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오명’ 건설업 ‘사정’칼로 수술될까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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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제도 관행 근본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건설업계 사장님들 올 한 해 무사히 넘기기 힘들겠어요. 하도급 비리를 조사한다고 하지, 입찰 담합 사실이 드러나면 구속한다고 하지...” 최근 대형 건설업체들의 고위 임원끼리 모인자리에서 튀어나온 볼멘 소리다. 이 말 속에는 잘못하다가는 쇠고랑을 차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함께 어째서 건설업자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항변이 담겨 있다.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전복 사고 이후 정부의 엄단조처가 취해지자 업계의 위기감은 증폭됐다. 그러나 “건설업자를 때려잡는다고 해서 구조적인 비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방어논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비리의 핵심은 결국 비자금이다. 비자금이란 것이 도대체 뭐냐.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먹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공무원을 최근에 만나서 들은 얘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나는 정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쇠고기 먹던 것 칼국수 먹고 살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지방의 하급 공무원들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그동안 다달이 부어오던 곗돈과 자동차 할부금, 그리고 자녀들 과외비, 이 세가지 때문이다.”

 

1백에서 70 미만으로 떨어진 공사비

 새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건설업계를 포함한 기업의 하도급 부조리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혀왔다. 사정 한파는 ‘복마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있는 건설업계에도 불어닥쳤고 때마침 열차전복사고가 터져 업계의 체감 온도는 영하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한 하도급업자는, 총체적으로 썩고 난 마처럼 얽힌 구조적 비리를 정부가 제대로 도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입찰제도와 관행이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부조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극단적인 회의론을 폈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행 입찰제도는 무엇이 문제인가. 예를 들어 학교 교실을 1백개 짓는다고 할 때 정부는 먼저 설계사무소에 용역을 주어 설계도면을 만든다. 이때 설계대로 지으면 공사비용이 얼마나 될지 산출한다. 이 금액을 1백이라고 하자. 발주처는 학교 교실 1백개 짓는 데 1백이 든다고 예산안을 올린다. 경제기획원은 예산절약 차원에서 15를 깎는다. 입찰업무를 관장하는 조달청은 다시 5-10을 깎아버린다. 1백이던 공사비용은 75-80이 된다. 다음 단계로 경쟁입찰이 실시된다. 건설업자들은 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 이보다 더 낮은 가격을 써낸다. 낙찰가격은 대체로 85% 선에서 정해진다. 결국 발주처가 1백으로 잡은 공사비용은 낙찰될 때 70 미만(80×0.85)으로 뚝 떨어진다.

 만약 발주처가 1백으로 잡은 금액이 합당한 가격이라면 70 이하로 금액이 깎인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다. 우선 교실을 70개만 짓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 관계자는 “이같은 일이 실제로 있으며, 이 사실이 적발되어 문제가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기업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실하게 공사한다.

 그러나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70이라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1백이라는 가격이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설계사무소는 정해진 가격을 설계비로 받는 것이 아니라 공사비용의 일정 비율을 받기 때문에 되도록 공사비가 많이 들어가도록 설계하는 경향이 있다. 발주자 또한 미리 깎일 것을 예상해 공사비를 부풀릴 수 있다. 부조리가 생길 가능성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움튼다.

 설사 낙찰 가격이 건설업자에게 피해를 줄 만큼 낮은 금액이라 하더라도 만회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설계를 변경하여 예정에 없던 공사를 추가함으로써 공사 규모를 늘릴 수 있다. 또 발주가가 “이번에는 좀 손해보더라도 다음번에 잘 봐주겠다”고 약속하면 한번의 손해는 능히 감수할 수 있다. 하도급업자를 쥐어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사 못 따면 문 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공사 비용을 무조건 깎는 것이 능사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 건설 전문가는 “건축물은 수명이 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계.시공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 밖에 안되고 그것을 유지 관리하고 보수하는데 75-80%의 돈이 든다. 그런데 우리의 입찰제도는 작은 부분인 설계.시공비를 깎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공사가 부실해져 유지.관리 비용이 늘어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부실 공사는 결국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 건설업체는 업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파격적인 가격을 써내 특수 건설 공사를 따냈다. 1천억원짜리 공사라면 8백50억원을 써 넣는 것이 보통인데 이 회사는 5백20억원으로 밀어붙였다. 이 회사의 덤핑논리는 이렇다. “3백억원 이상 낮은 값에 공사를 하면 손해르볼 것이 뻔하지만 아직까지 지어보지 못한 특수 건물을 지음으로써 노하우가 쌓여 앞으로의 경쟁에 유리하므로 정책적으로 덤핑을 했다.”

 건설업은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제조업과 달라서 공사를 따내지 못하면 아예 일거리도 없고 생산물도 없다. 어떻게든 공사를 따내야만 회사가 굴러간다. 그래서 건설업자들은 건설업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기 때문에 덤핑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이 통에 괴로움을 겪는 것은 중소 건설업체와 하도급 업체들이다.

 건설업체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내는(원도급) 일반건설업체와, 이들로부터 일거리를 하도급받는 전문 건설업체이다.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9백여개의 원도급 업체와 19개 업종 1만2천여개의 하도급 업체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건물 한 채를 짓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 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잘 알 수 있다. 땅을 파기 위해서는 먼저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철근을 박고 나무판으로 버텨준다(보링.그라우팅 공사). 다음 단계로 흙을 파내고(토공사), 그 위에 철근 콘크리트로 뼈대를 올린다(건물에 따라서는 철골 공사를 하기도 한다). 철근 구조물이 위로 올라가면 인부들이 딛고 다닐 발판을 만든다(비계 공사). 건물 뼈대가 완성되면 안팎으로 벽돌을 쌓거나(조적), 돌을 붙인다(석공사), 이들 공사와 함께 취수기 정수기 상하수도 방재 등 설비 공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마무리 단계로서 미장.도장.창호.의장 공사를 한다. 이같은 공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하도급업자인 전문 건설회사이다. 원도급자가 건물 한 채를 짓는 데 10여개 전문 건설회사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전문 건설업자에게 하도급을 주는 일반 건설업자가 덤핑으로 공사를 따냈을 때 하도급업자는 이익을 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마련이다. 하도급업자로서는 ‘부실공사’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진다. 한 전문 건설업체 사장은 “페인트는 세 번 칠하게 되어 있지만 대개 두 번만 칠한다. 미장도 두 번 하게 되어 있지만 단위시간당 미장 면적을 늘려야 하므로 정해진 규격보다 얇게 빨리 발라버린다. 공기를 단축하고 노임과 자재를 어떻게든 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감독자가 이를 적발해 공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했다는 ‘미담’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부가 깐깐하게 따져 정해놓은 원가산정원칙(표준 품셈)과 노임 단가가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부실 공사를 부추긴다. 92년의 정부 노임 단가는 콘크리트공의 경우 2만7천9백원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건설현장에서 실제로 지급한 노임은 6만원 수준이었다. 따라서 하도급업자는 어떻게든 공사 기간과 머리수를 줄일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건설공사의 부조리와 불합리는 설계에서부터 입찰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한 건설 전문가는 “20년도 안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건설업체들이 잘하는 공사가 있다면 딱 두가지라고 꼬집었다. 해외건설 공사와 주한 미군 공병단이 발주하는 공사만 제대로 한다는 것이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70-80년대에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굵직굵직한 공사를 따냈고, 중동 건설 붐은 한동안 한국 경제를 뒷받침해왔다.

 

설계도면부터 다른 해외 공사

 18년간 미 공병단 건설공사를 해왔던 한 건설업자는 “미군 공사와 국내 공사는 시방서(원하는 품질을 얻는데 필요한 공사방법과 재료를 적어놓은 서류)와 설계도면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미군 공사의 경우 시방서 내용이 상세하고 설계도면도 1백60장 정도로 방대한 분량인데 우리는 그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이다. 미군 공사를 맡은 감독자는 시공자가 시방서와 설계도면대로 했느냐 안했느냐만 꼼꼼히 확인하면 부실공사나 부조리가 생길 수 없게 돼 있다. 반면 국내 공사의 경우 이들 기본 서류가 부실해 감독자나 시공자는 대충 대충 넘어갈 ‘재량권’이 많다. “국내 공사에서 감리.감독자는 현장 소장과 술 먹고 어울려다니는 일이 흔하다. 미군 감독관은 1백㎏이나 되는 몸으로 세면대에 걸터앉아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정도로 치밀하다”는 것이 미군 공사를 경험한 한 건설업자의 말이다.

 건설공사에는 시방서와 설계도면이라는 두가지 언어가 있다. 이 언어가 정확할 때 부조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지고 감리.감독도 철저해 진다. 제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허술한 잣대로는 건설업자 몇몇을 때려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구조적 부조리를 척결하기 힘들다. 원칙이 지켜지면 비리가 발을 못붙이지만 우리나라 건설공사에서는 지킬 원칙조차 변변히 세워지지 못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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