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그늘 아래 살얼음판 걷는 전씨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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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보다 먼저 당한다”....‘재산.광주’가 족쇄

 

 4월9일자 일간지들은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일제히 가십란에 올렸다. 닉슨 전미대통령이 8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해 국제 정세와 북한 핵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장면이었다. 외국에서 온 귀빈을 맞아 부인 이순자씨가 한복 차림으로 차 시중을 드는 이 광경은 5공 청산과 백담사 유배를 지켜봤던 국민에게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삽화였다. 전씨의 활동 반경과 운신폭이 노태우 정권 때와 비교해 훨씬 넓어지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청와대와 전씨 간에 형성된 기류는 싸늘하다. 연희동의 한 측근은 김대통령 취임 이후의 연희동 분위기를 “한마디로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이 온 것을 느끼지 못한다)”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김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맨 먼저 터진 정치적 사건은 ‘용팔이 사건 본격 수사’였고, 전씨의 충성스런 심복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5공 청산 때에 이어 두 번째로 구속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를 둘러싼 정가의 해석은 박철언 국민당 의원(당시 안기부장 특보)을 겨냥한 화살이 엉뚱한 데로 날아가 꽂혔다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가의 관측은 애초 장세동씨와 전씨가 과녁이었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대통령의 ‘숙청을 방불케하는 일련의 군 인사’도 전씨측을 당황하게 만든 요소다. 사실 군부내 하나회 인맥은 노태우 인맥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전두환 인맥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게 중론이다. 지난달 8일 보직해임된 전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과 전 서완수 기무사령관만 해도 ‘노태우 사람’이 아니라 ‘전두환 사람’으로 꼽혀온 군부 인맥이다. 연희동에 수시로 출입하는 한 인사는 “연희동 어른이 군 인사를 전해 듣고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굳은 표정이었다”라고 전한다.

 

“전씨를 비호하거나 박해할 이유 없다”

 김영삼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의도적인 장치는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개혁 과정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다”라면서도 전두환씨의 장밋빛 기대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지적한다. 이 측근은 “생각해 보라. 김대통령은 전씨에게 진 빚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5년전에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집권 기회를 그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엄청난 탄압을 받았을 뿐이다”라고 전제하고, “문민 정부가 30년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를 의도적으로 박해할 필요도 없지만, 그를 비호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라고 못박았다.

 연희동측이 정작 불안을 느끼는 대목은 ‘현재의 냉담한 기류’가 아니라, 이 살얼음판마저 깨질지도 모른다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치 개혁의 마지막 수순은 전.노 전대통령 문제’라는 상황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운데 두 사람 중 전씨측이 먼저 다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김대통령으로서는 2년반이나 국정을 함께 운영했던 노씨보다는 전씨측이 훨씬 부담없는 개혁 대상이라는 점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설명되기도 한다.

 정가에서는 전씨측이 개혁의 격류에 휩쓸리게 되면 그 뇌관은 전직 대통령 재산 공개와 광주 문제가 되리라고 예측한다. 재산 공개에 대한 여론 압박은 지난 3월23일 대한민국헌정회(회장 김동인)가 “전직 대통령도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국민적 정서에 동참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이미 시작됐다. 물론 김대통령은 지난 1일 <동아일보>와 가진 특별 회견에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는 그 분들이 판단해서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금 수혜자라는 차원에서라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씨측은 “퇴임 때 재산 공개를 안한 노대통령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우리측은 퇴임 때 모든 것을 밝히고 조사까지 받았다”라며 짜증스런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전씨는 88년 11월 고별 기자회견을 통해 연희동 자택과 서초동 땅 등 부동산과 쓰다 남은 정치자금 1백39억원을 밝힌 데 이어, 5공비리특위에 설치된 ‘재산 특위 소위’와 검찰 특별수사부의 조사를 연이어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인들이 주는 정치자금을 마다 한 적은 없는” 노 전대통령과는 달리 “기업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 정치자금을 받아 냈던” 그 특유의 정치자금 모금 방식과 규모를 감안하면, 당시 발표된 재산규모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은 만큼 현금 자산은 조사 과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전씨측의 ‘밝혀지지 않은 재산’과 관련해, 최근 아들 재국씨가 서울 한남동 유엔 빌리지에 50억원 상당의 주택(대지 1백40평,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을 신축중이라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로는, 문선명 통일교 교주의 저택과 이웃한 이땅의 소유주와 건축주는 전두환씨 친누나의 아들인 이 아무개(사업)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웃 주민 ㄱ씨는 “재국씨가 공사 진척 상황을 알아보러 저녁때 자주 둘러보곤 했다”라고 말했다. 한 공사 관계자는 “아무에게도 공사현장을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는 엄명이 있어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살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의아해했다. 재국씨측은 “사업상 바쁜 외사촌을 대신해 인테리어를 조언하러 몇번 공사 현장에 나가 본 적은 있지만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전씨, 역사의 법정에 불려나갈 수도

 연희동측에서 보면 재산 공개보다 더 폭발적인 뇌관은 광주 문제다. 지난 3월18일 지방순시차 광주를 처음 방문한 김대통령은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망월동 참배 저지 방침에 가로막혀 끝내 망월동 묘지에 참배하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광주의 분위기는 현격히 달라졌다(<시사저널> 181호 ‘망월묘 참배 저지...’ 참조). 남총련은 광주지역 재야인사들과 김대통령의 3.18 면담이 무산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고,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광주전남연합)은 비상 중앙위 총회를 열어 광주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의 강경 방침에서 한발 후퇴해 ‘부상자 치료, 광주 시민의 명예회복, 집단배상 문제와 병행 추진한다’ 고 재규정했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광주 시민의 일반적 정서와 김영삼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다는 후문이다.

 광주지역의 기대와 입장 선회가 김영삼 정부에게는 ‘미완의 숙제’를 어떤 형식으로든 풀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김영삼 정부 내의 재야 접촉 창구인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이 광주 재야측과 활발히 접촉하면서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 놓기 위한’ 접점을 찾아내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광주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김영삼 정부와 재야의 인식이 ‘5월 광주를 계기로 정권을 잡았던’ 전씨를 다시한번 역사의 법정으로 불러낼 가능성도 있다.

 5월이 와도 연희동은 ‘춘래불사춘’을 느낄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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