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장관 '개혁 강물' 손으로 막는 세력 있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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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관료·기업 제동으로 차질‥‥ 이장관 "법대로 행정 펴겠다"



 

  안보와 경제성장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상황에서, 사실 노동부는 번번이 사용자 편을 들어왔고, 그 때문에 노동계로부터 "중재자가 아니라 해결사"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따라서 노동부가 펴온 노사 행정은 대체로 성장의 열매를 사용자에게 몰아주는 식이었다. 

  그것은 우리 행정부의 오랜 관행이었으며 동시에 노동부의 고질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노사 문제를 대하는 노동부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 사용자에게는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노동자는 매섭게 몰아붙이던 구습에서 벗어나 최소한 '법대로'행정을 펴려는 모습이 하나둘씩 목격되고 있다.

  노동계에서 꼽는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자동차보험 사건이다. 동부그룹 계열사인 한국자동차보험(이하 자보)은 그룹 차원에서 노조원에게 조합탈퇴를 강요해 물의를 빚어왔다. 노조측은 김준기 회장이 지난 3월5일 그룹 연수원에서 "노조를 깨라. 회사의 암적인 존재다"라고 발언한게 자보 사태의 발단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후 노조는 김회장 등 간부 14명을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고, 회사측은 노조 간부 4명을 해고하고11명을 6개월 정직시키는 등 노사가 팽팽하게 맞서 사태가 확대됐다. 그러나 노동부가보인 반응은 동부그룹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노동부는 이례적으로 사용자를 향해 '법의 칼'을들이 댔다.

 

하부 조직 안 움직여 해고자 복직 지지부진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지난 3월30일 국회노동위원회에서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모든 증거를 확보했다. 노사간 원만한 합의해결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소환에 계속 불응할 경우 이 사건이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법대로 단호히 처리하겠다. 이 문제는 새 정부 노동정책의 시금석이자 테스트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절대로 흐지부지 처리하지 않겠다"라고 발언했다. 

  서울지방 노동청은 지난 6일 김준기 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 노동행정 당국이 재벌그룹 회장을 소환해 조사하기는 노동부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자보 사태에서 보인 노동부의 자세는 "노동부가 너무나가는 것 아니냐"라는 재계 일각의 우려와 "바람직한 노동행정의 변화"라는 노동계의 기대가 동시에 생기게 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노동부관료들이 '갑자기 머리가 깨어서'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이인제 장관이 있다는 게 노동계의 중론이다. 이는 새 정부가 내겐 개혁 슬로건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부의 한 관리는 "그런 면에서 이 장관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즉 그 어느 때보다 장관의 의지가 정책 방향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노동부의 오랜 관행을 깨나가는데 이 장관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 유리하다는 말이다. 재계의 우려와 노동계의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 이인제 장관이 서있는 셈이다.

  노동부의 변화는 새 내각이 짜여지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김덕룡 의원의 천거로정치에 입문한 그는 13대 국회 내내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는데, 3당 합당 이후에도 이해찬 노무현 이상수 의원 등 이른바'노동위 3총사' 못지않게 성실한 의정활동을 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4대 국회부터는 법사위에서 활동했다. 아무튼 13대 국회 노동위원회 회의록에는 노사 문제를 보는 '의원 이인제'의 시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노사 관계는 그야말로 생동하는 실체이고, 노사 평화라고 하는 것은 일방이 일방을 압도하는 질서 위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힘의 균형 상태에서만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노동 행정이 아직도 신뢰를 못 받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부 당국은 엄격한 중립적 입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 힘의 열세에서 허덕이는 노동자 편에 더 많은 애정을 갖고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91년 9월 서울지방노동청 국정감사에서 '민자당' 이인제 의원이 손원식 서울지방노동청장을 향해 던진 말이다. 의원 이인제가 주장하는 노동부 역할은, 힘의 균형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노사 양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재자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행정부를 감시·질책하는 위치에서, 제한된 예산과 자원의 범위 내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시행해야 할 자리로 옮겨 앉았다. 물론 노동 행정의 사령탑으로서 이장관이 여전히 노동부의 역할을 중립적인 중재자로 생각한다는 점에 대해 달리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동부의 한국장은 "이장관은 원칙론자이다. 13대 노동위 위원 때 가졌던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현행법 그대로 할 사람이다"라고 평가한다. 노동계가 이장관의 등장에 기대를 건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이장관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개혁 의지가 견뎌내야 할 노동 현실은 결코 수월한 상대가 아니다. 

  당장 이장관은 해고 노동자 복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지난 3월10일 일선노동행정 기관에 해고 노동자 복직 방침을 하달했다. 그리고 해고자 복직 문제가 노동계의 현안으로 떠오르자 3월30일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시대의 아픔이므로 한 시대의 아픔을 나눠갖는 차원에서 대처하겠으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고자 복직방침 발표 이후 한달 남짓 지난 4월15일 현재 5천2백여명의 복직 대상자 중 2백57명이복직을 신청했고 그중에서 18명만이 복직했다. 장관의 개혁 의지와 노동부 하부 조직의 행정 자세가 따로 노는 형국이다.

 

판례와 반대되는 '행정 해석' 추방

  물론 하부 조직에서는 "해고자 복직은 전적으로 사업주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단지 권유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장관을 향해 원망을 털어놓지만, 실적을 챙기는데 민감하기 마련인 공무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장관의 개혁 의지가 노동부조직 내에서 완벽하게 수용되지 못함을 반증한다. 이장관의 개혁 의지가 처음부터 노동부의 고질인 보수성과 맞딱뜨린 셈이다. 현재 전국 주요 사업장 해고 노동자 1백여명은 3월말부터 기독교회관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하고 있다.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업계는 "상공부 등 모든 경제 관련 부처가 기업인들에'한번 뛰어보라'고 다 풀어주는 마당에 왜 노동부만 자꾸 옥죄려 드느냐"라며 이장관의 개혁 추진에 제동을 건다.

  이장관의 개혁 작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한가지 더 있다. '법대로 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노사 문제에서 엄연히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는데도 노동부가 행정 해석을 통해 법을 무시해온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동안 노동부는 해고무효 소송중인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문제, 단체협약의 효력 문제, 상급단체 명기 의무화 문제 등에서 대법원의 판례를 무시하고 국장·과장 등이 전결권을 행사해 노동자쪽에 불리한 행정해석을 내려왔다. 현재 노동부는 이장관의 지시에 따라 대법원 판례와 반대되는 노동부의 행정 해석 사례를 모으는 중이다.

   이인제 장관이 등장한 이후 노동부는 분명히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는 지난 3월30일 국회 노동위가 열렸을 때 민주당 원혜영의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큼만 하라"고 이장관의 개혁을 독려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해고자 복직 문제에서 드러난 것 처럼 이장관은 개혁 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현실과 부딪칠 것이다. 지금 노동부의 변화는 개혁을 믿고 가는 김영삼 행정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칙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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