도까지 나돌고 있어 부부관계가 뭔가 석연치 않음을 시사한다. 기자들의 시선을 눈치 챈 듯, 백악관측이 그날그날 밝히는 클린턴의 하루 일정표 속에는 얼마전부터 난데없이 힐러리의 일정이 파고들어 ‘둘이 함께 있음’을 강조하는 친절을 보이기도 하나, 이것이 오히려 의심을 증폭시킨다.

 한 예로 지난달 21일 클린턴의 취임 만 두달을 잡아 <뉴욕 타임스>가 공개한 ‘클린턴의 3월17일’일과는 다음과 같다.

 △TBA : 조깅(TBA란 앞으로 정확한 시간이 발표될 예정이라는 To Be Announced의 약자로 미확정 일정을 뜻한다) △오전 9시-9시15분 정보 보고(오벌 오피스) △오전9시15-9시30분 : 국가안보회의 브리핑(오벌 오피스) △오전10시15분 : 전국전자업체협회 접견 △오전10시40분-10시55 : 전국노인협회 간부 접견 △오전11시-11시15분 : 보좌관 브리핑(오벌 오피스) △오전11시15분-11시30분 : 에이레 앨버트 레이놀드 총리 접견 △오전11시30분 : 성 파트리시오축일 행사(루스벨트 품)

 △정오-오후1시30분 : 파트리시오 오찬(의회) △오후2시-2시30분 : 집무 △오후2시45분-2시50분 : 시애틀 거주 10세 장애자 윌리엄 J. 클린턴과 전화통화 △오후3시-3시15분 : 대통령 여론측정 전문가 스탠그린내그 면담(오벌 오피스) △오후3시15-4시 : 집무 △오후4시-4시30분 : CNN사장 레드 터너 면담 △오후5시-7시 : 의료제도개혁 모임(루스벨트 룸) △오후 7시30분-8시15분 : 집무

 이 일정표는 이어 BC and HRC : White House란 암호문 같은 것을 맨 끝에 적어 놓고 있다. BC는 빌 클린턴의 머리 글자, HRC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머리 글자를 각각 뜻하는 것으로, 클린턴과 힐러리가 백악관에서 저녁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클린턴의 수면 시간에 대해 그의 측근 비서들은 하루 다섯 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1주일 평균 4권의 책을 독파하는 것으로 전한다. 기자들은 최근 그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의 책상 위에 꽃혀 있는 책이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상원의원(뉴욕주) 이 쓴 인종문제에 관한 국제정치학 저서<목마전>, 제임스 멜빈 워싱턴이 편찬한 마틴 루터 킹 2세의 신앙간집 <희망의 성서>, 더글러스 존스의 추리소설 <템퍼런스문을 찾아>, 그리고 폴 케네디가 쓴 <21세기의 준비>인 것으로 밝혀냈다.

 클린턴은 웬만해서는 집무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대통령이다. 어쩌다 본다고 해도 C-SPAN에서 녹화중계하는 의회의 의정 활동 내용을 밤에 잠깐 보는 것이 고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자주 소개되는 그의 체격으로 미루어 클린턴은 자칫 비만형이 될 소지가 많은 인물로 보인다. 그가 1주일 평균 2-3회의 아침 조깅을 하는 것도 자신의 이같은 체질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3-4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옐친과의 정상회담 때도 아침시간을 틈내 합참 소속 배리 매카페리 육군중장을 현지까지 불러내 함께 조깅하는 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매카페리 중장은 얼마전 백악관 정문에서 만난 클린턴의 여성 보좌관에게 “굿모닝”하고 인사를 하다 그로부터 “난 군인하고는 얘기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예요”라고 면박당한 인물로, 국방성 예하 전군이 이 사건에 발끈하자 클린턴이 이를 진화하느라 밴쿠버에까지 데리고 간 것이다.

 클린턴이 그에게 여성 보좌관의 행위를 사과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클린턴 일가가 평소 군인을 차별한다는 소문이 확 퍼져 백악관 참모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컨대 힐러리가 백악관 여주인이 되자마자 백악관에 군복 착용자의 출입을 금지시킨 조처라든지, 아칸소로부터 워싱턴 사립학교로 전학한 대통령의 딸 첼시가 매일 등.하교를 시켜주는 백악관 파견 군인 운전사를 싫어해 민간 운전사로 바꿨다는 등 클린턴가의 군인 기피증상은 클린턴 스스로가 월남전 기피자라는 사실과 함께 국방성의 자존심을 적이 상하게 만들고 있다.

 

도떼기 시장 연상시키는 집무 분위기

 클린턴이 백악관 참모들과 보내는 일상 집무 시간은 역대 백악관 주인과는 천양지차여서, 자유분방일 정도가 아니라 얼핏 도떼기시장을 연상시킬 만큼 무질서하다는 것이 보좌관들의 일치된 견해다. 백악관내 보좌관과 비서들의 집무실 문은 물론 클린턴의 오벌오피스 문까지 활짝 열려 있기가 일쑤다.

 윗옷을 걸친 정장 차림은 어쩌다이고, 대통령을 포함한 참모들 대개가 와이셔츠 차림으로 이 방 저 방 달음질치다 보면 허리춤에서 빠져 나오는 와이셔츠 자락을 여며 집어넣느라 이곳저곳에서 비지춤을 내리고 허리띠를 다시 매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보좌관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목욕가운차림의 대통령과 맞닥뜨린 일도 있다고 자랑처럼 늘어놓고 있다.

 백악관에서 제일 바쁘고 곤욕을 자주 치르는 인물로는 지하실에서 ‘블랙박스’를 다루는 대통령 일정 담당 국장 마르치아 헤일 여사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의 하루 일정을 시간과 분은 물론 초까지 쪼개 블랙박스에 담아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클린턴이 매사에 늑장을 부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과 손님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해 행사와 행사중간에 15분 정도의 짬을 삽입해 ‘위기’를 면한다고 실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북새통과 자유분방한 분위기속에서도 백악관의 ‘군기’가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대변인실과 한 여자 비서관의 말은 이렇다. “대변인이 부재중이라 내가 대신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수화기를 통해 ‘나, 대통령인데’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반년전 유세 때만 해도 그는 전화를 걸 때 ‘나, 빌인데’라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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