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濟노동부장관
  • 김 훈 사회ㆍ기획특집 부장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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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개정에 정부입김없다”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노동 행정을 감시하던 국회 노동위 소속 의원에서 각료로 변신했다. 그가 취임한 뒤 한국자동차보험 사태에서의 사용자측 처벌, 해고근로자 복직 등 노동계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재계는 그의 정책 방향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이장관을 만나 새 정부의 노동 행정 목표와 방향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장관께서는 불과 수개월 전까지 노동 행정을 감시하고 질타하는 노동위 소속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이제 현실을 관장하는 각료로서 어떤 부자연스러움 같은 걸 느끼지 않으십니까?

국회의원 시절에도 늘 현실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의정 활동을 해왔습니다. 큰 갈등은 없습니다. 늘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장관의 임무는 여건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여건 자체를 변화시키는 차원에까지 미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 노동부 내의 고참 이사관들은 모두 장관보다 나이가 많고 행정 경험도 비교할 수 없이 많을 터인데 그들과 마찰은 없으십니까?

대부분의 고급 간부들이 저보다 나이와 행정 경험이 더 많습니다. 가끔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차이를 느낄 때도 없지 않습니다. 간부들과 아침마다 자유로운 토론 시간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러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간부들이 새 정부의 방향에 발빠르게 적응해오고 있는 점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직업 관료들의 경직성이란 시대 분위기 앞에서 매우 빠르게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도 스스로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관께서는 이른바 진보 인사로서 내각에 참여하신 셈인데 지금 청와대나 내각 안의 진보 인사들끼리 정책에 대한 사전 조율이나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행정적인 채널을 통해 논의하는 일은 없습니다. 또 따로 모이거나 별도로 연락을 하는 구체적인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정책에 관하여 서로 협의하고 그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있습니다.

 

장관 자신은 노동 계급에 속하는 신분이 아닌데,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대할 때 그들의 고난과 슬픔이 무엇인지 짐작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내가 장관이고 뭐고를 떠나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이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 조세희씨가 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다른 현장 노동자들의 피맺힌 수기를 읽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노동자의 권익옹호라는 모순된 양면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노사의 이해 관계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노사 간의 이해가 충돌하고 이 충돌이 첨예한 모순으로 폭발한다면 노사 양쪽이 모두 손해입니다. 노동 정책은 노사 양쪽에 모두 이익이 되도록 기획되고 운영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고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 속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과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노동자쪽에 불이익이 돌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익, 혹은 불이익에 대한 판단도 현재의 시점을 고정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장기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노동계의 가장 큰 관심을 노동관계법 개정인데, 개정의 방향과 개정 시안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은 지나치게 통제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개선하는 과정에서 노사간에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사·학계·법조계에서 18명의 대표로 구성된 연구위원회에서 개정 시안을 작성중입니다. 20여 차례 회의를 거듭해왔으나 아직 합의에 도달치 못했습니다. 노동부로서는 일체 보고도 받지 않고,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을 작정입니다. 노동부는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개정 시안을 가감 수정하지 않고 국회로 보낼 방침입니다.

 

5공 · 6공 시절에 노동 운동과 관련해 해고당한 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정책이 별 진전이 없어 실망스럽습니다.

너무 조금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봄이 왔다고 느낄 때부터 실제로 꽃이 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업의 자율권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있습니다. 과거의 대립과 갈등을 씻고 상처를 치유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에는 지속적이고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족스러운 속도는 아니지만 서서히 복직이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양엘리베이터에서 30명을 복직시키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국자동차보험의 노사분규 사태 때 정부가 동부그룹의 김준기 회장을 소환하는 등 노동자 편을 강력히 옹호하고 나섰는데, 이것이 노동부의 일관된 노동 정책의 첫 표현이라고 보아도 좋습니까?

저는 그 문제를 처리한 정부의 태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노동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즉 법대로 집행한 것 뿐이지요. 2천명 가까운 조합원으로 구성된 노조가 불과 며칠 사이에 와해되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사용자측의 부당한 와해공작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왜 위법을 자행한 사용자측을 철저히 사법 처리하지 않는가라고 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동 정책의 목표는 노사 간의 합의를 유도해서 기업을 원상회복케 하는 것이지 강경한 사법 처리로 기업을 문 닫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당장 승부를 내자는 것은 현명치 못합니다. 노사가 장구한 미래의 세월을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동차보험이 정치적으로 박해받고 있는 것이라는 소문도 있더군요.

전혀 근거 없는 소문입니다. 사태를 조사하고 사람들을 소환한 것은 전혀 노동부의 독자적 판단이고, 사전 사후에 아무 곳에도 보고하거나 재가를 받은 일이 없습니다. 추호의 정치적 고려도 한 일이 없습니다.

 

장관께서 노사분규를 다루는 정책에 대해 재계에서 반발이 없습니까?

경총에서 그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동부의 정책에 대해 두려움을 표명하는 경영자들도 있었습니다. 노동부가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면 그런 노동부는 사용자를 위해서도 아무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분들에게 역설했습니다.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신뢰를 업고 있어야만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그분들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전경련쪽과는 아직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법외 노조 단체들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 나가실 방침입니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지요. 그분들은 복수 노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자면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있고, 여건 자체가 변하고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그분들을 불온시하는 고정 관념을 우선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법외 노조 단체들 사이에도 상호 간에 정리도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전교조 문제는 지금 교육부가 타결점을 모색하고 있는데 노동부가 이 문제를 법외 노조 문제로서 해결해낼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문제를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다룰 때 노동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노동부가 문제 해결의 주무 부서가 아니더라도 노동의 입장에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노동 운동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노동 운동의 이념성은 급격히 쇠퇴할 것입니다. 그대신 노동자들이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투쟁이 전개될 것입니다. 정부는 노동 운동이 그러한 방향성을 잡아갈 수 있도록 정책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도층의 재산 공개 결과에 대한 노동자 계층의 반응을 정부 차원에서 포착하고 계십니까?

노 · 사 · 정 간담회를 통해 그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울분을 듣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불로소득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땀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이루어지도록 정책 목표가 수립되어야 하고, 세제 개혁·불로소득 공개가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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