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축재 파수꾼, 행정전산망
  • 묵현상(삼보컴퓨터 기획부장) ()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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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부동산 신속 파악, 재산공개 때 활약....오용 방지책 시급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들의 재산이 공개되어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다. 이번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금융재산.골동품.미술품은 공개하는 사람이나 언론, 보도를 접하는 독자 모두가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재산을 검증하기가 어려워 언론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82년부터 ‘정보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행정.금융.교육.국방.곡안 등 5대 분야 국가 기간전산망 구축에 박차를 가한 결과, 92년에 이르러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개인이 보유한 전국의 부동산 현황이 3초 이내에 화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호적에는 직계 존비속의 주민등록번호가 모두 등재되어 있으므로 한 가족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은 1분 이내에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다.

 

금융.교육.국방 포괄하는 ‘정보 고속도로’

 이 때문에 재산을 공개했던 공직자들도 부동산 평가 가격을 공시지가.기준시가.과세표준 등으로 애써 낮게 평가하려고 했지만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누락시키지는 못했다. 이번 재산 공개 결과 투기를 했거나 부정한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의원들은 5공 시절 ‘좋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이 걸려든 덫은 바로 자기들이 10년 전에 놓았던 것이다. 심지어 한 의원은 행정전산망 계획서에 서명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자기가 서명한 계획이 10년후 자기 목을 조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여권발급 간소화 조처도 행정전상망르 활용하는 좋은 예이다. 과거에는 준비할 서류의 가짓수가 많았는데 94년부터는 여권 신청 서류만 제출하면 컴퓨터 단말기를 이용해 관련 정보를 검색해 보고 잘못된 점이 없으면 여권을 바로 발급하도록 바뀌었다. 또 주민등록 이전도 전출.전입 신청중 하나만 하면 예비군.자동차 운전면허증 전출입 신고가 자동 처리되게끔 되었다. 전입신고가 하루만 늦어도 ‘향토예비군 설치법’을 위반한 전과자로 만들었던 과거의 행정 편의주의가 행정전산망에 의해 사라져 가는 중이다.

 이렇듯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바꿔주는 행정전산망은 주민 부동산 차량 세무 통관 직업 고용 등 세부적인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부문은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신상명세, 세금납부액, 부동산 보유현황, 고용현황 등이 출력되도록 되어 있다. 정부가 87-91년 집중 추진했던 행정전산망이 이제 막강한 위력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행정전산망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선거가 있으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주민등록 전산자료이다. 학력.출신지.소득수준에 따라 유권자를 분류하고, 집중공략 대상유권자를 선별하여 우회적으로 권유편지등을 각 가정에 배달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좋은 일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정보들이 잘못 사용되면 멀지않은 장래에 엉뚱하게 우리를 옭아맬 것이 틀림없다.

 이렇듯 정보가 잘못 쓰이는 것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지금부터 서둘러 만들어 두어야 한다. 정부는 92년 7월 ‘개인정보 보호법안’을 의결해서 정보 오용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보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제재와, 개인이 자기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개인정보 열람권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구두선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예언이 우리 앞에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실명제만 해도 그렇다. 금융망 전산화 1차 사업이 완료되어 다른 은행의 현금지급기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게 된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시중 은행의 컴퓨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할 준비가 적어도 컴퓨터 측면에서는 이미 끝나 있다. 하겠다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15대 국회의원 출마자들부터는 부동산뿐 아니라 금융자산까지도 한점 의혹없이 있는 그대로 공개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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